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공기관을 그만둔 이유

[비즈]by ㅍㅍㅅㅅ

취업 시장에서 공공기관은 선호하는 직장으로 꼽힌다. 정년이 만 60세까지 보장된다는 ‘안정성’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취업준비생일 때는 안정성이라는 가치가 굉장히 커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안정성이 주는 가치가 다른 단점들을 상쇄하지 못해 퇴사했다. 이 글은 내가 6년 동안 다닌 공공기관을 그만둔 이유를 4가지로 정리한 내용이다.

1. 내가 열심히 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공공기관을 다니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이것이다. 내가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보상만 받지 못하면 다행이다. 오히려 ‘호구’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먼저 회사원에게 보상이라 함은 3가지로 볼 수 있다. 금전적 보상, 승진, 그리고 웃기지만 나머지 하나는 ‘칭찬‘이다.

짜란다짜란다

공공기관은 기본적으로 성과를 내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성과급이나 연봉 인상 등의 금전적 보상은 제외한다. 다음은 승진인데 일에서 성과를 낸 만큼 빠르게 승진하는지 보면, 그렇지 않다. 일적인 성과와 승진이 ‘상관 관계 없음’을 넘어 ‘반비례’ 관계임을 목도할 때 자괴감을 느꼈다(공공기관의 승진에 관한 내용은 다음에 자세히 논하기로 한다).


열심히 일해도 승진이 안 된다면, 최소한 말로라도 인정받길 원했다. 칭찬은 돈 안 드니까. 그런데 이것조차도 정말 쉽지 않은 환경임을 느꼈다. 우선 공공기관은 ‘잘하는 사람’보다 ‘못하는 사람’에게 집중한다. 잘하는 사람은 계속 힘든 부서에 가서 힘든 일을 하고, 못하는 사람은 계속 편한 부서에 가서 편한 일을 한다. 못해서 사고 치니까. 일부러 사고 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기본적인 구조는 이렇다. 각 팀의 인원 구성 중 일하는 사람은 1명, 많아야 2명이다. 나머지는 사실상 ‘유휴 인력’이다. 팀장은 사고가 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일을 몰아주고, 그 사람은 꾸역꾸역 일한다. 무리해서 일하다 보면 실수하고(일을 안 하는 사람은 일을 안 하니까 실수도 안 한다), 그러면 욕을 먹는 구조다.


‘칭찬’을 원해서 한 일인데 ‘욕’이라니, 억울하다. 욕먹는 와중에 파티션 너머의 동료 모니터 화면에 작게 유튜브가 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자괴감은 극대화된다.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더라도 칭찬은 듣는 일은 드물었다. 팀장의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평등함’의 요구치가 높은 환경이기에 아무리 일을 처리했다 해도 특정인에게 지속적으로 감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러니 누가 일하겠는가. 나에게 이런 환경은 공산주의를 체험하는 것과 같았다. 열심히 일하면 할수록 바보가 되는 환경. 이 분위기는 점차 심화되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좋은 문화보단 나쁜 문화가 빠르게 번지는 법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에도 전반적으로 침잠하는 분위기가 있긴 했지만, 최소한 자기 할 일은 하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은 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일을 안 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나는 이것이 ‘안정성’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안정성’을 보고 공공기관에 들어왔다. 어차피 안 잘리니까 편하게 다녀야지, 하고 생각하는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너’가 부딪히는 그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 열심히 다닐 뻔했다!

물론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 없고 월급루팡으로 사는 게 꿈이라면 ‘난 이 부분은 해당되지 않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처음부터 ‘인정 욕구’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게 내 결론이다. 특히 공공기관에 입사할 정도면 꽤나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인정 욕구를 거세하고 살아가긴 어렵다. 물론 연차가 오래되어 욕구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선배들을 많이 보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열정적으로 살아온 나에게 이런 환경은 맞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즐겁게 일하고, 그만큼 보상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인정과 보상이라는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에게는 공공기관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2.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나는 공공기관에 입사하기 전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기자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율성이 꽤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때는 첫 직장이라 자율성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공공기관에 입사하고 나서야 자율성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꼈다.


