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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난 세월호 통해 비참한 국가의 꼴을 봤다"

세월호 파란바지 의인
"차라리…"

by프레시안

"손과 발이 없었으면 사람을 구하지 못했고, 죽어가는 사람들 보지도 못했을 것."

 

힘겹게 입을 열었다. 차라리 손과 발이 없었다면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손과 발이 있어 사람들을 구하다 보니 차마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고. 세월호 참사 파란바지 의인 김동수씨의 얘기다.

 

24일 오후 4시 제주시 삼도동 청소년 문화카페 생느행에서 '의인과 함께 뛰는 의로운 이웃모임'이 주최한 토크콘서트 '달려라 꼴통동수'가 열렸다.

 

토크콘서트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희생자들에게 금전적인 보상 뿐만 아니라 명예와 정부의 지원, 그리고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행사에는 토크콘서트의 주인공 파란바지 의인 김동수씨를 비롯해 가족들의 지인과 어린 학생 등 많은 참가자들이 카페를 가득 메웠다. 

세월호 파란바지 의인 "차라리…"

▲ 24일 제주 청소년 문화카페

본격적으로 토크콘서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참가자들에게 마이크가 돌아갔다. 참가자들이 토크콘서트에 참가한 이유를 말했다.

 

한 중년 남성은 "김씨가 제주 사람인줄 몰랐다. 최근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됐고, 오늘 토크콘서트에 그 친구를 따라왔다. 세월호는 잊히면 안된다"고 전했다.

 

다른 남성은 "대전에서 김씨를 보기 위해 자녀와 함께 왔다. 아이들이 김씨를 통해 세월호를 알았으면 한다"고 참가 이유를 설명했다.

 

자리에 앉아있던 한 여대생은 "방학기간에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생활을 하고 싶어 토크콘서트에 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파란바지 의인 "차라리…"

▲ 24일 제주 청소년 문화카페

김씨는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8분 세월호 침몰이 시작되자 선내 소방호스를 자신의 몸에 감고 단원고 학생들을 끌어 올려 구조하다 부상을 입었다.

 

보건복지부는 세월호 참사 1년여 뒤인 2015년 6월18일 2015년도 제2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김씨를 의상자로 인정했지만, 김씨는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겪고 있다.

 

김씨는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자택과 제주도청 로비 등에서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2015년 3월19일 자택에서 자해를 시도했던 김씨는 가족들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김씨의 첫 번째 자해시도로 알려졌다.

 

또 2015년 12월14일에는 서울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때 방청석에 앉아있다가 "솔직히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억울합니다"라고 말한 뒤 자해를 시도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이틀뒤인 2016년 4월18일에도 제주도청 1청사 1층 로비에서 "세월호 진상도 밝히지 못하고, 사람들의 고통도 치유하지 못하는 이 나라가 싫다"는 취지의 말을 외치고 문구용 커터칼로 오른쪽 손목과 복부 등을 그었다.

 

언론에 알려진 자해 시도만 3번으로, 김씨의 자해 시도는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 김동수씨는 자해 시도를 여러번 한 이유에 대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세월호 파란바지 의인 "차라리…"

▲ 24일 제주 청소년 문화카페

김씨는 "지금의 김동수는 껍데기 뿐이다. 일을 하고, 저녁에 약을 먹고 잠을 잔다. 계속 반복된다. 난 세월호를 통해 비참한 국가의 꼴을 봤다. 하지만, 어느새 가족들에게 짐이 되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 물에 빠진 아이들을 보며, 딸이 생각났다. 내가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해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옆에 있던 호스로 물에 빠진 아이들을 물 밖으로 꺼냈다. 몸에 기운이 다 빠져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또 밖에 나오지 못하고, 배 속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물 속에 가라앉고 있었다. 계속 생각이 난다"고 트라우마에 빠진 자신의 상황을 전했다.

 

이어 "나는 고통 속에 약을 먹으며 산다. 손이 너무 아파서 자르고 싶어 자해한 적이 있다. 또 약에 취해 자해를 시도한 적도 있다"며 "만약 손과 발이 없었으면 (세월호 참사) 당시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물에 빠진, 물속에 가라앉는 사람들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면. 그런 생각에 자해를 시도했다"며 "세월호 진상규명은 생존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트라우마에 빠져 세상 밖으로 나오기 힘들어 한다. 유족들과 함께 생존자들이 세월호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 국가, 사회, 국민이 외면해도 나는 사람들 앞에서서 세월호 당시 상황을 전달해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기자 : 제주의소리=이동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