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다음으로 비싸다고? 자동차 시트의 역사

[테크]by 피카미디어

자동차 시트는 엔진 다음으로 비싼, 그리고 엔진 만큼 많은 기술이 담긴 부품입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기준으로, 자동차에서 가장 비싼 부품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당연히 자동차의 심장, '엔진'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엔진 다음으로 비싼 부품은 무엇일까요? 엔진의 힘을 전달해주는 변속기일까요? 아니면 차체를 구성하는 프레임일까요?


놀랍게도, 정답은 자동차 시트입니다. 물론 차종에 따라, 브랜드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차 한 대 분의 시트가 수백만 원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고가의 부품입니다. 장시간 운전에도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마감되며, 안전을 위해 충분한 강성을 확보하면서 열선, 통풍, 마사지, 에어백 등 다양한 기능까지 탑재되니까요. 보기보다 많은 기술과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부품인데요.


자동차의 모든 부품이 그러하듯, 시트 또한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장족의 발전을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뼈대 위에 방석 하나 올려 뒀던 시트는 어떤 변천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게 됐을까요? 오늘은 자동차 시트의 발전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의자는 어떻게 자동차 시트가 되었나?​

시트는 자동차가 탄생했을 때부터, 아니 탈것이 탄생한 이래로 쭉 존재했습니다.

자동차의 여러 기능이나 부품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거나 새롭게 등장하며 변해 왔지만, 아마도 자동차 역사 상 시트가 없는 자동차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편리한 이동을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자동차인 만큼, 자동차 역사의 태동기부터 시트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인류 역사 상 첫 동력을 지닌 탈것으로 알려진 퀴뇨의 증기차도, 칼 벤츠와 고틀립 다임러의 1886년 첫 내연기관차도 모두 시트가 있었죠. 물론 이 때의 시트는 승객이 앉을 수만 있으면 됐기에, 일반적인 의자나 마차의 좌석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형태였습니다. 그저 프레임 위에 방석과 등받이를 얹어 놓은 형태였을 뿐입니다.

초기의 자동차 시트는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고급 가구에 가까웠습니다.

초창기의 자동차는 귀족과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만큼 시트는 매우 고급스럽게 치장됐습니다. 이 시기에는 자동차 회사가 엔진과 차대를 만들고, 마차를 만들던 코치빌더(coachbuilder)가 차체를 만들어 얹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이 코치빌더들은 오랫동안 상류층의 주문을 받아 마차를 만들어 온 만큼, 장인의 솜씨를 발휘해 편안한 시트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봐도 최고급 소파 같은 느낌이 물씬 날 정도입니다.​

1900년대 초의 자동차. 운전수가 뒤에 타고 승객석이 앞쪽인 점이 특이합니다.

또 재미있는 건, 1900년대까지만 해도 자동차의 평균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시트 배치가 매우 다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있거나, 1열에 승객이 타고 2열에 앉은 운전수가 차를 조작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910년대가 돼서야 현재와 비슷하게 운전석이 맨 앞줄에 위치하고 모든 탑승객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시트 배치가 정착됩니다.


자동차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항속거리가 길어지고, 주문 제작 방식을 탈피해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서 누구나 편안한 자세로 운전할 수 있도록 시트 포지션을 조정하는 기능도 탑재되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에 시트를 앞뒤로 움직일 수 있는 기능이 처음 등장했고, 등받이 각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추가된 건 그 보다 이후의 일입니다.​

초기의 자동차 시트는 대부분 벤치 시트였지만, 오늘날에는 버킷 시트로 대체됐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대부분의 자동차 시트는 좌우가 하나로 이어진 벤치 시트(bench seat) 구조였습니다. 벤치 시트는 1열에도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1열 탑승객의 몸을 제대로 지지하지 못하고 좌우 시트를 독립적으로 조절할 수 없는 등 단점도 상존했습니다. 이에 전후에는 좌우가 분리된 버킷 시트(bucket seat)가 유럽에서 대세로 자리잡았고, 미국 시장에서는 벤치 시트와 버킷 시트가 20세기 내내 공존합니다.

