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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술 없이 못 살던 20년차 농부의 금주 비결, 궁금하십니까

by오마이뉴스

의사의 경고, 명상, 무알코올 맥주... 그 끝에 작가 '캐롤라인 냅'을 만나다

오마이뉴스

금주 성공기 ▲ 30년 동안 삶에서 가장 사랑하면서도 미워했던 친구를 떠나보냈다. ⓒ 조계환

"농사짓다보면 막걸리 한잔은 마셔야지", "술 안 마시고 어떻게 농사를 지어." 술 끊고 2년, 아직도 마을 일을 할 때마다 참 시간이 되면 동네 형님들이 한마디씩 하신다. 화기애애하게 술잔이 돌아갈 때면, 살짝 나무라며 화까지 내시는 분도 있다.


나는 귀농해서 유기농으로 농산물꾸러미 농사를 짓는 20년차 농부다. 사실 20대부터 2년 전까지 술과 함께 살았다. 도시에 있을 때도, 농사지으면서도 참 많이 마셨다. 그러던 내가 술을 끊게 되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술, 정말 끊고 싶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 마시기 시작한 술을 나이 50살이 될 때까지 마셨다. 알코올 중독 상태였음에도 스스로 알코올 중독은 아니라고 믿고 살았던 것 같다. 친구들과 100일 연속 술을 마시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저녁이 다가오면 오늘은 어떤 안주에 술을 마실까 생각하는 재미로 살았다.


시골에 와서는 저녁에 일이 끝나자마자 차로 왕복 40분이 걸리는 면소재지로 술을 사러 다녔다. 시골 마트 직원들이 매일 똑같은 시간에 오는 나를 알아보고는 또 술 사러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계산해주던 기억이 난다. 좀 쑥스럽기도 했지만, '인생 뭐 있어? 이런 게 바로 소소한 삶의 낙이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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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성공기 ▲ 힘든 일 할 때 술을 마시면 당장은 힘이 나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몸이 더 힘들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조계환

하지만 실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던 것 같다. 숙취에 시달리며 아침에 양치질을 할 때마다 헛구역질을 했다. 건강 검진을 하면 간수치도 점점 나빠졌고, 아무리 힘든 농사일을 해도 배가 나왔다. 저녁에 술을 못 마시면 마음이 초초해지고 불안했다.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기는 날도 많았고, 기억력도 나빠졌다. 롤러코스터 같은 생활이었다.


농사일이 끝나는 겨울이 되면 다른 나라로 배낭여행을 다녔는데, 어느 나라든 가서 제일 먼저 현지 맥주를 마셨다. 맥주 가격 동향과 맛, 술집의 분위기 등을 파악하고 즐겼다. 전국민이 술 마시는 것을 사랑하는 라오스에서는 국민맥주라고 할 수 있는 '비어라오'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셨다.


동유럽을 여행할 때는 낮부터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생맥주를 마시며 "맥주맛이 이렇게 좋을 수 있다니!" 하고 감탄했고, 추운 나라에서는 슈납스 같은 독주를 마셨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여행 경비의 상당 부분이 술값으로 나갔다.


일할 때든 놀 때든 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서서히 술을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금주를 해보는 경험이 생겼다. 어금니에 문제가 생겨서 임플란트를 했는데, 두 달간은 절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았다. 치과 선생님이 술 마시면 큰일 난다고 하도 무섭게 이야기를 하셔서 정말 두 달을 안 마셨는데, 내가 술을 끊을 수도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본 계기였다.


행복하려면 중독에서 벗어나야 한다


임플란트 이후 다시 술을 다시 마셨다. 금주 시도를 수도 없이 했다. 가장 바쁜 봄철만이라도 안 마시며 참다가 여름부터 다시 마시는 생활도 해봤다. 금주하다 마시면 더 폭주했다.


술을 완전히 끊게 된 계기는 2년 전 농한기에 참여한 명상프로그램 때문이다. 가을걷이 끝나고 10일짜리 위빠사나(Vi Passana) 명상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게 2~3일은 힘들다가 4일째부터는 익숙해졌다.


비디오로 명상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명상법과 왜 명상을 하는지 등을 설명해주셨다. 밤에 강의를 듣고 다음날 실제로 해보면서 명상의 매력에 빠졌다. 그러다 한마디가 내 마음에 찌릿하게 와닿았다.


