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이디푸스' - 비극으로 들여다보는 삶의 본질

[컬처]by 예술의전당

연극 <오이디푸스> 1 . 2 9 ( 화 ) - 2 . 24 ( 일 ) C J 토 월 극 장

배해선·박은석 인터뷰

연극 '오이디푸스' - 비극으로 들여 연극 '오이디푸스' - 비극으로 들여

 

지난 1월 2일 오후 <오이디푸스> 배우들의 연습실이 있는 서울 남산에서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를 맡은 배우 배해선과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역할인 ‘코러스 장長’을 맡은 배우 박은석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흥행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조심스레 점쳐보고 있어요. 함께 극을 만드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무척 좋습니다”며 활짝 웃었다.

 

1월 29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오이디푸스>는 여러모로 기대를 한 몸에 모으는 작품이다. 2018년 초 <리차드 3세>로 10년 만에 연극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천만 배우’ 황정민이 주인공 오이디푸스를 맡았다. <리차드 3세>를 만든 ‘부부 콤비’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도 다시 한번 의기투합했다. 당시 <리차드 3세>는 유료 객석 점유율 98%를 기록하며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두루 받았던바, 이번에도 ‘2연타’를 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오이디푸스>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중 한 사람인 소포클레스의 대표작이다. 테베의 3대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피하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발이 묶인 채 산속에 버려진다.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퉁퉁 부은 발’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목숨을 잃기 전 우연히 코린토스의 목동 에게 발견되고, 당시 코린토스를 통치하던 폴리보스 왕의 양자로 길러진다.

 

자신에게 내려진 끔찍한 신탁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그 예언이 실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코린토스를 떠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연히 마주친 라이오스 왕을 살해하고, 스핑크스로부터 위협을 받던 테베를 구해 왕으로 추대돼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는다. 원작에서는 노년이 돼서야 자신이 결국 신탁을 피하지 못했음을 안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찔러 멀게 하고 딸 안티고네의 부축을 받으며, 자신이 떠나왔던 코린토스의 사막으로 되돌아간다.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운명을 다룬 이 작품은 20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다양한 장르로 끊임없이 변주되며 재공연된다. 배해선과 박은석, 이 두 배우 역시 오이디푸스를 원형으로 한 작품에 출연한 이력이 있다. 2012년 오이디푸스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연극 <그을린 사랑>에 출연했던 배해선은 “<오이디푸스>는 정말 정교한 작품이에요. 마치 아주 잘 만들어진 스위스 시계 같다고 할까요. 무대, 조명, 배우들의 시선과 호흡이 예술적으로 탁탁 맞춰 돌아가죠. 오래전 작품이지만, 배우에게나 관객에게나 접할 때마다 새로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라며 이번 무대에 합류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한편 2011년 서재형 연출이 오이디푸스를 음악극으로 만든 <더 코러스-오이디푸스> 무대에 올랐던 박은석은 <오이디푸스>가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힘든 작품이지만 또 배우로서는 “좋은 스트레스가 된다”고 덧붙였다. “고전이 계속 공연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시대든 벗어날 수 없는 인간과 삶의 본질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죠.” 인터뷰에 앞서 이뤄진 제작발표회에서 서재형 연출은 “이번 <오이디푸스>는 비참한 운명보다는 삶의 동력에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시련 자체보다는, 그런 시련이 주어졌을 때 인간이 담담하게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포착한다는 것이다. 연출 의도에 대해 공감하는지 묻자 두 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극 '오이디푸스' - 비극으로 들여

