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풍경화 빛의 시대를 열다

[컬처]by 예술의전당

12.19(토) - 2016.4.3(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 2, 3전시실

인상주의 풍경화 빛의 시대를 열다

구스타브 카유보트 '콜롱브의 언덕'

인간의 삶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 변화가 과격하거나 급진적일수록 한층 더 불편함을 느낀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기존의 틀을 바꾸려는 모든 시도는 비판과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다수는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성공한 극소수의 시도만이 인류로 하여금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 새로움에 적응토록 만든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에 대한 공포심은 점점 사라지고 낯섦은 이내 익숙함이 된다. 그리고 새로움은 어느덧 고전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곤 한다.

 

미술도 예외는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의 바람은 수없이 몰아쳤고, 시대마다 크고 작은 변화를 통해 미술의 역사는 새로 쓰였다. 또 시대에 따라 고쳐 쓰이면서 유구한 인류 문명의 한 페이지로서 만들어져 왔다. 서구미술의 역사가 시대사조를 분류하는 식별 방법으로 시대적 특성과 특징적 요소의 비교 분석을 통해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룬 양 기록하고 있지만, 크게 보면 회화의 역사는 르네상스로부터 4백 년 동안 두드러진 변화 없이 ‘전통의 계승’이라는 고정된 틀 안에서 이어져 왔다.

 

19세기에는 서양미술사에 고착된 전통을 획기적으로 뒤엎고자 하는 혁명적 회화운동이 등장하는데, 그 중심에 선 것이 바로 인상주의 미술이다. 오늘날 고전이 된 인상주의 회화는 어찌 보면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19세기 당시 인상주의는 너무도 생소하고 혁신적인 사조로 여겨져 사회적 비판과 집단적 저항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조롱과 지탄을 받으며 처절하게 버림받는다. 인상주의 미술은 동시대인에게는 여태껏 보지 못한 새로운 그림이었다. 빛이 화면을 지배하는 익숙하지 않은 색채감, 황금분할적 구도를 무시한 자유로운 화면 구성, 규격에서 벗어난 작고 낯선 캔버스 사이즈, 그리고 인간 중심의 인물 표현방식 등 모든 것이 낯섦 그 자체였다. 그들의 작업은 변화를 두려워하던 당시 사람들을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인상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최초의 혁신적 회화운동으로 미술의 역사를 바꾼 가장 위대한 미술사조이며, 전통회화의 끝인 동시에 근대미술의 시작이었음을.

인상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상주의 미술을 서양미술사의 가장 혁신적인 미술운동으로 기록되게 만들었는가.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상주의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둠tenebrosi에 대한 빛luminosi의 승리’다.

 

1435년 르네상스 최초의 원근법을 이론화시킨 레온 알베르티 Leon Alberti의 이론을 기반으로 발달한 서양회화사는 정형화된 틀 안에 잘 짜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주제는 성서와 신화 속 영웅을 중심으로 이상적 현상을 묘사하는 것을 기본 틀로 한다. 거기에 지배계급을 위한 미화와 찬양이라는 서술적 요소가 더해진다. 기법적인 면에서 보면 전통회화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콘트라스트 기법, 즉 명암의 강렬한 대비는 어두운색이 밝은색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공식이었다. 전통회화는 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기록이자 빛이 어둠에 지배당하는 색채적 특징을 다분히 띠고 있다. 인상주의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이런 회화의 지배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었다는 점, 즉 신 중심의 회화를 인간 중심, 나아가 작가 중심의 회화로 바꿨다는 것이다. 비현실적, 이상적 현실이 지배하는 소재적인 모순에서 탈피하여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실재적 표현을 주제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각과 인식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을 닮은 현재 진행형의 그림

인상주의 풍경화 빛의 시대를 열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빌뇌브레 자비뇽'

