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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은퇴 후 행복한 노년을 위해 지금 해야할 일들

이대로 아내와 살면 '젖은 낙엽' 된답니다

by오마이뉴스

단체 카톡방에 '은퇴 후 삶 자가진단표'라는 설문 하나가 공유되었다. 마치 잔잔한 물가에 누가 커다란 돌을 던진 것처럼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지인들의 시끌시끌한 반응을 뒤로 하고 나도 슬며시 해보았다.


'회사에서는 친절하지만 집에선 소파와 한 몸', '홧김에 "그럼 나가서 돈 벌어오든가" 말해봤다', '주말 삼시세끼는 아내표 집밥이면 좋겠다' 등등의 문항 10개가 있었다(검색하면 나옵니다). 3개 이하는 꽃길 은퇴, 4~7개는 황혼이혼 예비군, 8개 이상은 황혼 이혼 대상이었다.


내 결과는 '황혼이혼 예비군'이었다. 꽃길 은퇴를 예상했건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가부장적인 문항은 잘 넘어갔으나 몇 가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특히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아내 말에 불끈했다'라는 문항은 뜨끔했다.

퇴직 이후 부부 사이

오마이뉴스

▲ 영화 한 장면. 무뚝뚝한 남편 ‘진봉’ 역의 류승룡. ⓒ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에 아내는 각방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자는 시간도 서로 다르고, 쉽게 잠이 드는 나와 달리 자는 데 오래 걸리는 아내는 나중에 아이들이 독립하고 방의 여유가 생기면 그러고 싶다는 마음을 피력한 것이었다.


아내로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요즘 들어 자신만의 공간이나 삶을 자주 주장하는 아내 모습에서 위기감을 느꼈다. 직장에 들어가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고, 특히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는 부부의 생활은 사라지고 오롯이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러길 벌써 16년이 훌쩍 지났다. 그런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듯 은퇴 후에는 아내와 여행도 자주 다니고, 같은 취미 생활도 하고 싶었다. 은연 중에 아내에게 그런 마음을 나타내면 굳이 그럴 필요 있냐며 웃음으로 밀어냈다. 그런 모습에서 생각의 차이를 느꼈고, 그렇다면 은퇴 후에 우리 부부는 어떤 관계가 좋을지 고민되었다.


조선일보 '행복한 노후 탐구'에서 설문조사 플랫폼인 '틸리언프로'에 의뢰해 성인 남녀 22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정년퇴직 이후 부부 사이가 좋아졌느냐'는 질문에 '관심 없다'는 응답이 전체의 33%를 차지했고, '나빠졌다'는 응답이 30%였다.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8% 정도에 그쳤다. 퇴직 이후라도 긴 세월을 함께 살아야 하는데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응답이 압도적인 결과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마도 오랜 기간 각자의 삶에 바쁘다가 은퇴 이후에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부딪치는 일이 많아졌으리라. 각자가 만들어 놓은 삶의 고유한 영역이 침범되니 자연스레 갈등이 생겼다.


부모님의 경우를 떠올려보아도 지방에서 근무한 아버지로 인해서 주말부부를 하셨는데, 퇴직 후에 집에 계시면서부터 어색하고 불편함이 생겼다. 어머니는 그간 형성해온 관계들로 인하여 여전히 바빴지만, 아버지는 사회생활이 현저히 줄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주 밖으로 나가는 어머니께 잔소리가 늘었고, 그것이 갈등의 시발점이었다. 더구나 그동안 한 공간에서 오래 같이 있는 경우가 없었다 보니 식사하는 것부터 TV 보는 것, 심지어 잠을 자는 시간까지 일상의 소소한 일마저도 문제가 되었다.


떨어져 있을 때는 그렇게 사이가 좋던 두 분이 함께 있으면서 오히려 사이가 나빠지니 안타까웠다. 지금은 각자의 취미 생활을 영유하고, 일부 모임은 함께하는 등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 전보다는 관계가 나아졌다. 많은 세월이 필요했고, 어느 면에 있어서는 여전히 영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

남편도 '독립'은 필수

최근에 회사에서 퇴직한 분 중 '각자 살이'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선배 A 같은 경우는 집이 경기도인데, 대전에도 부모님이 살던 시골집이 있었다. 몇 년 전 홀로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그 집을 처분하지 않고, 계속 관리를 해오더니 이제는 두 곳을 오가고 있다.


