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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김은식의 야구야] 정보화가 야구를 바꾸다

야구 해설자들은 어쩌다 동네북이 되었나

by오마이뉴스


"요즘 팬들이 다들 전문가잖아요. 감독 아닌 사람이 없어요. 우리보다 더 많이 알아요."


선수건, 지도자건, 구단 관계자건, 혹은 해설자들이건, 야구에 관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감탄과 자조를 반쯤씩 섞어 마치 유행어처럼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요즘 야구팬들의 상식에 해당하는 지식과 정보는, 80~90년대의 어지간한 전문가들의 것 못지않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매일 응원하는 팀의 경기 결과를 챙기고 전체 구단들의 대략적인 순위를 파악하고 있는 정도면 열혈 야구팬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는 투수가 몇 승째를 기록하고 있고 타자가 홈런 몇 개를 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정도면 상당한 충성도를 가진 팬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선동열 승수만 알면 야구광으로 통하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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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승패 ▲ 1997년 8월 23일, 4대 1로 앞선 9회 초 2사 1,2루 2스트라이크 1볼에서 쌍방울의 대타 장재중이 4구째 낮은 공에 헛스윙을 하자 심판은 아웃 선언을 했고, 경기가 종료되면서 중계방송도 끝났다. 하지만 마지막 공은 바운드된 공이었고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라는 김성근 감독의 항의를 무시할 방법이 없었지만 포수 김영진(사진)은 그 공을 관중석에 선물로 던져준 다음이었다. 재개된 경기에서 쌍방울은 5점을 더 뽑으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고, 삼성 팬들은 주말이 지나서야 신문을 통해 '승'이 '패'로 뒤바뀐 사실을 알게 됐다. ⓒ 삼성 라이온즈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프로야구 경기를 직접 관전할 기회는 흔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나 올스타전 같은 특별한 경기가 아닌 한 주중 경기를 TV를 통해 중계방송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공중파 채널에서 중계방송을 하긴 했지만 모든 팬들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즐길 수는 없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주말 중계방송도 오후 5시 저녁 뉴스 이전까지는 마쳐야 했기 때문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8회 말이나 9회 초쯤 화면 아래쪽으로 흘러가는 '정규방송 편성 관계로 중계방송을 마칩니다'라는 자막을 지켜보면서 탄식해야 하는 일은 대개 피할 수 없었다.


넉넉히 이긴 줄 알고 지내던 경기가 몇 년이 지나서야 극적인 막판 역전 승부의 전설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는 일도 종종 일어났던 이유다. 창설 이후 적어도 20여 년간 야구팬들은 프로야구 정규리그의 경기들을 TV 중계방송을 통해 결말까지 온전히 지켜본 경우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직접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볼 수 없는 팬들은 50원이나 100원쯤의 통화 요금 지출을 감수하고라도 700 전화 사서함 서비스를 통해 중간중간 경기 진행 상황을 확인하거나, 아니면 밤 9시 40분쯤 TV 스포츠뉴스를 통해 경기 결과를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마저 놓친다면 다음 날 아침에 배달되는 조간신문의 스포츠면을 확인해야 했는데, 그나마 경기가 연장전에라도 돌입해서 신문 조판 마감 시간까지도 마무리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경기에 관한 내용만 빠져 있는 기사를 앞뒤로 다시 되짚어 읽으며 어리둥절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야구팬이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스포츠신문을 사거나 선반 위에서 줍기라도 해야 했다. 종합일간지에는 전날 경기의 결과와 구단 순위, 그리고 다승과 타율 부문 5위나 10위 정도까지의 개인 순위 정도가 실리는 데 그쳤지만, 스포츠신문에는 각 경기의 회별 기록과 선수별 기록 그리고 부문별 상위 20위까지의 자세한 기록이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열성적인 야구팬이라 해도 경기의 승패와 구단의 순위 이상의 정보를 챙겨서 기억하기는 쉽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런 환경에 있었다.

야구를 볼 수 없던 시대의 야구팬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 사용자가 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정보량이 충분하지 못했지만 스포츠뉴스 시간을 놓치거나 다음 날 조간신문이 배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경기 결과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1999년 4월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초고속인터넷망인 ADSL 서비스가 상용화되어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면서 정보의 규모가 달라졌다.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포털 사이트들이 경쟁적으로 대중문화 관련 콘텐츠를 보강했고 그 과정에서 프로야구 관련 정보와 커뮤니티도 확대되었다.


