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세 편이 한자리에

[컬처]by 예술의전당

올가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는 국내 초연이거나 그동안 거의 공연될 기회가 없었던 귀한 오페라 세 편이 연이어 무대에 오른다.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1830), 리하르트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1843), 조르주 비제의 <진주조개잡이>(1863)가 그것이다. 각각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오페라 역사에서 위대한 족적을 남긴 세 대가의 실질적인 첫 걸작에 해당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세 오페라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감상 포인트를 공연일자순으로 짚어본다.

뒤늦게 재조명된 비제의 걸작 '진주조개잡이'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세 편

산타 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2012

오늘날 조르주 비제는 <카르멘>을 쓴 프랑스 오페라의 대표 작곡가로 손꼽히지만 생전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젊은 프랑스 작곡가들의 꿈인 로마대상을 받았고, 당시 대작곡가인 프로망탈 알레비의 사위였는데도 창작보다는 편곡자로서 솜씨를 인정받았을 뿐이다. 25세에 작곡한 <진주조개잡이> 또한 1863년 초연된 후 비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시 무대에 올라간 적이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소외되어 있었다. 프랑스 오페라의 위대한 선배 샤를 구노를 모방한 범작으로 치부되었고, 원래 배경이 멕시코였다가 뒤늦게 인도 남쪽의 섬나라 실론(지금의 스리랑카)으로 바꾼 바람에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한 이국 취향을 반영했음에도 그 이국적 선율의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비 판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층민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카르멘>이 갖지 못한 고귀한 아름다움을 지닌 걸작으로 인정받는다.


해안 마을의 부족장으로 선출된 주르가(바리톤) 앞에 옛 친구 나디르(테너)가 나타난다. 두 사람은 칸디라는 실론의 성지에 함께 순례를 갔다가 한 무녀(소프라노)를 보고 동시에 반했는데, 주르가는 곧 마을로 돌아온 반면 나디르는 오랫동안 행방이 묘연했다가 이제야 귀환한 것이다. 그런데 나디르는 진주조개잡이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무녀로 칸디에서 새로 데려온 여인이 자신이 찾아다니던 무녀 레일라임을 알아차린다. 베일로 얼굴을 가렸지만 목소리만 듣고 느낀 것이다. 레일라 역시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남자가 가까운 곳에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그런데 신성한 무녀는 남자를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두 사람의 밀회를 목격한 제사장은 이들을 벌하여 죽이려고 하지만 주르가는 친구 나디르를 위해 추방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런데 무녀가 레일라임을 알게 되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사형을 명한다. 하지만 다시 반전이 벌어진다. 레일라의 목걸이를 본 주르가는 바로 그녀가 어린 시절에 추격자들을 따돌려준 생명의 은인임을 깨닫고 처형 직전에 나디르와 레일라를 몰래 풀어준다. 우정과 보은을 위해 지도자답지 않게 행동한 주르가의 운명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판본이 존재한다.


이 오페라의 대표곡은 테너의 고음이 꿈결같이 이어지는 나디르의 로망스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다. 높은 미성을 특징으로 하는 ‘오뜨 꽁뜨르’라는 프랑스 특유의 테너 전통이 최고로 발현된 곡으로, 웬만한 테너는 그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기 힘든 난곡이다. 바리톤과 테너의 이중창 ‘신성한 사원에서’도 특별하다. 또한 무녀로서의 종교적 신비로움과 아름다운 여인으로서의 관능적 사랑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레일라의 아리아와 사랑의 이중창도 빼놓을 수 없다. 전체 연출은 물론 무대, 의상, 조명, 안무까지 프랑스 본고장에서 온 연출팀이 맡는다.


10.15(목) - 10.18(일) 오페라극장

방황하던 바그너의 한 시절이 묻어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세 편

2014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1839년, 리가(현재 라트비아의 수도)의 오페라 하우스 소속 지휘자이던 26세의 리하르트 바그너는 빚에 쪼들린 나머지 배를 타고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그러나 영국으로 향하던 배는 몇 번이나 폭풍우를 만나 바그너를 죽음의 공포에 빠뜨린다. 4년 후 독일 드레스덴에서 초연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이런 체험에서 모티브를 얻은 바그너의 출세작이다. 오페라 제목은 남자 주인공과 유령선의 이름을 동시에 지칭한다. 독일어 원제에서 ‘fliegende’는 빠르게 움직인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지만 우리말 제목인 ‘방황하는’은 선장의 운명을 설명하고 있다. 평생 죽지 못하고 유령선을 탄 채 바다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에 처한 네덜란드 선장의 전설에서 그는 영원히 변치 않을 여인의 사랑을 얻어야만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바그너는 자신의 다른 모든 오페라와 마찬가지도 직접 대본을 써서 스스로 원하는 극적, 음악적 통합을 이루어내고자 했다.


