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라이프]by ㅍㅍㅅㅅ

내가 원치 않은 것으로 채워진 나의 삶

당신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당신은 지금 그 일을 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가.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 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me)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직무만족도는 69%로 OECD 평균인 81%보다 현저히 낮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할 때 스트레스를 느끼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는 87%가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대답하여 OECD 국가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의 직장인들을 보면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즐기기보다는 스트레스를 참아가면서도 삶을 영위하기 위한 소득원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이 꼭 직장인에게만 나타나는 모습은 아니다. 학생 중에는 공부를 즐기기보다는 억지로 마지못해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기 아이들을 그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매일매일 아이들과 부대끼는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때로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에 회의감을 갖는다고 한다.

 

의사 집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고 수입과 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은 직업이라는 이유로 이 길을 택한다. 하지만 매일 시계추처럼 오가는 출퇴근과 그 사이의 반복적인 일과가 지속되다 보면 의사들이 자기들의 일에 회의를 가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제로 한국고용정보원이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우리나라의 759개 직업 현직 종사자 26,000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서 나타난 의사의 직업만족도는 44위로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당신도 처음의 큰 기대와 포부를 안고 시작한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졌던 경우가 한 번 이상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태를 방치한다면 우리의 삶이 칙칙하게 변질되고 먼 훗날 되돌아볼 때 후회로 얼룩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직장에서 원치 않는 일을 소가 밭에 끌려가듯 하던 직장인들이 훗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어떤 뿌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윽박지르니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기는 하는데 그런다고 공부가 잘 될 리도 만무하지만 그렇게 공부해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아갈 수 있기는 할까.

 

자녀 양육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부모들도 그렇다. 낳았으니 기르긴 길러야겠지만, 그것 말고는 자신의 자녀를 키워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자녀를 인격체로 존중할 생각은 안 한다. 자녀를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그 결과 자기 자식은 과보호하고 남의 자식은 함부로 대하게 되는 폐해가 발생한다. 이는 자기 자식에게도 결코 좋지 않다.

 

내가 아는 상당수의 의사들도 이러한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배운 게 환자 보는 것이니 진료실을 지키고는 있으나, 온갖 환자들의 싫은 소리를 하루종일 들어야 하고 그렇게 하루 업무가 끝날 때쯤이 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남들 아픈 이야기 듣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걸 평생 해야겠다고 생각하니 갑갑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마주 앉은 환자들이 그걸 눈치 못 챌 리 없고 점점 그 의사를 찾지 않게 된다. 그러면 그 의사는 줄어든 환자를 만회하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무리하며 일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삶이 팍팍하고 고단해진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진료실에서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할 일’이라는 이유로 묵묵하게 참아내며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이 원하는 것보다는 원치 않는 것들로 채워진다는 것의 무서움을 당신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후회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런 운명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까.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출처 : 교보문고

내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책을 집어 들게 된 이유는 순전히 그것이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던 근원적인 질문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삶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자 나름의 노력을 해왔다. 허나 결국은 앞서 말한 쳇바퀴와 같은 삶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웠다.

내가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이 의문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방황하는 이유가 접근법이 틀렸기 때문이며 그 근거로 참신한 해석을 제시한다. 요컨대 우리는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만 집착한 나머지 본질에 해당하는 ‘왜’라는 물음을 잊고 산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왜’가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애플’과 ‘라이트 형제’의 예를 들어 ‘왜’를 올바로 정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앞서야 함을 보여준다.

 

애플의 경우 그들이 스스로가 존재해야 할 이유, 즉 ‘왜’로 세운 것은 ‘도전정신’이었다. 미국 서부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스티프 잡스에 의해 시작된 애플은 초창기 자신들을 IBM이라는 거인과 싸우는 도전자로 정의했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은 ‘아이폰’을 출시하며 거대 통신사들이 가지고 있던 주도권을 가져온 최근에까지 잘 유지해오고 있다.

 

그들은 맥과 아이폰과 같은 제품, 그리고 아이튠즈나 앱스토어와 같은 서비스들을 ‘도전정신’이라는 ‘왜’를 구현하기 위해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개인이 더 큰 힘을 지닌 이들과 도전하여 싸우게 하는 도구로 애플 제품들의 ‘왜’를 정의하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 제품 하나하나는 그 존재에 대한 이유가 있었고, 그 ‘왜’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 수 있었다.

 

즉, 애플은 자기 스스로를 ‘개인이 거대한 세상에 맞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자’로 정의하고 ‘뛰어난 제품들을 활용하여 개인이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컴퓨터와 아이폰 등의 다양한 제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여기서 ‘거대한 세상에 맞서 도전’하는 것이 이유 곧 ‘왜’이다. 그리고 ‘뛰어난 제품들을 활용하여 개인이 도전정신을 발휘’하는 것은 방법 곧 ‘어떻게’가 된다. 마지막으로 그 결과물인 각종 제품과 서비스들은 ‘무엇’이 된다.