공공기관은 새로운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 이는 기존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무 분장에 따라 해당 업무에 담당자가 지정되는데, 담당자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새로운 일이라면 당연히 더 그렇고, 기존 사업이면 기존의 방식대로 해야만 한다. 기존 사업을 새로운 방식으로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일을 처리할 때 담당자에게 의견을 내라고 하긴 한다. 그런데 최종 결과물에는 내 의견은커녕 내 의견과 반대로 담긴 경우가 많았다. ‘윗선’에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매너리즘에 빠져 그냥 예전 방식대로 처리하게 된다. 어차피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생각하는 법을 까먹는다는 것이다.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만들려는 욕구가 거세되자 생각하는 게 귀찮아졌다. 어차피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바엔 팀장과 얼굴 붉히지 않고 잘 지내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내가 다녔던 공공기관은 전반적으로 자율성이 많이 부여되지 않는 구조이고, 부서별로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먼저 회사 전체적으로는 사무처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임명된 위원들을 통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다. 의견을 낼 경우 회의장에서 대놓고 “네가 뭔데 의견을 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부서 별로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크게 실무 부서와 지원 부서로 나누어 본다면, 실무 부서보다는 지원 부서에 좀 더 자율성이 부여됐다. 나는 계속 실무 부서에 배치됐다.

그러나…

처음에는 퇴사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비교적 자율성이 부여되는 부서로 옮기고자 했다. 2년간 순환 근무가 원칙이니 당연히 옮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회사든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되므로 나는 아주 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부서 이동을 어필했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긴 했는데, 이것은 차후에 차차 논하기로 한다. 부서 이동에 실패하긴 했지만, 다른 부서로 옮기더라도 나에게 큰 자율성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 답답함이 커졌다.


일에 만족도가 비교적 높은 친구들을 보면 ‘자율성’이라는 키워드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회사의 형태에 따라 자율성의 척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 분위기, 부서 분위기마다 다르다. 국회 사무처에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생각보다 넓다고 했다. 연금에 다니는 친구의 경우에는 본사와 지사의 차이가 확연한데 본사의 경우 비교적 주요한 업무를 처리하고 자신의 의견도 많이 반영되는 편이지만, 지사의 경우는 자율성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기업의 경우는 직무 전문성이 확실하고 직급이 어느 정도 된 경우에는 자율성이 있는 듯했다(이것은 모두 ‘자율성’ 측면에서만 언급한 예시다. 회사원으로서의 고충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탐색하는 게 필요하다. 나는 누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보다 내가 기획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을 원하지,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이 회사 내에서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제는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커져 이는 퇴사로 이어졌다.

3. 민원 응대, 서무 업무가 고통스럽다.

퇴사의 두 번째 이유는 업무적인 문제다. 공공기관 종사자는 내 주요 업무가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민원 응대와 행정 처리 업무를 기본으로 한다. 이 부분은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어느 부서를 가도 이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이 두 축이 업무의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해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하며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잦았다. 내가 입사 전 이 부분을 알았다면 공공기관에 입사하지 않았을 것 같다.


먼저 민원 응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어렵사리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그만두었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첫 번째로 꼽는 게 바로 민원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봤을 땐 행정기관의 민원 처리가 굉장히 답답한 측면이 많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그 민원을 듣는 입장이 되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내 경우에는 ‘전화 민원’이 가장 스트레스가 컸다.

