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백과 이수인, 양극의 스타일, 상통의 연극

[컬처]by 예술의전당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각자의 스타일이 뚜렷하게 다른 이강백 극작가와 이수인 연출가의 협업은 선뜻 상상하기 어려운 조합이었다. 그리고 그 협업이 성공적일 것이라는 낙관은 누구도 손쉽게 내리기 어려운 것이었다. 지난 2016년 3월, 적어도 두 사람의 <심청>이 연극계의 작은 사건으로 공연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이들의 두 번째 협업이 될 <어둠상자>는 연극 애호가들 사이에 은근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강백과 이수인, 양극의 스타일, 상

Lee Gangbeak 이강백

이강백은 누구인가. 일찍이 1971년에 「다섯」이라는 작품으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여 지금까지 약 40여 년간 총 8권의 희곡집을 펴냈으며, 「파수꾼」과 「결혼」, 「들판에서」와 같은 다수의 작품이 일찌감치 교과서에 수록된 극작가로 그 자체가 이미 살아 있는 한국연극사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여느 젊은 극작가들 못지않은 에너지로 현장을 지키고 있는 현역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 <심청>에서 보여주었던 삶과 죽음에 대한 노老작가의 통찰은 연극계 안에서 의미 있는 무게 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강백의 희곡은 무대화하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그의 우화적인 극작술은 등장인물과 그 삶을 압축적으로 관념화하여 제시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개성적이기보다 유형적인 등장인물들이 작가가 짜놓은 플롯을 단도직입적으로 수행한다. 좋게 말하면 이강백의 희곡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연극의 ‘영혼’이라고 명언했던 플롯의 뼈대가 굵고 분명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플롯 또는 연극적 설정이 너무 강해서 그 뼈대에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살을 붙여야 하는 작업을 온전하게 연출가와 배우들의 과제로 남긴다.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과하면 억지스러워지고 모자라면 뻔해지기 때문이다. 일단 무대화에 성공한 그의 희곡이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이강백과 이수인, 양극의 스타일, 상

Lee Sooin 이수인

이수인은 누구인가. 경력으로나 연극 스타일로나 연극계의 이너서클로 안착하기보다는 아웃사이드에서 야생하며 끊임없이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몇 안 되는 연출가이다. 일찍이 운동권 시절을 거쳐 1989년에 공동 집필과 연출을 맡았던 극단 한강의 <노동자를 싣고 가는 아홉 대의 버스>는 실상 그의 이름보다 더 잘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극단 오늘을 이끌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비의미적인 언어와 소리, 음악이 서로 넘나드는 몸의 연극을 집요하게 추구해나갔다. 포스트모던 연극이라는 용어가 아직 생소했던 당시에, 그래서 선구적인 작업들이었다.

 

이수인 연극의 비의미적인 연출 미학은 그렇다고 해서 손쉽게 무의미로 귀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신기하게도 날카로운 사회비판(<해피투게더>, <엔론> 등)이나 정확하면서도 창조적인 고전의 재해석(<그녀가 돌아왔다>, <메디아>, <오이디푸스>, <페드라> 등), 거침없는 발랄함과 발칙함(<왕과 나>, <춘향> 등)의 세계로 펼쳐진다. 그 안에서 언어와 소리는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몸은 춤추듯 유영하며 의미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로 솟구친다. 마치 향연처럼.

이강백과 이수인, 양극의 스타일, 상

연극 '심청'(2016)

2016년에 초연되었던 이강백의 <심청> 역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로 가득 찬, 무대화하기에 만만치 않은 희곡이었다. 하지만 이수인은 이강백 고유의 관념적인 언어를 코러스의 음악성과 배우들의 육체성 등으로 대체함으로써 이강백 그 자체이면서도 이수인스러운 <심청>으로 재창조해냈다. 이제 두 번째 협업이 될 <어둠상자>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던 고종의 사진사 김규진을 모티프로 하여, 무려 4대에 걸친 그의 가족사가 100여 년간의 우리 근대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이다. 언뜻 역사극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역사에 대한 하나의 우화에 가까운 지극히 이강백스러운 연극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둠상자>가 다시 한 번 이수인의 연출로 어떻게 재창조될지, 자못 궁금하고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글 우수진 연극평론가

사진 극단 떼아뜨르 봄날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8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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