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한 낭만 오페라의 세계 속으로

[컬처]by 예술의전당
장대한 낭만 오페라의 세계 속으로

Der Ring des Nibelungen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페라의 혁명가로 불리는 리하르트 바그너는 전체 연주 시간만 열여섯 시간 남짓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의 4부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바그너는 여러모로 기존의 오페라들과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음악극을 모색했는데, 특히 '탄호이저'와 '로엔그린' 등을 쓴 이후로는 음악과 드라마를 동등한 비중으로 강조하고, 이 둘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작품들을 썼다. 바그너는 자신의 이러한 혁신적인 음악극이 오페라로 불리는 게 못마땅했던지 ‘악극’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창시하여 그렇게 불렀다. 바그너의 후기 작품에 해당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파르지팔' 등을 악극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역작은 그가 무려 28년에 걸쳐 대본을 직접 쓰고, 거기에 음악을 붙인 장대한 스케일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라 할 수 있다.

 

'니벨룽의 반지'는 모두 네 작품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번 11월에 공연하는 '라인의 황금'은 줄거리상 프롤로그에 해당하며, 이후 세 편의 이야기가 더 이어진다. 갈등의 단초는 뜻밖의 작은 사건에서 시작되는데, 지하세계에 사는 난쟁이 니벨룽족의 알베리히가 라인강 기슭에서 반짝이는 자연 형태의 황금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이 황금을 가공해 반지를 만들면 절대 권력을 거머쥘 수 있다지만, 거기엔 한 가지 치명적인 전제 조건이 있었으니 바로 사랑의 기쁨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 그러나 이미 권력에의 탐욕에 완전히 사로잡힌 알베리히는 덥석 그 황금을 움켜쥐고는 “나는 이제부터 사랑을 저주하겠다!”라고 외친다.

 

이후 이 반지를 다시 자연 상태로 되돌려 세계 질서를 회복하려는 측과 반지를 차지해 새로운 절대 권력을 휘두르려는 측, 두 세력 사이의 처절한 쟁투가 '니벨룽의 반지'의 중심 이야기가 된다. 바그너는 수 세대에 걸쳐 펼쳐지는 이 반지 쟁탈전을 4부작 악극을 통해 생생히 묘사하면서, 등장인물들의 탐욕과 질투, 공포, 권태감, 음모, 두려움, 희생, 배신 등의 적나라한 인간적 감정들을 특유의 폭발적이고 심오한 음악 속에 녹여냈다.

장대한 낭만 오페라의 세계 속으로

아힘 프라이어의 연출로 공연된 LA오페라의 '니벨룽의 반지 - 라인의 황금'(2010)

그간 '니벨룽의 반지'는 입문자에게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주요 등장인물만 20여 명이 넘고, 장대한 길이만큼이나 각 작품의 줄거리와 대사도 대단히 철학적이고 복잡하며 또한 심오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바그너의 음악은 독일 전통의 교향악적 흐름이 강하고, 성악 파트 또한 이탈리아식 아리아와 중창, 합창 등을 배제하고 드라마의 흐름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쓰여져 처음 접하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작품으로 손꼽혀왔다. 이런 연유로 국내에서는 지난 2005년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마린스키오페라단의 4부작 공연 이후 단 한 번도 무대에 올려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 11월 국내 제작진에 의해 1부 '라인의 황금'이 공연을 앞두고 있다.

 

우선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의 이름이 눈에 띈다. 그는 독일 연출계가 배출한 세계적인 거장으로, 그간 오페라계에서는 독특한 예술적 성취로 그 이름을 널리 알려왔다. 대개 독일어권 오페라 연출가들이 치밀하고 정교한 연극적 논리로 작품에 접근하여 꽤나 난해한 해석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프라이어의 오페라 연출은 무대미술의 비중이 크고 보다 감각적인 해석이 특징이다. 이미 미국 LA오페라와 독일만하임국립극장 등에서 '니벨룽의 반지' 전체 4부작 연출을 성공적으로 경험했으며, 이번 서울 공연을 위해서는 새로운 콘셉트와 차별화된 무대미술 및 의상으로 완전히 새로운 프로덕션 제작에 나선다고 한다. 그의 연출이 보여줄 새로운 '니벨룽의 반지'의 세계가 사뭇 기대된다.