출처: YTN

신기한 게 연차와 경험이 쌓일수록 더 힘들었다. 오히려 신입사원 때는 나에게 누적된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민원 전화를 받는 게 아주 큰 부담은 아니었다. 그런데 민원 전화에 대한 피로도와 스트레스가 커져가면서, 또 민원 전화를 받다가 처음으로 공황이라는 상태를 겪으면서 민원 응대는 나에게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팀의 누군가가 자동응답기의 연결을 내 내선 번호로 몰래 설정해놓은 사건이 있었는데, ‘몰래’ 그랬다는 것도 화났지만, 내가 계속 응대를 해야 한다는 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는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심장이 두근거렸고, 민원인이 ‘여보세요’라는 말만 해도 수화기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나중에는 민원 전화를 받은 이후에는 그날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민원 응대는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 업무지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나에게는 그것이 더욱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민원 업무보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게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무한 반복되는 서무 업무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는 일반업무직과 기능 업무직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서무 업무를 일반직이 했다. 부서장들이 기능 업무직을 믿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문제는 수습 기간이나 1~2년 차에만 서무 업무를 하는 게 아니고 과장, 차장이 될 때까지 서무 업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인력 구조가 역피라미드형이기 때문이다.


신입 직원으로 입사해서 3개월간의 수습 기간이 끝나면 주임을 달고, 대리, 과장, 차장, 팀장, 실·국장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중 주임, 대리, 과장까지를 경험했다. 나는 과장이 될 때까지 거의 팀의 막내였고, 내 동기들 모두 그랬다. 오히려 나는 운 좋게도 팀에 후배가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나를 제외한 동기들은 대부분 7년 차가 될 때까지 팀의 막내였다. 일반적인 일도 하위 직급으로 몰리는 구조인데, 잡다한 서무 업무까지 하자니 자괴감이 드는 날이 많았다.


서무 업무의 범위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1. 팀 내에 필요한 간식 주문하기, 회사 앞 식당에서 장부에 선결제하기, 회의장에서 팀 순서를 기다렸다가 팀장님에게 알림 문자 해주기, 회식 날짜 취합하기, 회식 장소 물색하기, 음료 메뉴 취합해서 전화 주문하기, 문서철 파일의 표지 만들기, 회의자료에 띠지 붙이기, 매일 우편함 확인하기, 1층에 배달 온 국장님 신문 가져다드리기, 국장님 손님 오면 커피 타서 갖다 드리기(내가 비서는 아닌데), 매일 퇴근 전 다음 날 일정을 국장님 방에 놓아드리기, 팀원들이 버린 종이 파쇄기에 넣기, 지출결의서 총무팀에 갖다 놓기, 인터넷으로 주문한 간식이 오면 공용 공간에 예쁘게 배치하기(박카스 6개들이 박스째 냉장고에 넣었다가 팀장에게 호되게 혼난 동기가 있었음)

 

나는 서무업무가 기능 업무직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 조직이나 다른 공공기관에서는 그렇게 한다. 그렇게 업무를 나누는 게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과장이 되어서까지 서무 업무에 시달리자니 자괴감이 들었다. 특히 차장급 선배가 미룬 일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서무 업무에 시달리는 날에는 퇴사 욕구가 밀려왔다.

물론 누군가는 ‘칼퇴근’이 보장되니, 업무 외의 시간에 자기 계발이나 취미활동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일에 굉장히 몰입하는 타입이라 하루의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일에서도 집중이 잘 안 됐다. 민원 응대와 서무 업무는 나에게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멍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4. 정년 이후의 삶이 걱정된다.

앞서 언급한 1, 2, 3의 이유는 솔직히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 ‘존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4에서 언급할, 정년 이후의 삶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이 부분은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다가왔다.


내가 공공기관에 다닌다고 말하면 정년이 만 60세까지 보장돼서 정말 좋을 것 같다는 부러움의 시선을 많이 받는다. 보통은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보다 보장되지 않는 직장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사실 공공기관은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최소한 ‘잘릴’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공공기관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가장 큰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1, 2, 3의 이유는 솔직히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 ‘존버’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4에서 언급할, 정년 이후의 삶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이 부분은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로 다가왔다.


