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한 번도 보지 못한 투오넬라의 백조가 탄생한다!

[컬처]by 예술의전당

올해는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이다. 핀란드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행사가 즐비한 가운데 예술의전당에서도 관련 음악회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컨템퍼러리 댄스와 서커스로 시벨리우스의 '투오넬라의 백조'를 구현한 작품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투오넬라의 백조'는 공연예술 Performing Arts에서 사용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깐깐한 음악으로 유명한데, 특별히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을 맞이하여 처음으로 사용 허락이 떨어진 것으로 알려진다. 시벨리우스의 '투오넬라의 백조'가 안성수 픽업그룹과 WHS의 협업에 의해 어떤 모습으로 무대 위에 오를지 기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여기, 한 번도 보지 못한 투오
지금 여기, 한 번도 보지 못한 투오
지금 여기, 한 번도 보지 못한 투오

무용계는 컨템퍼러리 댄스를 향해 움직인다

우리는 보통 ‘예술춤’이라고 하면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을 떠올리곤 한 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춤마다 시대에 따라 장르가 구분될 수 있다. 한국무용을 한국전통무용과 한국창작무용으로, 발레를 고전 발레와 현대 발레로 나누듯 현대무용 또한 모던 댄스와 컨템퍼러리 댄스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컨템퍼러리 댄스Contemporary Dance라 하면 말 그대로 ‘동시대의 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컨템퍼러리 댄스의 주요 특징이라고 하면, 융합과 통섭을 들 수 있다. 현대무 용에 한국무용이나 발레 동작을 융합하기도 하고 힙합, 운동, 곡예, 일상적 몸짓을 끌어들이는 경우도 빈번하다. 더 나아가 영상, 설치미술, 라이브 콘서트, 패션쇼, 서커스 등 춤과는 전혀 다른 분야와 통섭을 펼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인터액티브interactive, 장르파괴, 복합매체, 하이브리드 같은 용어가 더 이상 생소하지 않게 되었다.

 

컨템퍼러리 댄스는 1980년대 서유럽을 중심으로 생성, 발전해왔으나 근래 들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주도적인 춤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 서도 요즘 창작되는 현대무용 작품들은 대부분 컨템퍼러리 댄스를 지향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의 1세대로는 홍승엽, 안애순, 안성수, 안은미를 꼽을 수 있는데, 그중 안성수는 정교하고 섬세한 안무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독립적인 창작 작업도 높은 평가를 받아왔으나 특히 국립무용단이나 국립발레단처럼 다른 예술춤 장르의 국립단체 러브콜을 받는 유일무이한 현대무용가라는 점은 안성수의 경쟁력이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한국무용이나 발레 같은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작업할 수 있는 포용력은 상당히 희소성 있다. 여기서 나아가 안성수 픽업그룹은 2012년 핀란드 컨템퍼러리 서커스단인 WHS와 협업하여 '더블 익스포저Double Exposure'란 작품을 내놓은 바 있다. 올해 가을 초연하는 '투오넬라의 백조'에서 안성수 픽업그룹과 WHS는 좀더 면밀한 통섭을 시도한다.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여러 차례의 협업을 이어가면서 보다 완성도 높고 혁신적인 작품을 내놓는 것을 생각하면 두 단체의 시도와 노력을 지켜볼 만하다.

의외로 친근한 컨템퍼러리 서커스

컨템퍼러리 서커스Contemporary Circus는 컨템퍼러리 댄스와 마찬가지로 ‘바로 이 시대의 서커스’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의외로 친숙한 분야다. 여러 해 전에 ‘태양의 서커스’가 내한하여 광풍에 가까운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태양의 서커스는 아트 서커스Art Circus 로 소개되었는데 실상은 컨템퍼러리 서커스나 뉴 서커스New Circus란 명칭이 정확하다.

 

1970년대에 발생한 뉴 서커스 즉 컨템퍼러리 서커스는 기존의 서커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19세기 말부 터 20세기 중엽까지 만연했던 현란하고 감각적인 볼거리, 위험을 불사하는 묘기는 더 이상 새로운 시대의 관객에게 매력을 주지 못했다. 20세기 중엽에 이르러 관객 수가 심각할 정도로 곤두박질친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이와 반대로 컨템퍼러리 서커스는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공연 미학에 근거한 예술적인 서커스를 향해 나아갔다.

