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핀란드 문화 속에 살아 숨 쉬는 시벨리우스

[컬처]by 예술의전당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음악회_ 주한 핀란드 대사 마띠 헤이모넨

오늘날 핀란드 문화 속에 살아 숨 쉬

오로라, 산타클로스, 호수, 사우나, 자일리톨, 풍요와 복지, 울창한 침엽수림, 아울러 수준 높은 교육. ‘핀란드’라는 국가명과 함께 한국인의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음악 팬들에게는 여기에 ‘시벨리우스’라는 이름이 더해진다. 예술의전당이 주최한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음악회>의 첫 번째 공연과 다섯 번째 공연을 관람한 마띠 헤이모넨 주한 핀란드 대사를 11월 초, 서울 종로구의 주한핀란드대사관에서 만났다. 헤이모넨 대사는 핀란드의 정경을 묘사한 그림 등을 보여주며 핀란드인에게 시벨리우스가 갖는 의미를 상세하고도 친절하게 설명했다.


반갑습니다. 멀리 있는 나라의 대사로 부임해 오셔서 한국인들이 연주하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과 7번 연주를 들으셨는데, 핀란드인으로서 어떻게 보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프로 음악가가 아니라서 음악적인 수준을 평가할 수는 없어도 매우 감동적인 연주였습니다.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김대진 지휘 수원시향의 연주는 크게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시다시피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인에게만 사랑받는 작곡가가 아니며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애호를 받고 있지만, 자신의 조국인 핀란드와 특별한 관련을 맺고 있죠. 예를 들어 베토벤은 독일이 자랑하는 작곡가이지만 세계인이 베토벤을 들을 때 굳이 ‘독일’이라는 국가와 연관 짓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이와 달리 어쩔 수 없이 핀란드의 정서와 정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제게는 고국이 진하게 생각나는 저녁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핀란드는 첨단산업과 복지, 교육 등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지만, 1917년 독립하기 전에는 세계인 앞에 핀란드의 특징과 매력에 대해 널리 알릴 필요가 시급했을 듯합니다. 특히 시벨리우스라는 작곡가의 존재가 이 독립국의 정체성 성립에 매우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만.


“시벨리우스는 핀란드 공화국이 독립하기 전에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독립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국가운동의 일부가 되었으며, 특히 초기 작품에서 그의 음악은 핀란드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독립 전야에 핀란드에서는 러시아의 억압이 심해지고 있었으며, 그런 가운데 시벨리우스는 저항의 의미를 담아 저 유명한 ‘핀란디아’를 작곡하게 되었죠. 오늘날의 국가 아이덴티티에는 스포츠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만, 예술 또한 다른 의미에서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핀란드의 독립에 있어서 시벨리우스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핀란드 국민 개개인에게 시벨리우스가 갖는 의미도 궁금합니다. 약간 거리가 있는 역사인물로 느껴지는지, 아니면 핀란드인 모두가 그의 음악을 친숙하게 접하며 성장하게 되는지가 궁금합니다.


“시벨리우스는 역사라기보다는 오늘날 핀란드의 문화 속에 살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음악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매년 12월이면 핀란드인이 그가 작곡한 크리스마스 캐럴도 널리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유로화 도입 이전 핀란드의 100마르크 지폐를 꺼내 보였다.


“옛 100마르크 지폐입니다. 핀란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지폐죠.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의 손에’ 시벨리우스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웃음).”


헤이모넨 대사에게 혹시 교향시 ‘핀란디아’에 나오는 ‘핀란디아 찬가’ 선율이 캐럴로 불리는 것인지 묻자 대사는 “그 곡은 아니고 다른 노래”라며 “물론 핀란디아 찬가는 모든 핀란드인이 어린 시절부터 배우는 친근한 선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눈을 찡긋하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지금은 사라진, 1960년대 독립했던 한 아프리카 나라가 국가로 ‘핀란디아’ 선율을 사용했다는 것.

오늘날 핀란드 문화 속에 살아 숨 쉬

핀란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우나, 시벨리우스, 시수SISU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은 바 있습니다. ‘시수’라는 개념이 생소해서 찾아보았는데, 지금은 ‘지혜로움이 동반된 꿋꿋함’을 뜻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벨리우스의 초기 작품 즉 교향곡 1, 2번이나 ‘핀란디아’를 들으면서 이 ‘시수’라는 개념을 상기하게 되는데요, 잘못 이해한 것일까요?


“이 작품들에서 ‘시수’를 떠올린 사람은 혼자만이 아닐 것입니다. 음악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옳거나 옳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작품들이 ‘시수’를 뜻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저 역시 이 곡들에 ‘시수’라는 개념이 나타내는 ‘의지의 힘’이 들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억압에 맞서 투쟁하던 독립운동 시기의 정서가 들어 있죠. 이 곡들은 핀란드인의 마음속에 깊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앞에 말씀드린 대로 시벨리우스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마음도 울리는 ‘보편적인’ 면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친구들이 상당수의 미국 학생들이 ‘핀란디아’를 합창곡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뭉클했다는 이야기를 제게 해주었습니다. 그들로서는 이 곡이 애국적이기 때문에 부르는 것은 아니죠.”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실제 민요를 단 한 소절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핀란드인의 정서를 정확하게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핀란드 민요를 잘 아는 핀란드인으로서 보시기에 이것이 사실입니까.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맞습니다. 시벨리우스는 민요를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았죠. 하지만 음악가로서 그는 핀란드 민요를 수집했고 민요의 어법이나 음악적 문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민요가 가진 요소는 폭넓게 활용하면서, 그것을 단순히 모방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자기만의 음악을 창안한 것입니다.”