30–40대에 비자발적으로 퇴사하면 엄청 힘들겠지만 뭐라도 할 수 있다. 에너지도 있고 시간도 있다. 그런데 60살에 퇴직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 게다가 나는 같은 회사에서 단순 반복 업무를 하면서 30년 이상을 보낸 사람이 아닌가. 나에게 세상을 헤쳐나갈 힘이 남아있을 리 만무하다. 처음에는 업무 외적인 시간에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해서 퇴직 이후를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가장 그럴듯한 대안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대안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그 정도의 자기 계발로는 은퇴 이후 또 다른 30년을 살아갈 생산수단을 확보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계발’은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고, 대학원에 다니는 행위와 같은 ‘인풋’을 의미하지 않는다. 퇴직 후 나의 ‘생산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아웃풋’의 과정으로 자기 계발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직 중 ‘인풋’만 하는 게 아니라 ‘아웃풋’을 내야 한다. 그런데 겸직이 안 되다 보니, 내 아웃풋을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실험할 기회가 없다. 인풋만 하면서 자기 계발한다고 위안을 삼는 것이다.


회사에 대학원을 다니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구성원 중 3분의 1가량이 회사 들어와서 석사학위를 땄을 정도다. 그런데 그깟 석사학위로 뭘 어쩌겠다는 말인가? 안 하면 불안하니까 뭔가 하기는 해야겠고, 석사학위를 따긴 했는데, 솔직히 등록금만 날린 셈이다. 박사학위면 또 모르겠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중간에 자기 계발을 멈추게 된다. 아무리 칼퇴근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퇴근 후 매일 무언가를 집중해서 한다는 것은 힘들다. 물론 늪 같은 분위기의 회사에서 하루 9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언가를 미친 듯이 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10년, 20년, 30년 동안 지속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분위기가 그렇다. 오히려 시간이 촉박할 때 집중이 더 잘 되는 것이지,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으면 절박함이 사라져 집중이 안 된다.


다들 처음에는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도 하고 싶고, 자기 자신을 놓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배우려 다니지만, 어느 순간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았다. 결혼과 육아도 변수다. 보통은 결혼해서 육아를 해야 하는 시점이 오면 많이들 자기 계발을 멈추는 것 같다. 한 아이를 길러내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기 계발 측면에서만 보면 ‘중단’의 사유가 된다. 많은 선배를 보면 그렇다.


하나 남은 대안이 있긴 하다. 바로 재테크를 통해 생산수단을 확보하는 일이다. 안정성이 높은 직장에서 월급을 따박따박 받으며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투자에 성공하는 것이다. 부모 세대가 쓰던 유용한 방법이다. 레버리지를 이용해 안정적으로 월세가 나오는 지역에 꾸준히 투자를 한다면 최소 굶어 죽진 않을 것이다. 금융 소득은 겸직 논란에서도 자유롭다.


그런데 나는 이 대안을 선택하지 않았다. 나에게 60세 이후의 삶은 ‘돈’이 아닌 ‘일’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것은 공공기관에 33년간 재직하시다 정년퇴직하신 아버지를 보면서 느낀 바가 컸다. 돈은 있지만, 일이 없을 때 사람이 빨리 늙는다는 것을 보게 됐다. 소득이 어느 정도 확보됐다면 나이 들어서도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인 수입 감소를 감수하고서라도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공공기관을 퇴사했다.

마치며

출근하던 제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런치에는 처음 글을 써보는데요, 공공기관에 대해 궁금하시거나, 저와 이야기 나누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구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요와 댓글도 큰 힘이 됩니다. 일러스트도 계속 업로드할게요! 감사합니다.

필자 슈뢰딩거의 나옹이 (블로그)

상자 속의 나옹이가 회사를 다닐 확률도, 퇴사할 확률도 50퍼센트다. 대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2019.12.02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 ppss.kr
채널명
ㅍㅍㅅㅅ
소개글
필자와 독자의 경계가 없는 이슈 큐레이팅 매거진 - ppss.kr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