2003년에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프로야구 문자중계를 시작하면서 각자 경기 관전에만 집중하던 야구팬들이 댓글 창에서 함께 응원이나 토론을 하거나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VOD와 하이라이트 서비스가 시작되어 경기를 보지 못한 이들도 중요한 경기 장면을 확인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됐고, 수많은 진기명기와 기묘한 실책과 실수들이 동영상과 사진으로 저장되고 유포되었다.


이전까지 필력 좋은 기자들의 묘사를 통해 전해지던 '전설'들이 이제 생생한 영상과 재치 넘치는 네티즌들의 촌평들이 결합된 형태로 대체되고 양산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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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 ▲ "내가 사무총장으로서 이것만은 꼭 하겠다고 생각한 게 기록 정리였어. 그거 하나는 어느 정도 해냈다고 자부한다고." 2006년 12월 18일에 진행된 의 '포차토크'에 초대된 당시 하일성 KBO 사무총장(왼쪽)의 말이다. 그이 말처럼 KBO 홈페이지를 통해 선수들의 기록을 '제대로' 검색할 수 있게 된 것은 2006년 이후였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신뢰할 만한 정확한 정보의 부족을 아쉬워하던 당시 야구팬드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였다. 사진 오른쪽은 고 신명철 전 편집위원. ⓒ 남소연

2008년부터는 케이블 TV를 통해 프로야구 전 경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중단 없이 중계방송되고, 포털 사이트에 의해 재전송되기 시작했다. 야구팬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야구장을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으면서도 한 시즌의 모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관전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단순히 많은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는 '야구광'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정보의 증가가 야구 보는 방식을 바꾸다

공유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야구를 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대부분의 경기를 보지 못한 채 '뉴스'로 전달받으면서 즐기던 시대에는 이기고 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그 승리와 패배에 기여한 요소들 중 한두 가지의 요점에만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승패와 타율, 홈런, 타점 혹은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같은 '클래식 스탯'이 중요했던 이유다.


하지만 대부분의 팬들이 모든 경기 상황을 지켜보고 찾아보면서 곱씹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선발투수 못지않게 중간계투요원의 역할도 짚지 않을 수 없었고, 희생번트 하나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서도 경기의 흐름이 바뀐다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었다. 평균적인 수준 이상이거나 이하인 수비수가 승패에 미치는 영향 역시 댓글 창을 휩쓰는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가 됐다.


선발투수들의 투구 수나 구원투수들의 등판 간격, 혹은 주전 선수들의 휴식과 후보 선수들에 대한 기회 부여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졌다. 가끔 한 번씩 경기장을 찾던 야구팬들은 갈 때마다 에이스의 등판과 주전 선수의 출전을 요구했지만, 늘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에게는 어제 등판했던 투수를 또 만나는 것이 괴로운 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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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에 강한 타자 김성한 ▲ 1980년대에는 '승리타점'이 공식집계되고 시상되었다. 그것 역시 '승패' 외의 정보가 유통되기 어렵던 시대에 공격 부문의 성과를 압축적으로 전달해야 했던 시대적 배경과 연관이 있다. 김성한은 1988년과 1989년 2년 연속 승리타점 타이틀을 따내 최후의 승리타점왕으로 기록되었으며, 1989년에 기록한 17개의 승리타점은 역대 최다기록이었다. ⓒ 기아 타이거즈

그렇게 야구팬들은 늘 지켜볼 수 있게 되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것들에 대해 늘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야구장 안에서 플래카드를 펼쳐 들거나 야구장 안팎에서 시위를 벌이며 구단의 운영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는 팬들도 늘어났다. 야구팬들의 선수협 지지 운동이나 현대 유니콘스 해체 반대 캠페인 같은 것도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야구의 변화, 피곤해진 야구인들

더 전문화된 팬들은 야구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을 피곤하게 한다. 구단과 방송사를 향하는 팬들의 요구와 비판은 보다 구체화되고 집요해졌으며, 기자와 칼럼니스트들을 향한 비평 역시 더욱 날카로워졌다.


허구연-하일성 시대의 해설가들이 전 국민의 야구 선생이었다면 오늘날의 해설가들은 '전설적인' 선수라 해도 새삼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는 한 야구를 보는 관점과 지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사례로 전락하기 일쑤다.


하지만 야구인들의 입장이야 어떤 것이든, 정보화가 되돌릴 수 없는 변화의 방향인 것과 마찬가지로 야구팬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목소리가 커지는 것 역시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과거에 야구가 야구인들만의 것이었고 무대의 앞과 뒤가 뚜렷이 나뉜 세계였다면, 이제는 야구인과 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진화하느냐일 것이다. 구단과 선수뿐만 아니라 행정과 미디어에 종사하고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이다.


김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