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카는 왜 굳이 일반 도로를 달릴까?

[비즈]by 피카미디어

테스트카는 언제나 자동차 마니아들의 관심의 대상입니다.

신차 출시 시기가 임박하면 도로 위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특이한 자동차가 있습니다. 바로 테스트카입니다. 출시 전 프로토타입 상태의 신차가 위장막 등으로 안팎을 가린 상태로 임시 번호판을 달고 주행하는 것인데요.


이런 테스트카를 포착한, 이른바 '스파이샷(spyshot)'이 인터넷으로 유포되면 솜씨 좋은 렌더러들이 예상도를 그려내기도 하고요. 꼭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테스트카가 주행하는 모습을 통해 파워트레인이나 각종 기능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마련입니다.

보안이 생명인 신차가, 왜 위장막을 두르고 일반 도로를 달리는 걸까요?

그런데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각종 기계나 전자제품 중 아직 출시되지 않은 프로토타입을 일반인들이 다 볼 수 있는 곳에 들고 나와 테스트하는 경우는 자동차 외에 거의 없습니다. 출시 전의 제품에는 고도의 보안이 걸려 있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회사들이 테스트카를 끌고 나와 일반 도로에서 운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세라티 르반떼의 초기 테스트 뮬. SUV 구동계에 기블리의 껍데기를 씌웠습니다. ⓒAutoGuide.com

신차 개발 단계에서 제작되는 테스트카는 뮬(mule)이라고 불립니다. 뮬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요. 최초에는 새로운 구동계나 섀시 기본 설계를 테스트하기 위해 기존에 시판 중인 차의 껍데기를 적당히 끼워 맞춘, 마치 프랑켄슈타인처럼 짜깁기된 상태의 뮬이 운행됩니다.


그러다가 레이아웃이 대략적으로 확정되면 두터운 위장막을 두른 형태가 되는데, 이 때는 위장막 내부에 스펀지 따위를 덧대 차의 실루엣을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듭니다. 이 단계도 지나 출시가 임박하면 디자인을 가리기 위한 최소한의 패턴이 둘러진 필름을 씌우고, 디자인이 공개된 뒤에는 이 필름마저 떼 내고 양산차와 거의 같은 상태로 운행하게 되죠.​

연구소에서 주행 테스트 중인 쉐보레 볼트 EV. 마음만 먹으면 연구소에서 신차를 완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사실 자동차의 개발 과정은 자동차 회사의 연구소 내부에서 대부분 진행될 수 있습니다. 보안 구역인 연구소는 엄청나게 넓은 부지에 다양한 주행 환경을 상정한 각종 코스가 만들어져 있는데, 뮬에서 양산형까지 모든 개발 과정을 이런 연구소 내부에서 진행하는 것도 "이론 상"으로는 가능한 일이죠.


그럼에도 자동차 회사들은 어느 정도 개발이 진행된 테스트카를 일반 도로에 내보내 주행 시험을 진행하는데요. 이러한 일반 도로 주행의 가장 큰 이유는 단기간에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연구소 내에서 다양한 교통 환경을 재현한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통제된 환경일 뿐, 실제 도로 만큼 다양한 변수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뉘르부르크링과 같은 극한 환경의 테스트는 연구소 밖에서만 이뤄질 수 있습니다. ⓒTopSpeed.com

특히 연구소에서도 쉽게 구현할 수 없는 극한 상황-가령 겨울이 긴 북유럽 지역, 한낮 기온이 섭씨 50도를 넘는 미국의 데스 밸리(Death Valley),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서킷인 뉘르부르크링 등 가혹 환경에서의 주행 테스트를 위해서는 연구소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개발 과정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나 결함을 개선하는 작업도 이뤄지는데요.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수십, 수백만km의 주행 테스트가 필요합니다. 연구소를 벗어나지 않고 이 정도의 테스트를 거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이뤄져야 의미가 있기 때문에, 보안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일반 도로 테스트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 도로에서 포착된 BMW X7 출시 전 테스트카. ADAS와 내비게이션은 일반 도로 테스트가 필수입니다.

