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전쟁, 승자는 누가 될까

[컬처]by 예술의전당

 6.8(수) 오후 8시 콘서트홀

다시 찾아온 전쟁, 승자는 누가 될까

Photo © Mathias Bothor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하지 않던가. 너무나도 대조적인 두 피아니스트의 유쾌한 답변을 보며 실감했다. 마치 흰 종이 위에 두 개의 강한 색상이 자신의 영역을 칠하며 대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연 각기 다른 방식으로 건반 위 치열한 결투를 벌이는 <피아노 배틀> 속 두 주인공다웠다.


전통적이고 차분한, 어쩌면 따분해 보일 수도 있는 클래식이라는 장르의 공연 형식을 완전히 파괴해버린 두 사람,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안드레아스 컨Andreas Kern과 독일의 폴 시비스 Paul Cibis라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다. 한 명은 흰색, 한 명은 검은색 옷을 입고 늘 흑과 백의 대결을 펼친다.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절대 같이 연주하는 법이 없다. 쇼팽, 리스트, 드뷔시 등 거장 작곡가들의 음악을 각자의 방식으로 건반 위에 녹여낸다. 여섯 번의 라운드, 열두 개의 연주. 매 라운드 각자 자신만의 연주를 펼친 후 즉석에서 관객의 투표로 대결의 승패를 가린다.


작년 5월 첫 내한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피아노 배틀>의 듀오가 다시 한국을 찾는다. 오는 6월 8일 콘서트홀에서 또 한번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다. 게다가 이번에는 또 다른 파격이 기다리고 있다.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될 것”이라 예고하는 두 남자. 이번 ‘서울대첩’의 승리는 누구의 것이 될까. 다음은 두 피아니스트와의 서면 인터뷰 일문일답.


지난해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첫 내한공연과 한국 관객에 대한 느낌은 어땠나.


폴 시비스 (이하 폴) 첫 내한이었는데 우리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관객들이 어마어마하게 응원해주었다. 멋진 깜짝 선물이었다.

안드레아스 컨 (이하 안) 공연이 끝나고 사인회를 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 중에 가장 긴 줄을 경험했다. 뭐, 적어도 내 쪽 줄은 끊이질 않는 느낌이었다.


일 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동안 유럽, 미국, 러시아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순회공연을 하느라 더 일찍 오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의 더 많은 도시에서 우리의 공연을 보여주고 싶고 또 그곳들의 매력을 알아가고 싶다.

게다가 이번 공연에서는 최근 독일에서 처음 선보인 새로운 형식을 보여드릴 예정인데 한국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궁금하다. 팀이 결성된 계기는?


홍콩에서 시작됐다. 2009년 홍콩시티페스티벌에 둘 다 초대됐는데 우린 각자 솔로로 연주하고 싶었다. 그런데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 같이 콘서트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해왔다.

맞다. 그 전에도 서로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연락하지 않고 몇년이 흘렀다. 당시 둘 다 베를린에 살고 있어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러 카페에서 만났는데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절대 같이 연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나의 콘서트, 두 명의 피아니스트. 그러면 무대에서 배틀을 하는 수밖에!


배틀에서 질 때 기분이 어떤가? 배틀이 단순히 게임에 불과한지, 실제로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하는지 궁금하다.


아니,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둘 다 배틀마다 결과가 다른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배틀의 결과는 그냥 그 날의 결과일 뿐이다. 지는 것에 대해 별로 상심하진 않는다.

우리가 연주하는 곡은 사실 대결을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니다. 물론 무대에 올라가면 이기고 싶다. 하지만 우리의 배틀은 관객에게 흥미롭고 흥분되는 공연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목표다.


언제부터 클래식을 새로운 형식으로 선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졌나.


항상 그래 왔다. 학생 때부터 남다른 컬래버레이션을 찾아내곤 했다. 예를 들면 댄서, 래퍼, 심지어 셰프까지. 다양한 음악 페스티벌을 기획했고, 2010년에는 100개의 피아노 공연을 한 주말에 선보이는 피아노 시티 페스티벌을 베를린에서 열었는데 이후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영국으로 퍼졌다. 프랑스-독일 티브이 채널인 아르테를 위한 ‘아르테 라운지’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내 접근 방식은 조금 달랐는데, 그 이유는 음악을 선보이는 형식이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누구랑 연주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독일 배우이자 가수인 에바 마이어와의 오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콘서트 극작법의 중요성을 배웠다. 나는 영화음악 제작에도 몇 번 참여했고, <피아노 마니아>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참여했다.