얼마 전 그 선배에게 연락했는데 주중에는 대전집에서 머물며 농사도 짓고 개인 생활을 보내다가 주말에만 경기도로 올라와 아내와 보낸다고 했다. 심심하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엄청 바빠. 농사도 지어야지. 밥도 해 먹어야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네. 허허허."


그와중에 가죽 공예를 취미로 시작해서 재밌다며 나중에 놀러 오면 맛있는 음식도 대접하고, 공예품도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말에 아내와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며 은근 자랑을 했다.


처음엔 선배도 함께 살려고 했지만, 아이들도 모두 독립하고 아내도 하는 일이 따로 있어서 같이 살면 방해가 될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던 참에 대전집을 몇 번 오가다 보니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단을 내렸다. 가끔 시간이 될 때 아내도 놀러 오는데, 신혼 때로 돌아간 듯 설렌다며 웃었다.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 역시도 느끼는 점이 많았다. 선배처럼 아내와 따로 살면 어떨까 싶었다. 퇴직 후에 한적한 곳에서 텃밭도 가꾸고, 자연 속에서 있고 싶은 나와 달리 아내는 도심지에서 친한 지인들과 가까이에서 살고 싶어 했다. 지금은 막연하게 그때가 되면 합의점을 찾겠지 생각하지만, 생각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때 되어서 선배처럼 따로 살 집이 있어야 하고 아내의 동의도 필수사항이다. 이런 조건이 충족될지 확실치 않으니 함께 살 경우도 대비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취미생활도 같이 하고, 여행도 자주 다니며 공유하는 노년을 보내길 바라지만 아내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추구하는 아내와 나와의 접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의 '독립'이 중요했다.


퇴직 후에도 소소한 일거리가 있어서 집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고정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있어서 다가올 고독에도 대비해야 했다. 지금처럼 글을 쓰는 취미생활도 이어나가고 걷기 등 운동도 꾸준히 해서 병원에 누워 배우자에게 고통 주는 삶도 피하고 싶다.


평소에는 이렇게 각자의 삶을 영유하다가 일정을 맞추어 여행도 가고 또 기회가 된다면 함께 할 것도 찾아 즐기는 '따로 또 같이'를 실천한다면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라는 8%의 확률 안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남자의 가사'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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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젖은 낙엽'은 은퇴한 뒤에 집에 틀어박혀 아내만 쳐다보는 남편을 가리키는 말이다. ⓒ 최은경

황혼이혼과 비슷하게 '젖은 낙엽'이란 말이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젖은 낙엽'은 은퇴한 뒤에 집에 틀어박혀 아내만 쳐다보는 남편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두 뒷굽에 찰싹 달라붙은 낙엽처럼 아내 뒤만 졸졸 따라다닌다는 이야기였다.


'젖은 낙엽' 신세를 면하려면 스무 개 문항 중 최소한 '그렇다'가 열입곱 개는 되어야 했다. 또다시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나씩 꼼꼼히 읽고 체크해 보았는데, 결과는 역시나 실패였다. '황혼이혼 예비군'을 더해 '젖은 낙엽'신세라니. 마음이 착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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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낙엽' 자가진단 설문 ▲ 현재 일본에서 유행하는 '젖은 낙엽'을 판별하는 자가진단 설문 ⓒ 블로그 화면 캡처

이어진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지금부터라도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일상생활 수행 능력을 높여야 했다. 단순히 아내의 가사를 돕는다는 개념을 넘어 '남자의 가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무척 공감 되었다. 청소, 빨래, 요리는 기본이요, 가정 경제에 관해서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래야 은퇴 후에도 아내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혹시 모를 혼자되는 상황도 대비가 되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본인이 직접 식사를 준비하는 남성 노인은 19.2%에 불과한 반면 여성 노인은 93.8%로 대부분이었다. 이건 분명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노년에도 아내와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먼 미래라며 미루지 말고 현재의 화두로 가져와 조율하고 준비하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겠다. 그 안에서 '독립'과 '남자의 가사'는 지금부터 조금씩 실천해 보련다.


신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