"술, 담배, 마약, 설탕 등 무엇에라도 중독된 상태라면 당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중독이란 노예의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졸린 눈이 확 떠지며 깨달음이 왔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나 우리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시던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허전한 마음이 오래 지속됐다. 농사 기술이 늘었지만 기후위기에 따라 날씨가 변덕스럽게 변해서 유기농 농사도 힘든 상황이었다. 폭우나 태풍이 부는 여름, 가을이면 거의 일기예보를 보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당연히 술도 더 많이 마셨고, 그럴수록 괴로운 마음이 더 커지는 걸 나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명상프로그램 마치고 나와서 마지막으로 작별의 술을 마시고 2021년 1월 1일부터 금주를 시작했다. 괴롭지 않게 살고 싶다는 결연한 마음이 강해서인지 가을까지는 잘 버텼다. 하지만 농사일하며 땀 흘릴 때면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고 가을걷이 끝나고 시골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볼 때면, 맥주 한잔이 그리웠다.


술을 정말 간절하게 마시고 싶을 때는 탄산음료와 무알코올맥주를 마시며 버텼다. 무알코올맥주도 미량이나마 술기운이 있는 것이 있어서 잘 골라야 했다. 알코올도수가 완전히 0.0%인 것만 골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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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성공기 ▲ 금주 후 농장에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농사일을 한다. ⓒ 조계환

농사철이 끝나갈 때쯤 긴장이 풀리면서 '이 정도면 금주 성공이야. 겨울에 여행 가면 그때만 마시는 걸로 하자'라고 속으로 거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때 평생 금주 결심에 방점을 찍는 책을 만났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이라는 미국 작가 캐롤라인 냅의 에세이로, 자신이 어떻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술 때문에 인생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어떻게 벗어났는가에 대한 책이었다.


흔히 알코올 중독자라고 하면 술병을 껴안고 거리에서 쓰러져 자는 노숙자 같은 이미지만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실 직장 생활 등은 문제없이 유지하지만 밤에는 술꾼으로 변하는 '고기능 알코올 중독자'들이 더 많다고 했다. 책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알코올 중독자는 피클이 된 사람들이다. 오이가 피클이 되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지만, 이미 피클이 된 것을 오이로 되돌릴 수는 없다." 한마디로 한 번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면, 사람들이 흔히 충고하는 대로 '절주하면서 가볍게 한두 잔씩만 마시면 되지'가 절대 안 되는 상태라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평생 완전히 금주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캐롤라인 냅은 술 중독에서는 벗어났지만 담배 중독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을 쓴 것이 38살인데, 6년 뒤인 44살에 폐암으로 죽었다. <욕구들>, <명랑한 은둔자> 등 사적인 이야기를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며 작가로서 한참 전성기를 달리던 때였다. 온갖 중독과 싸우며 평생을 보낸 작가의 인생이 슬펐다.


술 끊고 몸도 마음도 인간관계도 건강해지다


술을 끊고 2년이 지난 지금 가장 달라진 점은 사는 게 차분하고 평안해졌다는 점이다. 술 마시며 완전히 업 되었다가 다음날 나락으로 떨어지는 반복이 사라졌다. 간수치는 완전 정상으로 돌아왔고, 뱃살도 없어졌다. 아침에 헛구역질도 사라졌고, 특히 잠을 잘 잔다. 깊게 잘 자면서 몸도 마음도 평화롭다. 술이 그동안 얼마나 몸과 마음 건강에 안 좋았는지 실감한다.


술 마시는 시간에 대신 책고 읽고, 운동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유기농 농사 공부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덕분에 농사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기술 전수도 체계적으로 안내해주고 있다. 몸이나 마음에 안 좋은 부분이 보일 때마다 대충 넘어가던 예전과 달리, 주의 깊게 살피며 보살펴준다. 농장에 찾아오는 외국인여행자 봉사자들과도 즐겁게 지낸다. 아침에는 짧은 명상과 함께 평범하지만 소중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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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성공기 ▲ 금주 후 농사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농작물이 잘 자란다. ⓒ 조계환

금주하고 보니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정말 소주 홍보가 목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주인공들이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금주 초기에는 이런 장면을 보면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지금은 다음날 숙취가 얼마나 심할까 생각하며 웃게 된다.


금주 이후 오래된 친구들과의 만남도 바뀌었다. 30년 동안 주로 술을 마시며 만나던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니 처음에는 좀 어색해하기도 했지만, 보다 차분하게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나는 느낌이었다. 우린 30년 동안 만날 때마다 어쩌면 그냥 술만 마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 안 마시고 만날 수 있는 친구들과 더 재미있게 지내게 된 것 같다. 술로 맺은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도움 되는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금주 3년 차, 다시 한 해 농사를 준비하며 재미나게 일을 시작하고 있다. 술이라는, 삶에서 가장 사랑하면서도 미워했던 친구를 보내 버리고 다른 삶을 산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금주는 매우 어렵지만 노예로 살고 싶지 않으면 시도해볼 만한 일이라고. 그리고 행복으로 가는 작은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조계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