폭풍우 속에서 고통받던 달란트 선장(베이스)의 배가 목적지에 가까워진다. 달란트가 잠을 청한 사이 검은 돛대에 붉은 돛을 단 유령선이 근처에 정박한다. 유령선에서 나타난 네덜란드인 선장(바리톤)은 7년 동안 바다 위를 방황하다 비로소 육지에 발을 붙인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는 네덜란드인의 외침 속에서 잠이 깬 달란트는 상대방의 배를 발견한다. 긴 대화 속에 네덜란드인 선장이 하룻밤 집에 머물게 해주면 보물을 주겠다고 제안하자 달란트는 집으로 그를 데려간다. 한편 전설 속의 네덜란드인 선장 초상화에 매혹당한 달란트의 딸 젠타(소프라노)는 아버지가 데려온 네덜란드인 선장을 보자마자 구혼자 에릭(테너)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네덜란드인 선장은 젠타에게 사랑을 하소연하는 에릭의 모습을 목도하고 결국 그녀의 영원한 사랑을 의심하게 되어 다시금 긴 항해를 떠난다. 젠타는 네덜란드인 선장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파도에 몸을 던지고, 그 사랑에 힘입어 구원이 이루어진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가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장르를 표방하기 이전의 초기작이다. 따라서 선율 중심의 전통적인 오페라 분위기와 통합적 구조를 강조하는 바그너의 이상이 적절히 혼재되어 그의 오페라 중 이해하기 쉽고 멜로디가 풍부한 작품으로 꼽힌다. 2막에 나오는 젠타의 발라드 ‘요호호에! 바다에서 저 배를 만난 일이 있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극적, 음악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반면 3막이 열리면서 시작되는 ‘수부들의 합창’은 바그너가 존경한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중 ‘사냥꾼의 합창’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바그너는 전막이 쉬지 않기를 원했고, 이번에 국립오페라도 그렇게 공연할 예정이다.


세계적인 바그너 베이스인 연광철이 달란트 역으로 직접 출연한다. 네덜란드인 선장 역이 아니라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타이틀롤을 부를 핀란드 바리톤 유카 라질라이넨은 이 역만 열두 개 이상의 프로덕션으로 부른 베테랑이며 2005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도 이 역으로 데뷔한 뛰어난 바그너 바리톤이다.


11.18(수) - 11.22(일) 오페라극장

도니체티에게 승리의 웃음을 안겨준 '안나 볼레나'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세 편

1830년 '안나 볼레나' 초연 포스터

가에타노 도니체티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맹주였던 로시니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네 살 연하인 빈첸초 벨리니와 경쟁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실력을 발휘한 벨리니에게 다소 밀리는 듯했으나 불리한 형국을 일거에 만회한 작품이 1830년(33세)에 작곡한 <안나 볼레나>다.


19세기 전반기의 유럽에서 오페라만큼은 이탈리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나 국력과 전체적인 문화 수준에서는 영국과 프랑스가 앞서 있었다. 따라서 이탈리아 관객도 영국, 프랑스에 관심이 많았고 작곡가 또한 외국 오페라 극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선진국을 배경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도니체티 역시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안나 볼레나>, <마리아 스투아르다>(1834), <로베르토 데버루>(1837)는 16세기 영국 왕실 역사를 다룬 3부작으로 꼽힌다. 이탈리아식 오페라 제목을 영어로 바꾸면 안나 볼레나는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비운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된다.


도니체티의 3부작은 공통적으로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여인 대 여인’의 구도를 가진다. <안나 볼레나>도 마찬가지다. 막이 열리면 이미 엔리코(헨리 8세, 베이스)의 사랑을 잃은 안나 볼레나(소프라노)는 가장 가까이 둔 시녀 죠반나(제인 시모어, 메조소프라노)가 새롭게 남편의 총애를 받는 라이벌이라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 엔리코는 궁정악사의 몸에서 왕비의 초상화가 나온 것을 증거 삼아 안나를 간통죄로 몰아붙이고, 연금된 안나를 찾아간 죠반나는 간통죄를 고분고분 인정하고 목숨만이라도 구하라고 충언한다. 이 과정에서 안나는 비로소 죠반나가 연적임을 알게 되지만 분노를 가라앉히고 상대를 용서한다. 마지막 3막에서 안나는 거의 정신이 나가 노래를 시작하고 처형 절차의 진행과 함께 극심한 감정적 부침을 오가면서 긴 3중 아리아를 부르고 이윽고 평안한 마음으로 형장으로 향한다. 도니체티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보다 5년 앞선 ‘광란의 장면’이요, 어떠한 경우에도 아름다운 선율과 명가수의 놀라운 가창력을 내세우는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장대한 피날레다.


11.27(금) - 11.29(일) 오페라극장


글 유형종 (무용·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국립오페라단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9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5.10.14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Copyright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