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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랜드로 패러디하다

byㅍㅍㅅㅅ

예술은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술품인 미술이나 조각을 보고 어떤 뜻을 유추하려는 관람객의 습성을 역으로 이용해서, 아무것도 유추할 수 없는 추상미술을 발전시켰습니다. 지난여름 한국에 전시를 진행한 마크 로스코는 의미나 상징을 유추할 수 없도록 일부러 의미가 없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뱅크시(Banksy)라는 낙서 화가가 있습니다. 스프레이 락카로 길거리 벽에 낙서를 하는 예술가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낙서 화가라서, 낙서 하나가 수억 원씩 호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웃지 못할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자고 일어나니 자기 집 담벼락에 뱅크시 낙서가 그려져 있어서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몹시 흐뭇해 했다는 집주인 일화도 있죠.

 

이 뱅크시가 이번에는 ‘행복나라’ 디즈니랜드를 ‘깠습니다’. 좀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난 2015년 8월 영국 브리스틀 서부 해안가 웨스턴 슈퍼마레에 버려진 야외 수영장을 개조하여, 디즈니랜드를 비꼰 디즈멀랜드(Dismaland)를 만든 것입니다.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먼저 디즈니랜드가 비판받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만들어 주고 어른들에게는 환상적인 그래픽의 즐거운 영화를 만들어주는 곳인데 말이죠. 간단하게 말하자면 뱅크시는 바로 그 지점을 비판하였습니다. 디즈니랜드가 ‘행복’을 상품화해서 판매하고 돈을 버는 회사라고 생각한 것이죠. 꿈과 환상만이 가득찬 세계는 보기에는 참 좋지만, 그 안의 현실은 엄연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하단에서 조금 더 설명하도록 하죠.

 

뱅크시는 이 디즈니랜드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답게 말로 비판하지는 않았죠. 폐수영장을 디즈니랜드를 패러디한 테마파크로 개조했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 설명할 디즈멀랜드입니다.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디즈멀랜드, 이 우울하고 기괴한 나라

디즈멀랜드는 디즈니랜드에 대조되는 ‘우울나라’입니다.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한 직원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죠. 이 우울나라는 우울한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백조의 성 앞에 앉아있는 인어공주의 조각상이 기묘하게 비틀려 있네요.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디즈멀랜드에 입국할 때에는 수많은 것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골판지로 만든 보안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는 것은 권총, 스프레이 등 위험한 물건 뿐 아니라 유니콘 등 희망을 상징하는 물건들도 포함됩니다. 게다가 직원의 태도는 한결같이 고압적이어서 불쾌감을 조장합니다.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이 놀이공원은 우울하고 비참해 보이는 조형물로 가득 차 잿빛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바로 위의 조형물은 구글의 두 창립자가 자주 방문하는 ‘버닝맨 축제’에서 선보인 작품이네요.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다소 허무하게 보이는 셀카 구멍도 있네요.

행복나라 디즈니랜드, 우울나라 디즈멀

그러면 뱅크시는 왜 이 디즈멀랜드를 만들었을까요? 목적은 간단합니다. 인생이 언제나 동화 같지는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디즈니랜드 만화나 영화는 현실을 왜곡합니다. 그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어떻든 모든 이야기는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난 작품들이 더 많은 상품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디즈니랜드 애니메이션이나 아동용 영화는 대개 주인공이 죽지도 않고 비극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보나마나 아이들이 무척 슬퍼할 테니까요.

 

사실 삶은 비극과 희극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교차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디즈니랜드는 인위적으로 인생이 밝고 맑고 행복하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 삶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게 인생의 한 가지 측면만 읽으며 자라는 게 건강한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느 정도 세균에 노출된 환경이 아이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기생충이 사라져서 아토피 환자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싸울 상대가 없을 때 우리 몸 속의 면역세포들은 자신의 몸을 비정상적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처럼 아이들에게는 삶의 비극에 대한 면역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기억나네요.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는데 제 뒤에 앉아 있던 유치원 꼬마가 마지막 장면에서 극장이 떠나가라 펑펑 울더군요. 아직도 그 울음소리가 잊히지 않아요.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이 죽습니다. 아마 그 아이에게는 충격이었겠죠. 하지만 그 영화에서 나오듯이, 엄마도 죽을 수 있습니다. 이 죽음과 고통은 아이에게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지만, 아이가 살면서 언젠가 꼭 알게 될 사실이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슬픈 부분의 교육을 되도록 늦게 시키려는 보통의 교육 방침이 옳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즈니랜드는 행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행복만을 알고 자란 아이가 과연 건강한 아이일까요? 공주, 왕자로만 키워지는 것이 올바른 교육일까요? 어려서부터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행복, 희망처럼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우울하고 더럽고 추한 반대편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둘 모두를 동등하게 교육받고 자란 아이가 더욱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뱅크시의 디즈멀랜드는 이런 삶의 반대편을 테마파크로 구성해낸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기발한 예술쟁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 썬도그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IT와 사진 예술을 좋아하는 블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