 

다시 말하여 확고한 ‘왜’가 정해지면 다양한 ‘어떻게’와 ‘무엇’이 나올 수 있으며, 애플이 그 ‘왜’를 견고하게 유지한다면 그 ‘왜’에 감화된 사람들은 흔들림 없이 ‘어떻게’와 ‘무엇’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델’이라는 컴퓨터 회사가 휴대폰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왜’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컴퓨터를 잘 만들면 그와 유사한 휴대폰도 잘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델의 휴대폰에서 회사의 수익성 향상 외의 어떠한 이유도 발견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반드시 델의 휴대폰을 사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저자는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에서 이러한 ‘왜’의 순수성에 대한 측면을 이어간다. 라이트 형제가 첫 동력 비행을 성공할 당시에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쟁자가 있었다. 그는 ‘새뮤얼 랭리’라는 사람으로 자전거 수리점을 하던 라이트 형제보다도 훨씬 유명했으며 막강한 권위와 인맥 그리고 많은 자원과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와 랭리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라이트 형제는 그저 비행을 하는 것 자체에 꿈을 갖고 시도를 하였던 것에 반해, 랭리는 명예욕과 유명세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를 거머쥘 생각으로 비행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런 ‘왜’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라이트 형제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재시도하여 결국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이라는 쾌거를 이룬 반면, 랭리는 적당히 시도만 하다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만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에 성공한 후 랭리는 도전을 접었다는 것이다. 이는 랭리의 목적은 도전 자체가 아니라 오로지 ‘최초’ 동력 비행 성공과 그에 따르는 부수적인 이익에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랭리가 먼저 성공을 했을지라도 라이트 형제는 자신들만의 꿈을 위해 더 나은 비행을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왜, 어떻게, 무엇을’로 이어지는 흐름이 강력한 이유가 직관에 호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서 ‘골든 서클’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이는 두뇌구조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두뇌의 가장 깊은 곳이 직관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담당하는데, 이는 ‘왜’에 해당하며 바깥쪽으로 갈수록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하는데 이는 ‘어떻게’를 거쳐서 가장 바깥의 ‘무엇을’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는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사실이다. 우리 뇌의 중심에 해당하는 부위는 진화단계에서 초기에 형성된 것인데 반하여 고차원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대뇌피질은 가장 마지막에 진화했다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

 

그런데 이 뇌의 중심부는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뇌의 바깥 부분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 때문에 우리가 무엇인가에 감화가 되었을 때 그 이유에 대해서 딱 잘라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 ‘왜’에 의해서 감화가 되었을 경우,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논리적인 설명을 만들어내지만 사실 그것이 핵심을 찌르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를테면 애플의 ‘왜’에 감화되어 애플 제품을 선택한 이들에게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물어보면 디자인이며 기능을 들어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이 감화된 실체인 ‘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뿐이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요약하면,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건 그 일이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 ‘왜’를 먼저 고민하라는 것이다. ‘왜’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서 있어야 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어떻게’와 ‘무엇’은 그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스스로 묻다 :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다시 우리 현실로 돌아와 보자.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일과 관련하여 단지 무슨 업무를 얼마나 유능하게 하는지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곧 ‘무엇’과 ‘어떻게’에 대한 생각만 있는 것이다. 즉 일의 종류는 ‘무엇’이고 그것을 잘 해내는 방법은 ‘어떻게’ 이다. 그 두 가지에만 생각이 갇혀있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의미를 잃게 되고 결국은 수동적으로 일에 쫓기는 삶을 살게 된다. 단순히 돈을 벌고 먹고 사는 것을 넘어서 당신 삶을 아우르는 목표가 당신의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에 깃들어 있어야 한다.

 

당신이 학생인 경우에도 성적 향상을 위해서만 머리를 싸맨다면, 그것도 성적이라는 ‘무엇’과 향상이라는 ‘어떻게’에 머무르는 생각이다. 당신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있어 이 ‘왜’라는 단어로 가장 와 닿는 것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과 직장조차도 그 자체로 ‘왜’는 아니다. 더 본질적인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당신 스스로는 삶이라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쌓고, 한편으로는 세상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면 공부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도 단순히 좋은 대학과 직장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이 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이고 각자의 ‘왜’는 각자가 치열한 고민을 거쳐서 정해야 한다.

 

자녀를 키우는 일도 살펴보자. 자녀라는 ‘무엇’을 잘 키워야겠다는 ‘어떻게’에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당신으로 말미암아 탄생한 소중한 생명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숭고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자녀를 잘 키워야겠다는 의지에 앞서 그에 대한 당신만의 ‘왜’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의사로 정의내리고 그 틀에 맞춰서 살아가려고만 했다. 하지만 이는 ‘어떻게’나 ‘무엇을’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가 ‘왜’, 다른 말로 삶의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사람들의 삶에 건강을 전해주는 사람’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내 이름이 이을 ‘승承‘에 건강할 ‘건健‘이지 않은가.

 

‘왜’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거나 수술실에서 집도하는 것 외에 다양한 것으로 확장될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해왔던 진료와 수술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봉사 활동을 할 수도 있고, 잘못된 의학 지식을 바로잡는 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건강을 해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그리고 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IT기술 조차도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옛날에 누군가가 큰 성당을 짓는 공사장에서 벽돌을 쌓는 인부 두 명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인부 중 한 명은 자신의 일을 ‘멋진 성당을 짓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한 명은 ‘벽돌을 쌓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이 하는 일은 같을지라도 시간이 지나서 내놓는 결과물은 같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면 조용히 시간을 갖고 내가 ‘왜’ 이 일을 하고자 하는지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보자. 그러면 새로운 시각으로 당신의 일을 바라보게 될 것이며 스스로가 주인 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신승건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외과의사입니다. 어떻게 하면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고 있습니다.

2016.11.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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