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룡포] 나는 매일 북을 친다

0번째 글.


평소 글을 자주 쓰거나 잘 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이걸 쓰게 되었냐면, 내게 어떤 상황이 생겼기 때문이다.


작년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뀔 때 즈음 백혈병 진단을 받아버렸다. 그냥 몸살감기가 심하게 든 것인줄 알았는데 혈액검사, 골수검사를 해보더니 급성림프구성백혈병 이라는 병이었다. 확진을 한 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교수님은 ‘미안해요.’라고 진단 뒤에 덧붙이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난치병 선고받고 충격에 휩싸이는 클리셰가 많이 보이는데, 실제로 병명을 진단받으니 개인적으로 별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근거는 없지만 치료 잘 받으면 금방 나을거라는 낙관을 가질 정도로 아직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입원하면서 나의 투병기가 시작되었다.


치료는 관해 항암치료, 2차 항암치료, 3차 항암치료, 조혈모세포이식 전 항암치료, 조혈모세포이식(흔히들 골수이식이라고 부르는)까지 약 반년간 진행했고 골수이식 후에는 주기적으로 병원에 외래진료를 받으며 약물과 주사치료를 병행해왔다.


지금은 이식 후 약 100일 정도 된 상태이고 몸에 자잘한 이상 외에는 크게 아픈 곳은 없다. 집에 있는 동안은 매일 한 두시간씩 드럼을 친다. 


아직 이식이 완전히 성공적인지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1년 동안 암이 재발하지 않는다면 이후에도 재발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고 한다. 반면에 1년 안에 다시 백혈구가 이상증식하는 현상이 관측되면 다시 이식을 고려해야 하고 내가 가진 병이 꽤 질긴 녀석이라 투병이 무기한 연기될 것이다.


딱히 뭔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현재가 아니라서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지금은 몇 달 전에 비하면 훨씬 살 만 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내가 운이 좋아서 받은 상 같은 것이 아니고, 발병 직후부터 투병생활을 견디며 나 스스로 변화된 삶의 조건과 심신의 고통에 대해 싸우고 어렵사리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것들은 여러 형태로 반복될 것이다. 


나의 고통의 경험에 대해 쓰고 그것을 남들에게 읽히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판단이 되질 않는다.


다만 내가 그동안의 투병 중에 제일 많이, 어쩌면 유일하게 보고 듣는 일들이 거의 병에 대한 이야기 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내 지인들과 문병이나 문자, 전화를 통해 내 경험에 대해 묘사하고 설명해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치병 환자들의 치료과정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은 설명과 묘사를 하는 동안 어느새 내 마음 속에는 ‘사실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싶지는 않을 수도 있는데 주변 사람들한테 이런 얘기까지 하는 것은 민폐인가’라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병과 치료에 대해 너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 과한 일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만일 정말로 주변 사람들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색하지 않는게 사실이라면, 나는 그들을 위해 조용한 병실 또는 아무도 없는 내 방 안에서 침묵하는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외로워 죽을 것 같았다. 때로는 고요하고 단조로운 공기 속에서 자그마한 쓸쓸함이 떠오르는걸 가만히 보면서도 굳이 괴로워하지 않고 관망할 수 있는 여유로운 상태가 있다면, 또 어떤 때는 그나마 나에게 남은 얼마남지 않은 것들조차도 다 내버리고 싶을만큼 사람들이 그리워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삐뚤지 않은 마음을 가졌을 때의 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과 다른 삶의 조건에 대해 무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나는 내 친구들과 편하고 가깝게 지내고 싶기에 내 생활과 병의 진척도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들이 언제 나를 만날 수 있는지, 나와 만나려면 어떤 상황이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조심하고 또 뭘 먹으면 안되는지 잘 이해하고 배려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과 나, 세상과 나의 관계를 잘 형성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내 입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기왕에 글을 쓰게 되었으니 내가 겪은 투병과정과 환자로서 생각했던 것들을 써보려 한다. 처음에 시작했던 발병 이야기 이후 각 치료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 어려움과 재미에 대해서 대체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쓸 것이다. 백혈병이 어떤 병이고 어떻게 치료를 받는지 정보를 얻는 차원에서 보셔도 되고, 기본적으로는 나의 경험과 삶에 대해 쓸 것인데 글이 재밌으면 재밌는대로 읽어주시면 된다. 꼭 독자들이 나의 친구가 되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굳이 내치는 것도 아님)


어떤 주기로 이야기를 이어나갈지 모르겠지만 순전히 내 기준으로 해나갈 것이다. 나는 매일 북을 두들길 정도의 체력이 있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위해서만 이 이기적인 글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어떤 때는 병약한 자신을 평소보다 조금 더 연민하며 나만을 이기적으로 생각하며 위하는 때도 있고 시야가 명료하고 넓은 어떤 평소의 날에는 따분한 자신보다는 바깥에 관심을 갖고 마음이 넓은 척을 할 것이다.


부디 이 글을 보게 되시는 분들도 넓고 평평한 마음으로 ‘그냥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면서 봐주시라. 만약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여러분도 꼭 하나씩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이기적인 무언가를 하시길 바란다. 그러는 편이 서로의 몸과 마음의 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럼 잘 부탁드린다.​

by 소룡포
2019.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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