 

컨템퍼러리 서커스는 기존의 서커스와 차별화되는 몇 가지 뚜렷한 특성을 보이며 이는 곧 전 세계적인 성공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우선 동물쇼는 동물 학대에 대한 관객의 반감과 사육과 훈련에 드는 고비용으로 인해 배제되어 갔다. 또한 가족이나 집단에 의한 도제교육에서 벗어나, 서커스 학교를 통해 체계적인 훈련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더 나아가 국제 서커스 페스티벌이나 경연대회가 활성화되면서 공연자들과 단체들은 열린 접촉기회를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컨템퍼러리 서커스는 극장 공연예술의 특성을 도입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예전부터 있던 곡예 기술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주제와 내러티브를 탄탄히 하는 등 공연예술의 장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를테면 서커스에 다가 내용을 담은 연기, 노래, 춤을 융합하고 거기에 무대미술, 조명, 의상, 음향 같은 구성요소들로 공연의 예술적 총체성을 높여가는 것이다.

 

컨템퍼러리 서커스를 한마디로 이해가능하게 설명하자면 ‘이 시대의 감각에 맞게 공연예술화된 서커스’라고 할 수 있다. 핀란 드의 WHS가 지향하는 바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저글러 빌레 발로와 마술사 칼레 하키라이넨이 이끄는 WHS 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로 저글링과 인형극을 중심으로 시각예술, 미디어, 신체극 등이 통섭된 공연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 WHS가 2012년부터 안성수 픽업그룹과 협업을 이어가는 것도 보다 높은 예술적인 수준과 가치를 추 구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투오넬라의 백조, 그 새로운 날갯짓

무용에서 유독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되는 소재라고 한다면 백조를 꼽을 수 있다. 이는 마리우스 프티파의 고전 발레 '백조의 호수'가 부여한 절대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아름다운 긴 목에 우아한 날갯짓을 하는 백조의 모습이 발레리나들에 의해 극상으로 표현되어왔기 때문에 한 세기가 넘도록 관객들을 매혹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서는 고전 명작인 '백조의 호수'를 비틀어보는 혁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마츠 에크는 주체적이다 못해 반항적인 대머리 백조로 바꾸어놓았고, 매튜 본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남성 백조로 바꿨다. 대중에게는 나탈리 포트먼에게 오스카의 영예를 안겨준 이라는 영화가 더 친숙할 것이다. '백조의 호수'에 프리마 발레리나로 발탁되어 백조와 흑조를 함께 추어내야 하는 여주인공의 순수와 광기 사이를 오가는 복잡 미묘한 연기가 압권인 영화다.

 

무용에서 백조라는 소재는 상당히 강력한 이미지를 구축해왔으나 '백조의 호수'에 얽매여 있는 듯한 인상도 없지 않다. 따라서 이번에 선보일 '투오넬라의 백조'가 소재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커다란 백조를 그린 시벨리우스의 음악 '투오넬라의 백조'에서 영감을 얻어 컨템퍼러리 댄스와 서커스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백조의 신비감과 영 롱함은 생사의 초월성, 에로스와 아가페, 북유럽의 자연경관, 핀란드의 민속색을 머금고 있다.

지금 여기, 한 번도 보지 못한 투오

악센리 갈렌 칼레라 <레민카이넨의 어머니> 1897

'투오넬라의 백조'는 핀란드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레민 카이넨에 관한 이야기에 근거한다. 황천 투오넬라의 검은 강에 는 슬픈 노래를 부르는 신성한 백조가 있다. 레민카이넨은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투오넬라의 백조를 잡으려고 하지만 그만 물에 빠져 목숨을 잃게 된다. 그 후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내용이다.

 

시벨리우스의 '투오넬라의 백조'를 구현하는 안성수 픽업그룹과 WHS의 협업은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와 핀란드 컨템퍼 러리 서커스의 현재를 대변하는 동시에 융합과 통섭을 지향하는 이 시대 공연예술의 실체를 가늠케 해주리라 본다. 그 밖에도 첨단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예술성을 잃지 않은 무대미술, 조명, 영상과 함께 해외 유명 뮤지션들의 라이브 연주까지 어우러져 시청각적 미감을 최대한으로 돋울 것이다. '투오넬라의 백조'는 9월 말에 핀란드에서 초연한 후 국내에는 10월 23일 부터 25일까지 CJ 토월극장에서 첫선을 보인다.

 

글 심정민 (무용평론가, 한국춤평론가회 회장)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10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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