그는 당대 핀란드의 대표 화가 악셀 갈렌Akseli Gallen-Kallela이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신화를 바탕으로 한, 말을 탄 남자가 밤하늘 아래 뿔나팔을 부는 그림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대사는 그림 아래 ‘전쟁터로 떠나는 쿨레르보’라고 제목을 써주며 ‘시벨리우스의 초기 작품으로 남성 합창이 들어간 ‘쿨레르보 교향곡’이 있다’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시벨리우스는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 핀란드의 민족신화인 ‘칼레발라’를 음악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쿨레르보 역시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주인공입니다. 그 시대의 건축물이나 미술작품에도 ‘칼레발라’ 이야기가 널리 응용되고 있습니다. 시벨리우스의 친구인 갈렌이 그린 이 그림들에도 나타나고 있죠. 영화로 인기 있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도 다른 북유럽 국가들의 신화 외에 ‘칼레발라’에서 차용된 부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시벨리우스, 그리고 오늘날의 핀란드 음악가들

화제를 돌려 오늘날 세계 음악계를 선도하는 핀란드 음악가들의 활약상과 그 비결에 대해 물었다. 헤이모넨 대사는 에사 페카 살로넨, 유카페카 사라스테, 사카리 오라모 등 지휘자들의 활약을 언급하며 11월 13일 핀란드 지휘계 중진인 오스모 벤스케가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회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콘서트에서는 시벨리우스 ‘포횰라의 딸’과 핀란드 현대 작곡가인 키모 하콜라의 클라리넷 협주곡, 베토벤 교향곡 5번 등이 연주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많은 분이 핀란드 음악교육의 성공 비결에 대해 질문합니다.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제가 드리고 싶은 대답은 보편적인 음악교육에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직업 음악가로 커 나갈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어린 시절에 모든 사람을 위해 시작되는 음악교육을 말하는 것입니다. 음악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은 일이죠. 핀란드는 일반 교과과정 내에서 모든 사람이 음악적 감수성을 키워가도록 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음악적 감수성을 가진 청중을 키울 때, 재능 있는 직업 음악가들이 음악적 지식과 이해력이 깊은 청중에 둘러싸여 격려를 받으며 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핀란드 음악가들에게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봅니다.”


대사는 덧붙여 음악축제와 합창운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점을 핀란드 음악사회의 성공비결로 들었다. 그는 이를 통해 음악 전문가와 애호가가 서로 지식과 흥미를 높여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핀란드는 인구가 500만 명 남짓에 불과해 비교적 작은 국가라고 할 수 있지만, 이 나라에서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이 치러집니다. 거의 모든 도시마다 음악 페스티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핀란드가 자랑하는 쿠모 실내악 페스티벌을 들 수 있겠는데, 쿠모에는 5성급 호텔 같은 화려한 시설은 없습니다(웃음). 대신 여기 초청되는 음악가들은 휴일처럼 느끼며 행복하고 여유롭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청중도 그런 분위기를 즐기죠.”


다시 화제를 돌려 헤이모넨 대사 개인에게 있어서 클래식 음악과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갖는 의미를 물어보았다. 대사는 “저 역시 음악이 인정받고 평가받는 환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시벨리우스 음악은 핀란드인에게 기본교육의 일부이니까요. 가장 좋은 사례는 역시 ‘핀란디아’입니다. 외국에서 이 선율을 들으면 불끈 감동이 솟구쳐 오르죠!”라며 웃음을 짓더니 뜻밖의 문서를 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연출가로 활약 중인 그의 딸 이다가 연출을 맡고 그녀의 남편이자 대사의 사위인 작곡가 마르쿠스 비트라넨이 작곡한 신작 오페라 <작곡가 앤 엘리제 한니카이넨>이 11월 13일 헬싱키에서 초연된다는 내용. 그의 가정 역시 음악가 집안이었다!


작별 인사를 나누며 대사는 피아니스트 겸 음악학자인 에릭 타와스티예르나가 쓴 「시벨리우스 평전」과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헬싱키 필하모닉 등과 협연해 핀란드에서도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을 건넸다. 대사는 “한국은 전원적인 핀란드에 비해 분주한 편이지만 정이 많은 사람들의 기질 등 핀란드와 닮은 점이 많다”며 “한국 생활이 즐겁다”고 활짝 웃음 지었다. 나오는 길에 대기실에 서 있는 핀란드의 대표 카툰 캐릭터 무민Moomin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인터뷰·정리 유윤종 (동아일보 문화기획팀장)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1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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