시트, 안전과 실용성을 품다​

전동 시트는 1950년대에 이미 상용화 됐습니다.

미국이 전후 특수로 황금기를 누리고 민수용 자동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자동차 시트 역시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1940년대 말에는 전동 전후 슬라이딩 기능이 자동차에 처음 탑재됐고, 1955년형 포드 썬더버드에는 전후 슬라이딩과 높이 조절 기능을 갖춘 최초의 4-way 전동 시트가 적용되면서 본격적인 전동 시트 시대를 열게 됩니다.

온열 시트는 1960년대, 통풍 시트는 1990년대에 상용화 됐습니다.

전동 시트와 더불어 대표적인 자동차 시트의 편의 기능, 온열 시트도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939년 엔진열을 끌어다 시트를 덥히는 기능이 일부 GM 차량에 옵션으로 탑재됐지만, 구조가 복잡해 별 인기는 없었다고 합니다. 전기 열선을 활용한 온열 시트는 1966년 캐딜락 드빌에 선택 사양으로 처음 도입됐고, 1972년 사브 몇몇 모델에 기본 사양으로 탑재돼 대중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통풍 시트는 그보다 한참 늦은 1997년에야 사브 9-5에서 세계 최초로 탑재됩니다.


지금은 보기 어렵지만, 독특한 편의 기능을 갖춘 경우도 있었습니다. 1960년대 몇몇 차량은 하차 시 편의성 증대를 위해 문을 열고 시트를 바깥쪽으로 돌릴 수 있는 스위블링 시트가 탑재됐고, 리무진 등 일부 고급차의 뒷좌석에는 앞 시트 등받이를 젖히거나 바닥에서 펴 올릴 수 있는 오토만(다리를 올릴 수 있는 보조 의자)이 장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신박한 시트 아이디어들은 안전과 내구성 등의 문제로 점차 자취를 감춥니다.

충돌 안전성이 중요시 되면서 시트는 단순한 의자 이상의 역할을 맡기 시작합니다.

자동차의 다른 많은 요소들처럼, 시트 역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66년 제정된 미국 교통안전법에는 세계 최초로 시트의 강도와 관련된 규정이 기재됩니다. 충돌 사고 시 시트의 고정 부위나 시트 자체의 파손으로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만큼, 자동차 회사들도 시트의 구조·강도와 안전성의 상관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또 1959년 등장한 3점식 안전 벨트가 보급되고, 1969년부터 미국 시장에서 헤드레스트 장착이 의무화 됐는데요. 안전벨트는 충돌 시 몸이 튕겨져 나가는 것을 예방하는 역할을 했고, 헤드레스트는 충돌 시 머리가 젖혀지면서 경추가 부러지는 부상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자동차 안에서 탑승객이 몸을 맡기는 부위는 시트가 유일한 만큼, 다양한 기능이 더해지면서 시트는 사고로부터 탑승객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맡게 됩니다.

21세기의 자동차 시트는 편의 기능은 물론, 첨단 안전 기능으로 똘똘 뭉친 부속품입니다.

오늘날에는 시트 구조물 자체가 충돌 에너지를 흡수하는 설계를 적용하고, 후방 추돌 시 경추 부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액티브 헤드레스트 같은 장치들이 기본적으로 장착됩니다. 또 시트의 사이드 볼스터에 에어백을 내장하거나, 측면 충돌 사고를 직전에 인식해 사이드 볼스터를 부풀리는 등 다양한 안전 기능이 탑재되고 있습니다.​

최초의 폴딩 시트인 럼블 시트는 2인승 자동차에 처음 적용됐습니다.