전통회화에 반기를 들고 그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상주의자들이 찾아낸 최고의 무기는 바로 플레네리즘Plein-Airism, 즉 외광 풍경화였다. 캔버스와 물감을 들고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다양한 현상을 보고 느끼는 그대로 작가의 인지력과 표현력에 따라 그리는 것. 이것이 바로 외광 풍경화이며, 외광 풍경화야말로 인상주의 미술의 시작이자 탄생의 비밀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써 아틀리에에서 기록 자료와 상상으로만 그리던 전통회화의 제작방식을 탈피하게 되었고, 대자연이라는 드넓은 아틀리에에서 자연을 지배하는 가장 큰 요소는 빛이라는 것과 화면을 지배하는 색은 밝은색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담기 위해 인상주의자들은 그림에 ‘즉흥성’이라는 작가적 기질을 드려냈고, 처음으로 그림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또한 아틀리에에서 온갖 기교를 동원해 완성한 그림만이 훌륭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자연이 그러하듯 끊임없이 덧칠해 변할 수 있는 ‘결코 끝나지 않는’ 그림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즉 자연이 살아 숨 쉬듯이 하나의 작품이란 완성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통해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으로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인상주의를 빛낸 수많은 화가 중에는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대중에게 널린 각인된 익숙한 이름들이 많다. 그렇다면 인상주의는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미술사가들은 저마다 인상주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견해를 피력해왔다. 혹자는 구스타브 쿠르베라 칭하기도 하고, 퓌비 드 샤반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에두아르 마네에서 그 출발을 기술하는 이들도 있다. 이 화가들은 모두 인상주의 시대와 맞물려 활동했다는 점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상주의와 연관성을 지녔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인상주의의 기원은 17세기 화가 클로드 로랭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태생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신봉자이자 고전주의 화풍에 심취했던 그는 평생 빛의 효과를 작업에 연결하는 데 몰두했다. 아침, 점심, 저녁에 내리는 다양한 자연 빛의 변화를 이용하여 그림에 시간성을 도입한 최초의 화가로서, 영국화가 윌리엄 터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 또한 자연에서 느끼는 감성을 풍부한 터치로 표현함으로써 예술가의 감정 이입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인상주의 기원과 무관하지는 않다. 터너 또한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대표 화가다. 프랑스 인상주의를 빛낸 클로드 모네가 인상주의의 오메가라면 터너는 인상주의 미술의 알파라 칭해도 무방할 만큼 젊은 화가들을 빛의 예술에 눈뜨게 한 선지자적 예술가였다. 동료 화가 존 컨스터블과 함께 ‘빛의 화가’로 불린 터너는 영국의 자연과 바다 풍경에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드라마틱한 그림을 통해 당대에 가장 혁신적인 기법을 사용한 화가다. 그의 영향력은 영국에서 크게 빛을 보진 못했지만, 프랑스 인상주의 회화의 기틀을 다지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풍경화를 회화의 독립된 장르로 개척한 밀레와 바르비종의 화가들은 인상주의 미술의 초석을 다진 선배 작가들이다. 밀레와 더불어 코로, 루소, 디아즈 드 라 페냐, 도비니 등이 중심이 된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플레네리즘을 발명한 최초의 작가들이다. 이들이 일궈낸 플레네리즘은 인상주의 미술을 탄생시킨 결정적인 작업 방식이 되었다. 밀레, 바르비종파 화가들과 함께 인상주의 미술운동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선구자는 바로 쿠르베와 마네이다. 사실주의 화가로 불리길 고집한 쿠르베는 아카데미즘에 정면으로 대항한 소신 있는 예술가였다. 전통회화에 반기를 든 작품 <오르낭의 매장>(1850)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는가 하면 <세상의 기원>(1866)을 통해 누드화의 신기원을 만들어냈다. 쿠르베와 함께 아카데미즘에 정면으로 도전한 또 다른 화가는 마네다. 자연과 태양 빛을 사랑했던 마네는 작품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2)와 올랭피아>(1863)를 통해 모더니즘의 길을 열어주었다. 스페인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고전주의 회화로 시작했지만, 세속적인 생활상에 관심이 많던 그는 회화의 소재적 틀을 깨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하며 인상주의 미술의 길을 활짝 열어준 작가다.

인상주의 풍경화 빛의 시대를 열다

폴 고갱 '루앙 풍경'

역사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듯 인상주의 역시 이러한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탄생했다. 살롱전에 거부당한 작가들이 조촐하게 마련한 1874년 ‘무명예술가협회’ 전시로부터 시작된 제1회 인상주의전은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그 호칭을 얻게 되었고, 1886년 여덟 번째 전시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인상주의는 카유보트, 피사로, 모네, 르누아르, 모리조와 같은 걸출한 프랑스 화가들에 의해 꽃피웠으며 세잔, 반 고흐, 고갱으로 이어지는 후기인상주의 화가들로 그 절정에 달했다. 쇠라, 시냑, 시슬레의 신인상주의로 변천하면서부터는 근대의 길로 들어섰다. 오늘날 전 세계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이 ‘빛의 회화’가 1900년까지만 해도 동시대인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는 사실은 1백여 년이 훨씬 지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인상주의 회화는 전통적 아카데미즘에서 근대미술로 전환하는 시발점이었고, 창작의 자유를 일깨워준 최초의 미술운동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달 19일부터 열리는 이번 전시는 풍경화를 통해 인상주의 미술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이다. 왜 풍경화인가 묻는다면 풍경화야말로 인상주의 미술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는 풍경화로 시작하여 풍경화로 막을 내렸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풍경화가 인상주의 회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인상주의의 선구자격인 코로, 도비니, 부댕부터 프랑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카유보트,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는 세잔, 반 고흐, 고갱, 신인상주의 쇠라, 시냑, 시슬레, 나아가 인상주의의 끝을 알리는 나비파와 야수파 그리고 한 세대 늦게 등장한 독일 인상주의까지, ‘인상주의 인명사전’이라 할 만큼 모든 작가를 총망라한 이번 전시는 이들이 남긴 풍경화를 통해 인상주의 미술의 특징과 다채로운 모습을 동시에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빛의 시대를 연 이들의 작품이 어떤 형태로 변화, 발전하고 계승되었는가를 연대기적 서술로 살펴봄으로써 인상주의 미술에 대한 쉽고 명확한 이해를 돕는 소중한 전시가 될 것이다.

 

풍경화가 인상주의의 모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상주의의 시작이며 인상주의 미술을 가장 빛내준 장르임엔 분명하다. 인간이 대자연의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모습들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 아름다운 감동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상주의 미술이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글 서순주 (전시 커미셔너)

© Wallraf-Richartz-Museum & Fondation Corboud, Cologne, Germany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1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5.12.30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