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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4만 원짜리 사진 찍는데 이게 웬 난리랍니까

by오마이뉴스

엄마랑 사진 찍고 놀기... 진짜 추억은 가슴에만 담아두기 어려우니까​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은퇴를 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떠나 있던 엄마랑 비혼 동생, 셋이 함께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씁니다.

언제부턴가 사진에 찍히는 일이 마냥 내키지 않았다. 나날이 발전하는 카메라의 성능은 늘어난 잔주름과 희끗해진 머리칼을 적나라하게 파고든다. 사진 속의 내가 젊은 시절의 나로부터 점점 이탈하고 있다는 거부감이 생긴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아니다. 늙어간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철부지 중년을 이번 기회에 한번 혼쭐 내주자.


엄마랑 놀기 프로젝트의 몸풀기 미션은 바로 사진 찍기다. 지금보다 늙기 전에, 지금보다 아프기 전에, 지금을 기억하는 가장 간단하고, 일반적인 방법이다. 사진, 하면 가장 먼저 영정사진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영정사진 찍어두면 오래 산다는 미신도 적잖이 마음을 흔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 판단했다. 우리는 우리 스타일대로 간다.

인생네컷 대신 셀프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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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기 미션 완료 ▲ 셀프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중 잘 나온 세장을 액자에 담아 각자의 방에 놓아두었다. ⓒ 이정혁

집에 있는 옛날 앨범을 모두 뒤졌는데, 엄마랑 아들 둘이 찍은 사진은 딸랑 한 장뿐이다. 아이들 돌 사진이나, 결혼사진 등에서 가족 전체가 함께 찍은 사진들은 제법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엄마와 사이좋게 찍은 아들 둘의 모습이다. 이사 다니면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족들 사진 찍어주는 다정한 아버지의 기억을 새롭게 창조할 수는 없으므로.


스튜디오에 가서 사진작가의 주문대로 입술에 경련을 일으키며 찍고 싶지는 않았다. 술 한 잔 걸칠 때마다 재미 삼아 찍는 네 컷 짜리 즉석사진은 왠지 좀 격이 떨어진다. 우리 맘대로 찍으면서 어느 정도의 질적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사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셀프사진관이 핫아이템이다. 언제 유행했는지, 우리의 삶과는 평행선을 긋고 지나갔을지언정 목적과 가격에는 안성맞춤이다. 때마침, 흑백사진은 10% 할인행사 중이다. 4만 원을 송금하고 예약을 잡았다.


콘셉트는 폼나게 찍기다. 집에 있는 옷으로 최대한 멋스럽게 차려입고 가기로 했다. 모자와 선글라스 같은 소품도 직접 챙긴다. 몇 가지 자세도 연습한다. 엄마와 동생은 예상 외로 진지하게 협조적이었다. 내면에선 카메라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리라 추측한다.


예약 전날, 얼굴이 부을까 봐, 우리는 6시 이후 금식을 결정했다. 소파에 일렬로 앉아 얼굴에 팩도 했다. 배가 고파지기 전에 일찍 잠들자며 9시도 되기 전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촬영의 날이 밝았다. 엄마는 드라이를 위해 동네 미장원을 향했다. 엄마가 드라이했던 기억은 대학교 졸업식과 내 결혼식, 그 정도뿐이다. 4만 원짜리 사진 찍는데, 드라이 비용이 만 이천 원이다. 말릴 수 없었고,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의 발걸음이 유달리 경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의 등에서 "아들들이랑 사진 찍으러 가는 사람"이라는 푯말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오후 2시 예약이었는데, 출발 전에 작은 논쟁이 붙는다. 점심을 먹고 가야 하는지, 굶고 가야 하는지. 밥을 먹으면 배가 불룩해져서 사진을 망친다. 빈속에 사진 찍다가 혈당 떨어져서 쓰러질 수도 있다. 옥신각신 끝에 평소 양의 절반만 먹기로 하고, 사진관 근처에 가서 간단히 국수로 허기를 달랬다.


사진관은 번화가 뒤쪽에 있는 오래된 건물의 3층이었다. 대기실 벽에는 그동안 찍었던 다른 사람들의 사진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눈을 씻고 봐도 엄마가 최고령자임은 확실했다. 주눅이 들기보다 승부욕이 발동했다. 후대에 길이 남을 최고의 작품 사진을 찍어주겠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촬영장에 들어갔다.

마음만은 10대로 돌아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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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나게 사진찍기 ▲ 셀프사진관에서 최대한 멋을 내고 찍은 사진. 보정을 통해 상당부분의 주름이 사라졌다. ⓒ 이정혁

촬영장은 네 평 남짓한 공간이다. 한쪽에는 소품들이 마련되어 있어 우리처럼 촌스럽게 준비하지 않아도 좋다. 전신거울을 보며 옷매무시를 가다듬는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 움직일 수 없다. 최대한 렌즈의 시야 안으로 피사체를 욱여넣는 구조다. 사실 이 부분에서 시간이 소요된다. 처음 몇 컷은 위치 잡는 데 활용한다. 촬영된 사진은 바로 화면에 뜨기 때문에 여러 장을 찍으며 좋은 구도를 선택한다.


촬영 시간은 총 20분이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연습만큼 실전이 매끄럽지는 못했다.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컷을 찍는 것이 좋겠으나, 나중에 사진을 고르느라 고심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미리 몇 장 정도 찍을지를 정해서 시간 배정을 하는 재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의자 옮기고 포즈 취하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낭비했다.


촬영이 끝나면 20분간 사진을 선택하는 시간을 준다. 예상보다 사진이 잘 나왔다. 보는 관점과 시력 차에 따라 의견이 나뉜다. 세 명 모두 안경을 걷어 올리고 고심한다. 의견은 의견일 뿐, 엄마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사진으로 결정한다.


보정을 해준다는 직원의 말에 세 명 모두 안경을 바로 고쳐 쓰고 정색을 하며 한목소리를 냈다. 턱을 갸름하게 해달라거나, 눈을 좀 키워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주름을 최대한 없애주세요."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들 아쉬움이 남는 눈치다. 차를 돌려 한 번 더 찍으러 가기에, 체력은 이미 고갈되었다. 다음번에는 더 잘 찍을 수 있겠지? 우리 10년 후에 똑같은 복장이랑 똑같은 자세로 찍으러 오자. 요즘 그런 거 SNS에서 유행이래. 유행에 민감한 척하지만, 유행이 언제인지 모르는 우리. 차창 밖으로 내다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10년 후의 오늘도 맑고 쾌청한 가을 하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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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으로 돌아간 우리 ▲ 옛날 앨범을 뒤지다보니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 찍은 사진은 이 사진 한장만 남아 있다. 사진기가 귀해서였을까, 사진 찍어 주고 싶은 마음이 부족해서였을까. ⓒ 이정혁

엄마와 동생과 나는 사진을 찍으며 어느 순간 한마음이 되는 걸 느꼈다. 남은 시간 한 몸처럼 살아보려 한다. 각자 마음 고생, 몸 고생이 심했다. 남들보다 제곱은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제곱근을 씌워주자. 164의 제곱근은 12.8062다. 열세 살 소년 소녀로 시간을 되돌리는 거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먹고 싶던 것도 많았던 호기심 많은 어린이로. 하늘만 바라봐도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던 천진난만한 그 시절로.


이정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