이오카스테 역을 맡은 배해선

배해선은 “결국 자신이 떠나온 사막에서 지팡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렵지만, 오이디푸스는 끊임없이 ‘괜찮다’고 말하지 않느냐”며 “인생에서 어떤 과정을 만나든, 묵묵히 걸어 나가는 것이 우 리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은석은 자신의 대사 중 “너희의 선택과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 그런데 어떻게 살 거야”라는 대목을 꼽으며 오이디푸스는 삶에서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결정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를 다룬 작품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것이 설령 불행한 결과일지라도 어떻게 살아나갈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물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신이 맡은 영원히 늙지 않는 아름다운 왕비 ‘이오카스테’ 역에 대해 배해선은 “어머니이자 아내 그리고 왕비라는 자리의 무게를 충실하게 짊어지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에겐 한없이 깊은 사랑을 품는 여자예요. 그에겐 아내이기도 하고, 물론 처음엔 알지 못했겠지만 어미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면서 동시에 테베의 위기를 극복하고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남편의 상 중임에도 현명하고 용기 있는 선구자 같은 오이디푸스를 왕으로 택해요. 굉장히 다양한 층위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는 ‘이오카스테’라는 캐릭터를 굳이 해석하려고 하는 대신 주어진 상황에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고 한다. “워낙 구성이 탄탄하고, 대사도 촘촘하게 짜인 작품이니 까요. 줄거리 흐름에 가만히 나를 놓아두고, 따라간다는 느낌으로 이오카스테를 표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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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러스 장 역을 맡은 박은석

박은석이 맡은 ‘코러스 장’은 그리스 비극 작품의 특징적인 배역으로 일종의 내레이터 역할을 담당한다. 작품의 바깥에서 배우들을 바라보며 때로는 그들의 감정을 대변하기도 하고, 극의 전개에 대한 힌트를 주거나 관객들에게 주제를 담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박은석은 “<더 코러스-오이디푸스>에서도 코러스 역할을 맡긴 했지만, 장르가 음악극과 정극으로 다르다 보니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느껴진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포부를 전했다. “관객들이 이 연극을 보는 내내 끊임없이 ‘나라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잘해 내고 싶어요.”

 

배해선과 박은석은 공연 마니아라면 이미 익숙할 이름들이다. 올해로 데뷔 24년차를 맞은 배해선은 과거 <아이다>, <맘마미아>, <시카고> 등 여배우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대극장 뮤지컬의 주인공을 두루 거쳤고 연극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최근엔 드라마 <용팔이>(2015), <이리 와 안아줘>(2018)와 영화 <암수살인> (2018)에 출연해 비중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배해선은 그간 협업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번번이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 포기했던 서재형 연출에 대해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디테일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배우들을 힘들게 하는 연출로 유명하지만, 그 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믿을 수 있는 연출’ 이기에 망설임 없이 <오이디푸스>에 도전할 수 있었을 터.

 

1998년 뮤지컬 <의형제>에서 엄마와 아들로 만난 뒤 20여 년 만에 다시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된 황정민에 관해 묻자 배해선은 이렇게 대답했다. “<리차드 3세> 때도 그랬지만, 황정민 선배는 무슨 배역을 맡든 그 역할에 완벽하게 빠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작품이 워낙 잘돼서 부담이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지만, <리차드 3세>와는 또 전혀 다른 오이디푸스를 표현할 것이기에 부담보다는 기대가 크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렇고요.”

 

2010년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앙상블로 데뷔한 후 6년 만에 <드라큘라>로 대극장 주연을 맡으며 주목받고 있는 박은석은 서재형 연출을 ‘스승님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표현한다. “연출님 의 작품 <왕세자 실종사건>에서 주인공을 맡으며 입봉하기도 했고, 연기의 기초부터 가르쳐 주신 분이에요. 혼나기도 많이 혼났지만 배운 것이 더 많아요. 해선 선배님의 말씀처럼 연출님이 블로킹 blocking, 연기 동선을 세세하게 짜기 때문에 많은 연습량이 필요해요. 언제쯤 연기가 편해질까 했는데, 남명렬·황정민 같은 대선배도 이번 작품에 열심히 매달리는 모습을 보며 ‘이 직업은 편해질 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배들을 보며 많이 배워요. 특히 황정민 선배가 내뿜는 에너지가 정말 대단해요. 리딩 때도 완전히 몰입해 듣고 있던 배우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였으니까요.”

 

이번 <오이디푸스>의 또 다른 특징은 황정민, 남명렬, 배해선, 박은석, 정은혜, 최수형 등 주역 배우가 모두 ‘원 캐스트’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이들은 매일같이 남산 연습실에서 얼굴을 맞대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고된 스케줄이지만 원 캐스트라는 점 덕에 서로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길 수 있고, 그 덕에 보다 ‘쫀쫀’하고 단단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 얻는 점이 더 많다는 것. 관객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오이디푸스를 보여 드릴 것’이라고 기대와 포부를 전한 연극 <오이디푸스>의 무대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 양승주 조선일보 문화부 공연담당기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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