한편, 시트의 설계가 진화하고 자동차의 용도가 확장되면서, 실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트 폴딩 기능도 추가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의 폴딩 시트는 1930년대에 등장했는데요. 과거 마차 시대에 수행원이나 시종이 앉던 럼블 시트(rumble seat)의 진화형으로, 주로 2인승 쿠페나 스파이더의 트렁크를 펼쳐 간이 좌석으로 활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실용성과 거주성의 양립을 위해 많은 신차들이 시트의 폴딩 기능을 지원합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MPV나 해치백 형태의 차량이 등장하면서, 2열 시트를 폴딩해 적재 능력을 극대화하는 기능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히 등받이를 접는 구조로 시작해, 등받이를 접고 앞으로 넘기는 방식, 폴딩해 차체 바닥으로 수납하는 '폴드 앤 다이브' 방식, 아예 시트를 탈거하는 방식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합니다. 오늘날에는 용도에 따라 다채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분할 폴딩 시트가 대다수의 차에 기본 사양으로 탑재되고 있습니다.

운전을 위한 자리에서 휴식을 위한 자리로​

자동차 시트의 역할은 늘고 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편의성입니다.

사고 시의 안전도, 뛰어난 확장성도 중요하지만, 역시 시트의 가장 주된 역할은 오랜 여정 동안 탑승객을 편안하게 모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동차 시트는 앞서 이야기한 안전성과 실용성을 전제로 하되, 더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형태로 꾸준히 발전해 왔습니다.


큰 틀에서 보자면 초기의 시트는 단순히 완충재에 커버를 씌운 형태였지만, 장시간 운전에도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인체공학적 설계가 도입되기 시작합니다. 허리에는 요추 받침대(럼버 서포트)를 적용하고, 방석과 등받이에 사이드 볼스터를 덧대 몸을 지지해주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고급차의 경우 요추 받침대 외에도 시트의 여러 부위를 섬세하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앉아야 하는 시트는 인체공학적 설계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볼보는 정형외과 의사가 시트 제작에 참여했고, 닛산은 나사(NASA)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체중이 고르게 분산되는 저중력 시트를 개발했죠. 시트로엥은 고밀도 폼(foam)을 시트 충전재로 사용해 승차감을 극대화한 어드밴스드 컴포트 시트를 일부 모델에 적용 중입니다. 전동 시트의 조정 범위도 더 다양해져 링컨에서는 무려 30-way 조정이 가능한 '퍼펙트 포지션 시트'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 캐딜락과 메르세데스-벤츠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전동 마사지 시트도 요즘 고급차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기능입니다. 초기에는 전동 에어백을 활용해 스트레칭을 돕는 정도였지만, 최신 모델에는 안마 의자처럼 안마용 롤러나 볼이 내장돼 제법 본격적인 마사지 기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자율주행 시대에는 시트의 중요성이 더욱 커 집니다.

특히 자율주행이 미래 자동차의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시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완전 자율주행이 구현된다면 시트는 더 이상 운전을 위해 앉는 자리가 아닌, 휴식을 청하는 자리로 변모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완전 자율주행이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몇몇 제조사들이 운전석에도 릴렉싱 시트를 적용하는 건 이런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가올 미래의 자동차 시트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 완전 자율주행차에서는 지금과 같이 모든 좌석이 전방을 향하는 구조를 답습할 필요가 없습니다. 직접 운전하지 않을 때는 1열 시트를 뒤로 돌려 거실 소파처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가능하죠. 여기서 더 나아가 시트를 뒤로 젖히고 뒷좌석에서 영화를 보거나, 아예 수면을 취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최신 콘셉트카에서 이런 미래 시트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래의 자동차 시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또 시트의 소재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날텐데요. 자동차 탄생 이래 현재까지 대부분의 자동차는 직물, 인조가죽, 또는 천연가죽 소재의 시트를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탄소 중립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석유부산물로 만들어지는 직물이나 인조가죽, 동물을 도축해 만드는 천연가죽 대신 친환경 소재나 재생 소재로 만드는 시트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미래의 시트를 지금 쉽사리 상상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미래에도 시트가 자동차 안의 휴식을 책임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다가올 미래차의 근사한 시트를 기대해 보며, 오늘의 역사 이야기를 마칩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2022.10.0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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