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 미술관이라는 예술작품을 유람하다

[컬처]by 예술의전당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는 볼거리가 정말 많다. 고풍스럽고 세련된 건물들과 분위기 있는 카페, 멋진 물건들로 가득한 상점들, 센 강, 에펠탑과 개선문, 루브르,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센터 등 명소를 꼽자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최근 파리의 북서쪽에 세계적인 랜드 마크가 하나 더해졌다. 탈구조주의의 대표적 건축가 프랭크 게리(1929~)가 디자인한 루이비통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이하 루이비통 미술관)이다.

 

문화예술 애호가나 최신 트렌드를 따르는 멋쟁이들 사이에서 요즘 파리에 가면 꼭 한번 방문할 장소로 꼽히는 이 미술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명품 브랜드의 대명사인 루이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루이비통과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비롯해 70여 개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 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1949~)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자본력이 빚어낸 걸작이기 때문이다. 개관 1년 만에 방문객이 100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 모은 루이비통 미술관을 통해 건축과 예술의 융합, 명품 브랜드 아트 마케팅의 최신 트렌드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유럽으로

미술과 건축이 경계를 허물면서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이 디자인한 미술관이 크게 늘고 있다. 루이비통 미술관은 미술과 건축 전문가들은 물론 예술과 문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화제가 됐다. 2014년 10월, 6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루이비통 미술관이 드디어 개관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로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던 차에 지난해 11월 유럽 출장 기회가 찾아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인 라익스 아카데미를 취재하러 가는 짧은 여정이었다. 주말 이틀을 연장하고, 돌아오는 항공편을 암스테르담 스히폴에서 파리 샤를드골공항으로 바꿔 여행 계획을 짰다.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는 고속열차를 타면 네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취재 일정을 마치고 중간 기착지인 브뤼셀에 들러서 미술관 몇 군데를 본 다음 하룻밤 머문 뒤 파리에 갔다가 일요일 밤에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기대에 부풀어 출장 떠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동시다발로 테러가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에서 벌어진 최악의 참사였다. 파리는 유학과 특파원 근무 등으로 몇 년 동안 체류했던 터라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젊은이들이 즐겁게 금요일 밤을 보내던 클럽과 식당, 테라스카페에서 IS 테러범들이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 총기 난사를 벌이다니. 파리의 지하철이나 유명 관광지, 공연장 등 대중들이 모이는 장소까지 테러에서 안전한 지역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프랑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테러 공포가 확산되면서 유럽여행 계획을 거의 다 취소하는 분위기였다.

 

테러 조직의 실체가 벗겨지면서 벨기에 브뤼셀이 유럽 IS 조직원을 훈련시키는 근거지로 주목됐다. 브뤼셀 시내 지하철이 폐쇄되고 비상경계령이 최고 등급으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그쪽은 가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일단 브뤼셀의 호텔을 취소했다. 그리고 다시 고민…. 파리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 분위기를 살펴보니 여전히 긴장은 하고 있지만 시민들 모두가 침착하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자! 하룻밤 머물려던 계획을 이틀로 늘려 호텔을 예약했다. 단, 안전한 지역으로 골라서.

미술 + 건축 + 공학 기술 = 루이비통LV 미술관

루이비통 미술관은 파리의 북서쪽 외곽 불로뉴 숲 북쪽 끝 아클리마타시옹 정원Jardin d’Acclimatation에 자리하고 있었다. 파리 테러가 일어난 지 보름이 지난, 쌀쌀한 토요일 이른 오후에 파리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사블롱les Sablons 역에서 내려 미술관으로 향했다.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파리의 허파와도 같은 불로뉴 숲은 과거엔 왕들의 사냥터였고, 지금은 파리 시민들의 훌륭한 휴식처가 되는 곳이다. 테러 여파도 있고 해서 텅 비어 있을 줄 알았는데 가족과 함께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 꽤 많아 의외였다. 파리에 사는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끔찍한 테러 이후 일어난 변화 중 하나가 사람들이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가족끼리 뭉쳐 정담을 나누면서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위로를 얻으려는 것일 게다.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걷는데 순간, 기묘한 외형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윳빛 유리와 철골, 나무 뼈대로 이루어진 건축물은 그 화려한 자태만으로도 넋을 놓게 만들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새소리는 잦아들고 물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건물 전방에 계단식으로 만든 인공폭포에서 쉼 없이 떨어지는 물소리였다. 주변 경관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인상적인 건축물의 자태와 물소리에 눈과 귀가 동시에 먹먹해지면서 구름 속에,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눈길을 사로잡은 건축물의 정면에는 흰색 ‘LV’ 마크가 반짝이고 있었다.