 

한편 음악 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바그너의 악극은 연주가 까다롭기로 유명하여 본고장 유럽에서도 바그너 전문 성악가 그룹이 별도로 존재한다. 그만큼 음악적 장벽이 높고 거대한데, 출연 성악가들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바그너 전문 솔리스트들부터 비교적 신진급들이 혼재되어 있다. 특히나 음악 파트의 본질적인 문제는 관현악으로, 이탈리아나 프랑스 오페라 등과는 달리 오케스트라가 명백히 연주의 중심에 서는 바그너 악극의 특성상 관현악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바그너 음악극에 처음 도전하는 국내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표현력과 연주 완성도 등이 벌써부터 초미의 관심사. 공연 주최 측에서는 바그너 튜바와 잉글리시 혼 등 금관과 목관 파트에 독일 출신의 연주자 6명을 특별 초청해 본고장 사운드를 선보인다는 각오다. 관객들의 공연 만족도 또한 관현악 파트가 얼마나 ‘바그너다운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듯하다. 여러모로 이번 '라인의 황금'은 올해 하반기 국내 음악계 최고 화제의 공연이다.

기념비적 비극이 주는 숭고한 감동의 극치

장대한 낭만 오페라의 세계 속으로

Lucia Di Lammermoor © Teatro Politeama Greco Lecce

19세기 초 이탈리아 오페라계를 지배한 스타일은 벨칸토였다. 직역하면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벨칸토는, 인간의 목소리를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다듬어 조각 같은 세공미를 자랑하는 오페라 스타일을 말한다. 가에타노 도니체티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특히나 그는 <사랑의 묘약> 등 달콤하고 유쾌한 희극 오페라뿐만이 아니라 장대하고 처절한 비극 오페라를 두루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은 <루치아 디 람메르무어>인데, 이는 벨칸토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비극으로 지금도 오페라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명작으로 남아 있다. 오페라의 두 주인공 루치아와 에드가르도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지만 그들 가문은 수 대째 폭력으로 얼룩진 원수지간이다. 그럼에도 에드가르도는 루치아와의 결혼을 약속하고 잠시 외교 임무 수행을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이때 루치아의 오빠 엔리코가 에드가르도의 편지를 조작하여 둘 사이를 떼어놓고 기어이 루치아를 유력자 집안의 남자와 정략결혼시킨다. 결혼식 당일 황급히 나타난 에드가르도의 절규를 본 루치아는 그제야 자신이 오빠에게 속아 거짓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된 것을 깨닫는다. 이내 무너져 내린 루치아는 신혼 첫날밤부터 착란 증세에 빠져 남편을 칼로 찌르고는 자신도 완전히 정신을 잃은 채 노래하다 죽어간다.

 

그 유명한 ‘루치아 광란의 장면’은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무려 20여 분에 걸쳐 계속되는 이 장대하고도 기념비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아리아는 벨칸토 시대의 오페라 미학을 규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인간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추구했던 당시의 오페라들은 ‘피를 토할 때까지 아름답게 노래하다 죽어가라’라는 탐미적인 명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벨칸토 오페라는 프리마돈나, 즉 여자 주인공의 비극적인 운명에 특별히 주목하게 된다. 비련의 상황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 여인은 극한의 절망과 고통 속에서 꾀꼬리처럼 아름답게 노래하다 죽어갔으며, 관객들은 가슴을 저미는 그 노래 속에서 이탈리아 오페라가 주는 숭고한 감동의 극치를 맛보았다.

장대한 낭만 오페라의 세계 속으로

루치아 역의 소프라노 질다 파우에

이번 11월 공연에서 여주인공 루치아를 노래할 소프라노 질다 피우메에 대한 기대는 각별하다. 그는 이탈리아 유수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벨칸토 오페라의 주역을 도맡고 있는 가수로, 명쾌한 딕션과 특유의 짙은 음색이 초절 기교의 화려한 고음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대단히 뛰어난 소프라노이다. 이 밖에 테너 세르지오 에스코바르가 노래할 에드가르도, 명쾌한 음색의 바리톤 루카 그라시와 폭발적인 표현력의 우주호가 그려낼 서로 다른 매력의 엔리코에도 눈길이 간다.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와 연출자가 음악과 무대의 중심을 잡고, 주요 배역들도 이탈리안 캐스팅으로 이루어진 만큼 본고장의 오페라 전통이 전해주는 매력의 요체를 확인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글 황지원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월드아트오페라, 솔오페라단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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