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을 향해 걷는다는 것 – 인천둘레길 14코스 ‘부두길’

[여행]by 로드프레스
사라질 것을 향해 걷는다는 것 – 인

대한민국의 광역시인 인천시.

 

이 도시가 주는 생명력은 실로 대단하다.

 

고려시대에는 강화읍을 포함해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한성의 입구였다. 제물포는 조선을 대표하는 개항장이었으며 한국전쟁때에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무대였다. 최초의 등대, 최초의 철도, 최초의 서양식 공원, 최초의 살롱, 최초의 조차지역, 최초의 짜장면 등 인천이 탄생시킨 것들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인천 둘레길은 이러한 다양한 인천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길로, 계양산에서 청량산까지 인천의 원도심을 관통하는 S자 녹지축을 뼈대로 하여 인천을 가늠할 수 있으며 인천의 산과 포구, 다양한 마을과 신도시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중 인천 둘레길 14코스 부두길은 거대한 무역항이자 크루즈항인 인천항에 가리워진 인천의 세 포구 북성포구, 만석부두, 화수부두를 둘러보면서 발전의 거대한 흐름 뒤에 사그러들 옛 정취를 추억할 수 있어 그 가치가 큰 길이다.

 

로드프레스는 쌀쌀한 겨울 바람 속에서 언젠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 포구와 부두를 둘러보며 그 숨결을 기록하고자 한다.

*인천 둘레길은 리본이나 표식, 안내판이 다른 둘레길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스마트폰 앱인 ‘트랭글(tranggle)’을 이용, 명품 둘레길 지도에서 인천역을 찾아 코스를 확인, 참조하며 걷는 것이 좋다.

 

*북성포구는 인천해양수산청의 준설토투기장 매립공사가 예정되어 있어 올해나 내년께 공사가 완료된다면 14코스의 해당 구간이 변경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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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선의 시작과 함께한 유서깊은 인천역'

14코스의 출발지인 인천역에 도착한다.

 

이 땅의 최초의 철도노선이었던 경인선의 종착지이자 (당시엔 이름이 제물포역이었다.) 바로 앞에 위치한 차이나타운과 송월동 동화마을, 근대화 역사문화거리 등이 어우러진 인천 여행의 중심지 격인 역이다.

 

마침 14코스의 시작점도 이 곳이니 그 첫걸음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싶다.

 

역을 바라보는 곳을 기준으로 왼쪽에 월미 은하레일 승차장이 있는데 인천 둘레길은 그 은하레일 승차장 옆의 길을 통해 인천역 뒷쪽으로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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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동화마을을 찾아보세요.'

제 8부두 맞은편의 이 마을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북성동 1가에 속하지만 옛 인천 부두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집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동네이다.

 

철로를 지나 맞은편에 인천 중구의 대표적 관광지인 송월동 동화마을이 있다지만 난 언제나 이 작은 마을이 진짜 ‘동화마을’이라고 본다. 디즈니의 캐릭터가 없더라도 이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방을 쪼개고 쪼갠 이 동네가 주는 소박함과 아름다움은 인천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아마 예전엔 대부분의 방마다 부둣가에서 일하는 사람들, 혹은 인근의 대한제분, 선창산업, 한진, 대한제당 등의 공장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래서 그 진득한 삶의 체취가 2층의 창문마다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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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메기가 잘 말라간다.'

이 아름다운 마을의 처마 밑은 풍성하다. 얼고 녹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하얀 분이 생기고 찰기가 뭉칠 감과 꾸덕해져가는 물메기 한마리가 눈길을 끈다. 저 물메기의 종착지는 찜일까 탕일까.

 

인천의 물메기도 통영이나 강원도 속초, 강릉에 못지않게 유명하다.

 

맑게 끓이거나 맵싸하게 끓이는데 다른 곳과는 달리 생물도 사용하지만 보통 물메기를 말려서 넣는지라 아주 약간은 더 물메기의 살이 단단한 편이다. 물론 그래봤자 원체 살이 무른 고기인지라 입 안에 넣기가 무섭게 녹아나가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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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분 옆 길로 들어선다.'

몇 번을 찾아왔음에도 입구에서 북성포구까지 걷는 구간은 가슴이 먹먹한 구간이다. 생기를 잃어가는 바다, 찾은 날은 영하의 기온에 바람까지 강해 체감온도가 상당히 낮은 날이었다. 그래서일까 살얼음 낀 갯벌에 얹힌 바지선과 어선들, 가득 쌓인 원목들이 더욱 쓸쓸하게 다가온다.

 

지금의 인천을 있게 만든 것은 이런 발전, 산업화, 공단, 수출입의 결과이다.

 

그래서 그것을 마다하고 이제와서 밀어낼 수 없다. 인천의 생명줄에 밀려나 이미 기력이 다해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포구에 응급처치를 한들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천이 바다를 떠나 살 수 없었던 사실 속에는 이러한 포구의 삶도 분명히 일정 부분 차지함도 자명하다.

