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예술과 산업의 절묘한 컬래버레이션

[컬처]by 예술의전당
파리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예술과 산업

“파리에 예술과 문화를 위한 특별한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프랭크 게리가 21세기의 상징이 될 만한 건축물을 실현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프랑스 파리의 루이비통재단 미술관(http://fondationlouisvuitton.fr/)은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의 열정과 자본, 건축계의 거장 프랭크 게리의 놀라운 창의력이 빚어낸 명품 공간이다. 우리에게 한 차원 높은 예술적 체험을 선사하는 이런 걸작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력과 비용은 엄청나다. 아르노 회장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사 모은 현대미술 컬렉션을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대중들과 공유하고 있다. 미술뿐 아니라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활동도 기획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예술에 열정을 쏟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르노 회장은 1990년대부터 20~21세기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천여 점의 훌륭한 컬렉션을 구성했다. 멋진 미술관을 지어 대중에게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하고 싶었던 아르노 회장은 미술관 구상을 위해 2001년 스페인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했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해 1997년에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http://guggenheim-bilbao.es)은 당시 독특한 외관과 함께 미술관이 도시에 끼친 파급력 때문에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탈구조주의 혹은 해체주의 건축가로 불리는 게리의 자유로운 발상으로 디자인된 미술관은 외벽에 2만4천 제곱미터의 티타늄을 입혀 마치 물고기가 강물에서튀어 오르는 듯한 형상을 자랑한다.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빌바오시를 찾으면서 산업구조의 변화로 쇄락해가던 빌바오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도시로 거듭났다. 미술관이라는 문화적 랜드마크 하나로 도시 전체가 재생하면서 ‘빌바오 효과’라는 용어까지 생겨났으며, 세계 곳곳에서 이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이미지를 바꾼 아름다운 미술관에 매료된 아르노 회장은 뉴욕 출장길에 게리를 만나 자신의 꿈을 풀어 놓았다.

파리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예술과 산업

비정형건축의 대가인 게리의 진가를 확인시켜준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의 야경

파리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예술과 산업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는 베르나르 아르노 LVMH 그룹 회장(좌)

예술의 도시 파리에 건축사에 길이 남을 미술관을 짓고 싶다는 억만장자 고객의 요청을 게리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장소가 문제였다. 파리 시내는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아르노 회장은 게리의 디자인을 무기 삼아 파리 시와 적극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결국 프랑스 정부와 파리 시는 2006년 말 불로뉴 숲의 아클리마타시옹 정원 끝부분 1만 제곱미터를 내주기로 한다. 파리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장소인데다 시민들이 휴식하는 공원에 극도의 상업주의를 추구하는 명품 브랜드 건물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많았지만, 아르노 회장은 21세기를 상징하는 멋진 문화예술 공간을 만들고, 이를 55년 후 파리 시에 무상으로 귀속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얻었다. 루이비통재단이 출범하고 미술관이 완성되기까지는 그로부터 8년이 더 걸렸다. 자연녹지 지역 내에서 건물은 1층으로 제한한다는 법규에 맞추기 위해 설계를 다듬고 또 다듬으며 수많은 행정 절차를 거쳐야 했다.

문화의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기술은 예술

아르노 회장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한 것일까. 물론 ‘예술을 통한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는 고귀한 뜻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고도로 진화 아트 마케팅 전략이자 아트 비즈니스의 일환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아트 마케팅은 브랜드 이미지에 예술적 아우라를 입혀 후광 효과를 노리는 마케팅 기법으로, 많은 기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 마케팅에 예술을 활용하고 있다. 아트 비즈니스는 아트 마케팅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예술을 사업의 재료로 삼는 단계다.

 

아르노 회장은 “나는 꿈을 파는 상인이며, LVMH는 소비자들에게 꿈을 꾸게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명품 브랜드는 단순히 좋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문화를 판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문화’를 파는 데 가장 생산적이고 효과적인 재료는 바로 ‘예술’이라는 것을 천부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지닌 아르노 회장이 일찍이 간파한 것이다.

 

1949년생인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최고 엘리트의 산실이라고 하는 명문대학 에콜 폴로테크닉을 나온 수재다. 그의 비상한 비즈니스 감각이 주목한 것은 명품 소비자들과 미술품 컬렉터들이 중복된다는 점이었다. 명품은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고급스러운 제품도 중요하지만 그 브랜드가 지닌 이미지가 실제로 소비자들의 선택에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1987년 LVMH의 대표가 된 아르노 회장은 예술작품을 구입하거나 문화행사를 후원하면서 브랜드 이미지에 예술을 입혔다.

 

예술가들과의 협업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루이비통은 1854년 창업자 루이 비통(1821~ 1892)이 파리에 자신의 공방을 차린 것에서 시작한다. “깨지기 쉬운 것을 안전하게 담되, 가방의 패션에 특화한” 트렁크로 오랜 시간 유럽의 귀부인과 신사 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이미지 때문에 새로운 고객층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루이비통은 1997년 젊은 피 수혈을 위해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를 아트 디렉터로 영입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예술과 산업의 융합으로 미술사와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젝트를 성공시킨다. 일본 현대미술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으로 멀티컬러, 아이러브 모노그램, 체리, 판다, 체리블러섬 등 다양한 제품 라인을 선보이면서 경쾌한 이미지로 전환하는 성과를 거둔 데 이어 일본 전위예술가 쿠사마 야요이와 협업한 제품들을 발매했다. 루이비통은 미술계와 긴밀한 협업으로 진부한 이미지에서 젊은 감각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고, 협업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열배 이상 급등하는 효과를 거뒀다.

