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이 완성한 신데렐라 후일담 '레베카'

[컬처]by 예술의전당

1.5(화) - 3.6(일) 오페라극장

 

히치콕이 완성한 신데렐라 후일담 '레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

삶을 지속하는 데 있어 벗어나려 할수록 더 옥죄어오는 감정이 있다면 그건 바로 ‘공포’일 것이다. 순식간에 인간을 덮치는 공포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공포에 휩싸인 인간에게 남는 건 그 공포를 인정하고 감당하는 일뿐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는 이 묵직한 공식을 소설 「레베카」(1938)를 통해 수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완성했다. 가난하지만 순수한 ‘나I’가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막심 드 윈터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의 본가인 맨덜리 저택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건 전 부인인 레베카의 흔적과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의 협박뿐이다. 숨을 죄여오는 공포로 가득한 저택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러운 사건을 다루는 이 소설의 백미는 서슬 퍼런 스릴러에 덧입힌 로맨스와 동화적 요소다. 이 거대한 이야기의 서술자이자 유일하게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나I’의 심리를 세밀화처럼 그려낸 문장은 이 소설의 수많은 패러디와 모방작을 낳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스릴러의 대가이자 서스펜스의 아버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레베카」를 탐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히치콕은 소설 「레베카」가 출간되자마자 판권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대프니 듀 모리에를 설득했으며, 이 인연으로 그녀의 또 다른 소설 「새」를 영화로 옮겨 훗날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대표하는 영화 <새>(1963)를 연출할 수 있었다. 영화 <레베카>(1940)는 영국 출신의 히치콕이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제작한 영화이자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겨준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히치콕이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데 있어 가장 집중한 지점은 맨덜리 저택이라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공포로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그 어떤 감독보다 공간을 연출하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온 히치콕은 러닝타임 내내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을 덮칠 것만 같은 날카로운 긴장감을 유지한다. 특히 이 팽팽한 긴장을 찰나의 공포로 치환하는 댄버스 부인의 등장은 영화 <레베카>의 백미다.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주디스 앤더슨의 냉정한 얼굴과 연기는 위협적이며, 그런 댄버스 부인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맨덜리 저택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관객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살인은 어두운 거리보다 대낮에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내가 신데렐라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사륜마차에서 시체가 발견되도록 할 거다. 그렇게 했는데도 관객이 등골 오싹한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면 내가 오히려 실망할 거다.” <레베카>가 무서운 신데렐라 후일담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건 두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내내 긴장의 끈을 팽팽히 당기는 히치콕의 연출 덕분이다.

히치콕이 완성한 신데렐라 후일담 '레 히치콕이 완성한 신데렐라 후일담 '레

영화 '레베카' 중 한 장면

히치콕이 완성한 신데렐라 후일담 '레

영화 포스터

뮤지컬 '레베카', 흑백 스크린에서 빠져나와 색을 입다

히치콕이 완성한 신데렐라 후일담 '레

1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히치콕 감독

히치콕은 소설 「레베카」가 품은 공포를 흑백의 스크린에 견고하게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에서 날카롭게 설계된 흑백 스크린으로 옮겨간 <레베카>는 뮤지컬에 이르러 색色을 얻고 화려한 무대 위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과시한다. 물론 뮤지컬 <레베카> 또한 소설과 영화가 지향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기반으로 레베카를 향해 각기 다른 마음을 품은 인물들의 갈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단, 비밀의 열쇠인 레베카의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유령처럼 이야기 속을 떠도는 존재 레베카는 소설에선 막심의 총에 의해 살해당하고 영화에선 막심과 몸싸움을 벌이다 사고로 죽고 뮤지컬에선 자살한다. 자연스레 각기 다른 레베카의 죽음에 대응하는 막심의 태도도 차이를 보이지만 극을 좌지우지하는 정도는 아니다. <레베카>에서 중요한 건 인간의 삶에 내려앉는 공포의 무게감, 그 자체니까. 매혹적인 이야기의 생명력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영국에서 소설로 태어나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고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뮤지컬로 변신해 한국에서 연이은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레베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글 이유진 (「맥스무비」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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