 

대도시로의 발전, 산업화와 택지개발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풍경과 삶을 댓가로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이 달에 간 지 50여 년이 된 지금도 서로 완벽히 공존하며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사람들은 찾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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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델료가 얼마니?'

바람에 말리기 위해 내어놓기 시작한 생선들.

 

허락을 받아 한 장 담아본다.

 

“모델료 내셔야 돼요~.”

 

포구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그 여주인은 지난 5월에도 나의 요청에 똑같이 대답했음을 기억할까. 그래도 그 미소는 여전하다. 생선을 바구니에 담는 이를 보며 그 생선을 카메라에 담는 이는 그 미소 또한 가슴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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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도진 동헌의 모습'

발걸음은 만석동 거리를 지나 화도진 공원에 닿는다.

 

화도진 공원은 비교적 근대인 1879년에 세워진 진지로 당시의 급박히 흐르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양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인천의 방비를 두텁게 할 목적으로 탄생한 진지이다.

 

기존의 강화도를 둘러싼 돈대와 포대, 진, 보와는 달리 본토의 방위를 목적으로 하기에 그 규모도 병영이 11개에 이르는 등 상당히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실 이 화도진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유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화도진전시관 등을 둘러본 후 괭이부리마을, 두산인프라코어 방향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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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부두에서 영종도와 조약도를 보다.'

만석부두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돌린다.

 

영종신도시가 멀리 보인다. 그 사이엔 작은 섬 작약도가 있다. 북성포구가 어시장으로서의 마지막 숨을 잡고 있다면 이 만석부두는 이젠 부두로서의 역할만 남은 듯 싶다.

 

어판장 건물은 동절기라 폐쇄되었으며 출입항 관리와 부두 순시를 담당하는 파출소만이 겨울날의 만석부두에 온기를 더해주는 유일한 건물이다.

 

부두 저 멀리 보이는 조선소에서는 배 수리가 한창이다. 그 탕탕 쇠 치는 소리와 무언가 외치는 소리, 간혹 번쩍이는 용접 불꽃과 쇠 타는 냄새가 겨울 바람에 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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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부두 수산물 직매장의 벽화가 인상적이다.'

북성포구, 만석부두와는 다르게 이 화수부두는 생생한 활기로 가득하다.

 

인천에서도 연안부두 다음으로 회나 칼국수, 매운탕 먹기 좋은 곳으로 알려지고 있는 곳이 화수부두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쇠락한 부두의 길을 벗어나지 못할 뻔 했으나 이렇게 기존의 음식점들을 꾸미고 새단장하여 새롭게 태어났으니 앞선 두 포구로서는 부러워할 따름이리라.

 

주말이면 많은 이들이 들러 인천의 부두가 가진 독창적인 분위기를 즐기기에 참 좋은 곳이다. 식사도 좋고 직매장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사 가도 괜찮겠다 싶다.

 

혹여 여럿이서 둘레길을 걷다가 식사 때가 되었다면 화수부두를 기억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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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코스의 마지막 도착지 동연천역 광장'

마지막 발걸음이 닿은 동인천역.

 

지나온 길에서 느낀 한적함이 어느새 도심속의 번잡함으로 바뀐다. 넓게 설치된 광장의 스케이트장에서는 아이들의 함성이 가득하다. 인근의 화평동 냉면거리나 송현동 순대골목을 찾는 이들로 역 앞은 번잡하기 그지없다.

 

당당하게 선 동인천역 북광장 로터리의 랜드마크인 누각은 원도심의 자존심처럼 탄탄하게 버티고 있다.

 

그 앞에 서서 인천 둘레길 14코스 부두길을 마무리한다.

 

사라질 것을 향해 걷는다는 것, 다른 어떤 둘레길도 가지지 못한 그 진득한 아쉬움의 감성은 이 인천 둘레길 14코스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이다.

 

그 쌓여있는 그물에도, 올망졸망한 창문과 컬러풀한 색채의 벽이 이국적인 주택에도 무언가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녹아있다. 갯벌이 생명력의 보고라지만 이 14코스에서 만나는 갯벌은 생명력을 뛰어넘는 ‘반항’을 보여준다. 아니 그 생명력의 원천이 ‘반항’인지 모르겠다.

 

‘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난 이렇게 아직 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들리지 않는 외침이 가득한 그 갯골과 포구의 내음 속에서 걷는 이는 ‘발전’이라는 스핑크스가 내어놓은 문제를 부여잡고 걷는 발걸음 내내 그 해답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북성포구가 공사로 인해 출입이 통제되고 만석부두에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생기는 날이 온다면 이 인천 둘레길 14코스는 필연적으로 그 구간을 조절해야 할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추운 겨울 바람을 이겨내며 인천의 옛 포구와 부두를 둘러보는 것이 어떨까?

 

다시는 둘러볼 수 없을 날이 오기 전에 말이다.

 

by 장재원

2018.02.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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