파리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예술과 산업

게리의 드로잉

파리 한복판에서 경험하는 예술과 산업

루이비통미술관을 본떠 만든 조형물

세계 미술계에 부는 아트 비즈니스 열풍

아르노 회장이 공격적으로 아트 비즈니스를 진행하도록 자극한 이는 LVMH(루이비통 & 모엣 에네시) 그룹과 쌍벽을 이루는 럭셔리 산업의 라이벌 PPR(피노 프렝탕 르두트) 그룹의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1936~) 회장이다. 명품 브랜드 구찌, 입생로랑, 와인 명가 샤토 라투르, 프렝탕 백화점 등을 보유한 PPR 그룹의 피노 회장은 세계 최고의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아르노 회장과 피노 회장 간 선의의 경쟁은 럭셔리 산업에서뿐 아니라 아트 비즈니스를 발전시키는 결실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품 컬렉터로 꼽히는 피노 회장의 소장품 수집은 40년 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한 갤러리에서 19세기 프랑스 화가 폴 세뤼지에의 작품을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뉴욕에서 몬드리안의 1925년 작품 <마름모형 테이블>을 본 뒤 최고 수준의 미술품으로 구성된 컬렉션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한다. 그의 컬렉션은 피카소, 몬드리안 등의 마스터피스뿐 아니라 제프 쿤스, 로버트 고버, 칼 앙드레, 사이 톰블리, 데미안 허스트, 지그마르 폴케, 찰스 레이, 신디 셔먼 등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 3천여 점으로 구성돼 있다. 피노 회장은 2003년 사업의 경영권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아트 비즈니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파리 시내의 10만 제곱미터 부지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미술관 건립을 계획했다가 지방행정 당국이 인가를 계속 지연시키는 바람에 2005년 5월 미술관 건립 계획을 폐기하고 대신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발길을 돌렸다. 2005년 베네치아의 팔라조그라시를 매입해 모험적이고 실험적인 젊은 예술가들의 전시 공간으로 만들고, 2007년엔 베네치아의 옛 세관 건물인 푼타델라도가나를 인수해 2년간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자신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소개하는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피노 회장이 크리스티를 소유하면서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급격하게 강해지자 아르노 회장도 이에 질세라 경매회사 소더비를 인수하려 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자 프랑스 경매회사 타장Tajan을 인수하고 시몽 드 퓨리가 경영하던 작품거래회사와 합병해 경매회사 필립스 드 퓨리를 설립했다. 미술잡지 「아트앤옥션」과 「코네상스데자르」도 함께 인수해 예술 관련 매체를 통제할 파워까지 갖췄다.

 

세계 럭셔리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아르노와 피노 회장이 미술품 옥션까지 소유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컬렉터들에게는 미술작품이 명품처럼 유행을 타고 소비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한편 예술품의 2차 거래시장 규모를 키워 미술시장의 소비 패턴까지 변화시켰다. 작품 한 점을 사서 대대로 물려가며 걸어놓고 보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명품을 사듯이 예술작품을 소비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와 아트 비즈니스는 갈수록 그 간극을 좁혀가는 추세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를 이끄는 미우치아 프라다도 중요한 현대미술 컬렉터 중 한 명이다. 프라다는 지난 1993년 프라다재단Pondazione Prada을 설립해 20여 년간 아니쉬 카푸어, 존 발데사리 등 컨템퍼러리 거장들의 전시와 영화제 등을 진행하며 주목을 받아 왔다. 프라다재단은 밀라노 시 남부 라르고 이사르코Largo Isarco의 한 양조장을 매입한 뒤 건축가 렘 콜하스의 설계로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 2015년 5월 개관했다.

 

2014년 10월 파리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모으며 개관한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은 1년도 안 돼 방문객이 100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일찌감치 파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이런 외형적인 수치보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 21세기를 상징할 만한 미래적인 디자인과 콘셉트를 지닌 미술관을 새로 세움으로써 루이비통이 얻게 된 무형의 가치는 수치로는 환산할 수 없다.

 

미술관에서는 지난 1월 말부터 중국 미술계의 다채로운 측면을 조명하기 위해 중국에 사는 다양한 세대의 현대미술 작가 작품을 한데 모아 전시를 열고 있다. ‘격동과 변화의 시대를 산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이라는 제목으로 루이비통재단 미술관 소장품 중 중국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과 음악, 영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아이웨이웨이, 황융핑, 장후안, 얀페이밍, 장샤오강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총망라된다. 프랑스에서 중국 현대미술에 헌정하는 대규모 전시를 여는 것은 10년 만이라고 한다. 파리를 찾는 중국 관광객들은 한 번쯤 시간을 할애해 루이비통 미술관을 가고자 할 것이다. 그들은 중국의 예술가들을 높이 평가해주는 프랑스라는 나라에 호감을 느끼게 되고, 언젠가는 루이비통 핸드백을 사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다. 예술과 산업의 절묘한 만남, 미래를 위한 가치 투자의 생생한 현장이 바로 루이비통 미술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글·사진 함혜리 (서울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아틀리에, 풍경」, 「미술관의 탄생」 저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3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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