또한 연구소에서는 완성하기 어려운 기능도 있는데, 바로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와 GPS 내비게이션입니다. ADAS의 경우 일반 도로에서 다른 차량, 보행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스템의 작동 상태를 확인하고, 내비게이션 역시 여러 도로를 달리며 기능의 작동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ADAS나 내비게이션이 다양한 차종에 적용된다고 해도, 각 차종마다 차체 형상에 따라 센서에 음영 지대가 생기거나 예기치 못한 GPS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실제 일반 도로 주행을 통해 모든 시스템들이 원활하게 작동하는지 검증해야 하죠. 최근에는 해외에서 이미 출시된 수입차가 국내에서도 위장막을 두르고 주행 테스트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ADAS나 한국형 내비게이션을 테스트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제네시스 G70의 출시 전 테스트카. 보안 단계에 따라 위장막은 점점 얇아집니다. ⓒautoevolution

물론 테스트를 위해 아무 차나 연구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각 차량마다 내부적으로 '보안' 단계를 설정해 두고, 이러한 보안이 해제되면 테스트카도 운행을 나갈 수 있는 식이죠. 최초의 뮬 단계에서는 주로 연구소 내부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다가, 어느 정도 완성도가 높아진 뒤에는 위장막을 두르고 일반 도로 주행을 실시합니다. 여기서 보안이 더욱 해제되면 위장막은 점점 더 얇아지죠.


그런데, 그렇게 보안이 중요하다면 출시 전까지 위장막으로 디자인을 꽁꽁 숨기면 되지 않을까요? 자동차 회사들이 굳이 번거롭게 여러 단계의 보안을 거쳐 조금씩 디자인을 드러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상하셨겠지만, 그건 바로 테스트카 자체가 신차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테스트카는 이제 도로 주행 테스트를 넘어,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 됐습니다.

매년 세계적으로 쏟아지는 수십, 수백 종의 신차가 쏟아져 출시 만으로 이목을 끌기도 어렵거니와, 인터넷 등 정보의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자동차 회사가 보안을 강화하더라도 출시 전 유출을 차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졌습니다. 차라리 의도적으로 테스트카를 일반 도로에 내보내 고의적으로 대중에게 노출시키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목격담이 공유되거나 기사화돼 출시 전부터 관심을 고조시키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죠.


위장막을 두른 차의 정체를 궁금해 하고, 점차 위장막을 걷으면서 구체화된 디자인을 추정하고, 실제 디자인이 공개된 뒤 정식 출시 전까지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전략을 사용하면, 출시 전까지 적어도 수 개월 동안 신차에 대한 관심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조사들이 표면적으로는 "위장막 차량 촬영 시 보안 위반"이라고 엄포를 놓으면서도 실제로 유출되는 사진에 특별히 대응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까닭입니다.​

위장막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진은 제네시스 GV70 출시 전 테스트카.

일부 자동차 회사들은 아예 이런 테스트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합니다. 위장막에 출시 예정일이나 신차의 캐치 프레이즈를 새겨 넣기도 하고, QR코드를 삽입해 티저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위장막을 두른 테스트카를 보기가 점점 어려워 질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일반 도로 주행 없이도 연구소 내에서 높은 수준까지 개발을 진행할 수 있게 됐고, 전기차의 구동 계통 개발에는 과거만큼 많은 일반 도로 테스트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에는 위장막을 두른 테스트카 없이 자동차가 출시될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테슬라 등 신흥 브랜드를 중심으로 디자인을 우선 공개한 뒤 투자를 유치해 자동차를 개발하는 회사들이 등장하면서, 과거처럼 출시 전 디자인을 가릴 필요성도 적어졌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컴퓨터로 신차를 설계한 뒤, 위장막 없이 일반 도로 테스트를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베일에 싸인 테스트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대감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부분이죠.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미지의 테스트카가 계속 도로 위에 출몰했으면 좋겠습니다. 신차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자동차 산업에서만 찾을 수 있는 재미 요소니까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2022.10.1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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