루이비통 미술관이라는 예술작품을 유람

루이비통 미술관은 예술을 사랑하는 억만장자의 자본력과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에 빛나는 프랭크 게리의 창의력이 만나 이뤄낸 21세기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게리의 건축물은 파격적인 재료와 해체적인 구성이 특징이다. 게리의 유럽 첫 프로젝트였던 스위스 바젤에 있는 비트라 캠퍼스의 디자인 뮤지엄,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독일 뒤셀도르프의 아파트, 그리고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 그만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자유분방한 비정형의 건축물을 답사한 바 있다. 그 밖의 작품도 사진으로 숱하게 봤던 터였다. 루이비통 미술관은 공간의 구성과 재료, 공학적 측면에서 이전의 건축물들과 유사하지만 건축적 형태에 대한 대담한 접근과 재료를 다루는 기술력, 미적인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최고였다.

 

게리의 예술적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미술관은 건축물이라기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에 가깝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인상적이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건물 측면으로 스펙터클하게 물이 흘러내리도록 만들어 놓은 미술관은 호수 위에 핀 거대한 꽃 같기도 하고, 돛단배 같기도 하다. 빙산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독특하고 우아하기까지 한 미술관을 어떻게 표현하든 자유겠지만, 게리 자신은 “공원을 떠다니는 유리 배를 구상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예술 오브제와 다른 점은 정밀한 공학적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독특한 건축적 경험을 제공하는 이 건축물에는 어마어마한 공학적 기술이 접목됐다. 게리의 머릿속에서 직감적으로 떠오른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건축이 가능한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데에는 초음속 항공기를 만드는 첨단기술이 사용됐다. 각기 다른 형태와 기울기의 유리 패널을 만들고, 프레임의 각도를 계산해내는 것부터 총 서른 개의 기술적 특허를 받았다. 우윳빛이 도는 열두 개의 유선형 유리 패널은 정교한 강철 구조와 거미줄처럼 얽힌 나무 프레임에 의해 지탱된다. 각기 다른 기울기와 모양을 한 3,584장의 유리판을 끼워 맞춰 만든 패널에는 나무, 구름, 하늘 등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들이 비친다. 그런 미술관이 또 물에 비치는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루이비통 미술관이라는 예술작품을 유람

미술관은 전체 건물 면적 1만1700제곱미터에 지하부터 지상까지 총 여섯 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건물 중앙에 해당하는 아트리움에는 350석 규모의 콘서트홀을 만들었고, 지하부터 층층이 총 열한 개의 전시실을 조성했다. 비정형의 외관만큼이나 내부 공간도 비정형이어서 전시실의 생김새가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다.

 

지난해 말 방문 당시엔 총 3부로 이뤄진 개관전의 마지막 시리즈로 <팝피스트, 뮤직/사운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올해 1월 말까지 계속된 전시는 아르노 회장의 소장품 중에서 대표적인 팝아트, 음악과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는 동시대 예술을 집중적으로 보여준 기획이었다. 앤디 워홀, 장 미셸 바스키아, 길버트 & 조지,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리처드 프린스 등 유명한 팝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각기 다른 형태의 공간에서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하층의 수변 공간 옆으로는 아이슬란드계 덴마크인 설치작가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지평선 안에서>가 영구 설치돼 있다. 노란 조명이 빛나는 마흔세 개의 삼각기둥이 계단식 폭포 쪽을 향한 긴 통로를 채우고 있다. 삼각기둥의 두 면이 거울로 되어 있어서 계속 반복되는 기둥들과 물 위에 반사되는 이미지들이 어우러져 상상의 공간에 있는 듯한 묘한 효과를 자아낸다.

루이비통 미술관이라는 예술작품을 유람

각 층에 있는 갤러리를 돌며 작품을 감상하고 올라가다 보면 3층과 4층에서 테라스로 나가는 문을 만난다. 행여 날씨가 춥다고, 다리가 아프다고, 이 정도면 많이 봤다고 그냥 돌아선다면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니 반드시 문을 열고 나가봐야 한다.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패널 사이를 걸어 다닐 수 있도록 설계한 테라스에선 게리 건축만이 주는 특이한 건축적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겹친 패널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패널 사이사이로 탁 트인 하늘이 보인다. 저 멀리 광활한 불로뉴 숲부터 라데팡스의 마천루, 에펠탑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밋밋한 옥상이나 닫힌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간적 해방감이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게리가 좋아하는 물고기 모양의 조형물이 매달려 있는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 낙원이 따로 없다. (다음 호에 계속)

루이비통 미술관이라는 예술작품을 유람
루이비통 미술관이라는 예술작품을 유람

글·사진 함혜리 (서울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아틀리에, 풍경」, 「미술관의 탄생」 저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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