본인들의 음악적 철학에 비추어 볼 때 공연에서 특별히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내 포커스는 음악 그 자체가 관객에게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관객이 완전히 음악에 몰입하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배틀 형식에서는 가끔 난제이기도 하다. 대화하면서 쇼를 진행하고 또 거장의 클래식 음악을 모두 선보여야 하는데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내게 별로 어렵지 않다. 난 오히려 무대에서 행복감, 자유로움, 그리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에 집중한다.

다시 찾아온 전쟁, 승자는 누가 될까

폴 시비스(좌), 안드레아스 컨(우) photo © Jim Rakete

각자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장점은 무엇인가. 


초견sight-reading*.

하하. 저 친구는 쇼맨십이다.


연주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가. 각자의 특징이 있다면?


전통적인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것을 안드레아스보다 즐기는 편이다. 그것들을 확실하게 그리고 특정 스타일에 대해 깊이 이해한 후 연주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난 그 반대는 아니지만 좀더 특이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을 선택하는 편인 것 같다. 다양한 실험을 하는 것과 내 방식대로 해석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과장 없이 말하건대 가끔 안드레아스는 자신의 창의성이 작곡가의 지시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때로는 이게 위험할 수 있다!

뭐, 그게 사람들이 예상하는 연주를 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 한국 관객들이 어떤 방식을 더 선호하는지는 한번 보자고.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누구인가.


한 명만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바흐, 슈베르트, 아델, 컨(본인), 마이클 부블레, 진은숙, 빅뱅….

쇼팽. 왜냐하면 피아노를 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흐. 그의 음악은 순수하기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곡은?


몇 가지를 나열하기도 힘들뿐더러 하나만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몇 개만 꼽자면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슈베르트의 ‘비둘기 전령’, 그리고 브람스의 1번 교향곡, 말러의 2번 교향곡. 추가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d단조, 베토벤의 4번, 8번 교향곡,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시작하자면 끝도 없다!

바닷가의 파도 소리. 내게 자유와 창의적 여유를 준다.


선호하는 피아노 브랜드가 있나.


보통은 스타인웨이나 야마하로 연주한다. 집에서 연주하는 피아노다.

하지만 좋은 기술자가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최고의 악기도 급속히 음질이 떨어질 수 있다. 가끔 브랜드 없는 피아노가 훌륭한 사운드로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계속 듀오로 활동할 예정인가,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나.


지금도 솔로 리사이틀을 하긴 한다. 안드레아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그리고 가수들과 같이 콘서트를 여는 것을 좋아한다. 작년 11월에는 서울에서 <8 피아니스트 갈라 콘서트>에 일곱 명의 한국인 피아니스트와 연주하기도 했다.

나는 코미디와 클래식 음악을 혼합하는 걸 좋아하는데 주로 솔로 쇼를 통해 선보인다. 그리고 힙합 래퍼들과 여는 콘서트 같은 스페셜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한다.


두 사람이 아시아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전 세계 수많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매년 아시아에서 연주한다. 그중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클래식 음악 위에 다른 무언가를 얹기 때문이 아닐까. 투표할 때의 짜릿함, 콘서트에서의 발언권, 그리고 우리 같은 연주자들도 예측할 수 없는 부분들까지. 게다가 배틀이라는 형식은 어떤 감정들을 야기하는데, 우리와 관객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아시아에서 콘서트를 끝내면 항상 사인을 받고 같이 사진을 찍으려는 관객들의 긴 줄이 이어진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 줄이 훨씬 짧다. 혹자는 이 현상을 독일에서 온 키가 큰 두 뮤지션에 대한 연예인 효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피아노 배틀이라는 독특한 형식에 대한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보고 싶다. 정형에서 벗어난 두 클래식 연주자가 음악의 본질은 유지하되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클래식을 소개하는 것을 신선하게 여기는 것 같다. 물론 여기에 내 숨 막히는 카리스마도 빼놓을 수 없지만! 하하.


이번 서울 공연은 좀 특별하다고 들었다. 독자들을 위해 살짝 귀띔을 해준다면?


기존의 피아노 배틀과는 완전히 다를 거다.

마치 영화의 후속편처럼 말이다. 주요 등장인물이나 배우는 같지만 줄거리나 도전과제 등이 다르게 전개되듯이.

한국 노래를 부르진 않겠지만 ‘이것’으로 유명해진 우리나라 our home country 고유의 것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노래하는 게 포함될지도 모른다!


글 윤서영 (코리아타임스 문화부 기자) 사진 스톰프 뮤직


* 즉석에서 악보를 처음 보고 연주하는 것.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6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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