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네스 콰르텟의 날카롭고 강렬한 첫 키스

[컬처]by 예술의전당

6.25(토) 오후 8시, 6.26(일) 오후 2시·8시, 7.1(금) 오후 8시, 7.3(일) 오후 2시·8시 IBK챔버홀

에네스 콰르텟의 날카롭고 강렬한 첫

제임스 에네스 © B Ealovega

캐나다 출신의 음악가 중 피아니스트로 글렌 굴드, 앤절라 휴잇,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등이 손꼽힌다면,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제임스 에네스가 가장 먼저 언급될 것이다. 독주자로서 일찌감치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에네스는 실내악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왔다. 그 한 축은 에네스가 10대 후반부터 인연을 맺어오다 오늘날 예술감독까지 맡은 시애틀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SCMS이고, 다른 한 축은 2010년 창단한 현악 사중주단 에네스 콰르텟이다. 에네스 콰르텟은 우리에게도 친근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멤버로 활약 중인 곳이기도 하다.


창단 후 약 6년 만에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상당히 인지도를 높인 에네스 콰르텟은 이달 말부터 내달 초까지 한국 청중과 처음 만난다. 리처드 용재 오닐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디토 페스티벌(6월 12일~7월 3일)에 초청돼 4일간 6회에 걸쳐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전곡을 완주한다. 내한을 앞둔 에네스 콰르텟의 리더 제임스 에네스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차 필라델피아 현지에 머물고 있는 그는 “6월부터 실내악에 몰두하려면 5월에는 정신없이 독주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제임스 에네스 그리고 에네스 콰르텟

“에네스 콰르텟이 창단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하지만 멤버들끼리 음악적으로 교류한 역사는 제법 깁니다.” 제임스 에네스(리더, 제1바이올린)는 이렇게 운을 뗐다.


“저와 에이미 슈워츠 모레티(제2바이올린), 로버트 드메인(첼로)은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89년 여름, 음악캠프에서 처음 만났어요. 긴 세월 동안 연락만 하고 지내다 각자 음악가로 성장한 뒤, 약 15년 전부터 합주를 시작했어요.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과는 12년 전 시애틀뮤직소사이어티에서 함께 연주한 것을 계기로 가까워졌죠.”


그는 리처드 용재 오닐과 가장 늦게 인연을 맺었으나 현재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밝혔다. “리처드는 저뿐 아니라 우리 가족과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정직하고 배려심 많고, 사색적인 사람이죠. 그의 음악적, 인간적인 면모가 일치한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이로써 에네스 콰르텟의 인적 구성은 진작에 갖춰진 셈이었다. 하지만 창단 계기는 엉뚱한 데서 찾아왔다. “2010년 무렵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녹음할 때였어요. 남은 트랙에 어떤 곡을 넣을지 음반사(오닉스 레이블)와 의논하다가 ‘멘델스존 현악 사중주곡을 넣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실내악은 제 음악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당시 저는 시애틀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니 몹시 흥분했죠. 당장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자들한테 연락했어요. 현재 에네스 콰르텟의 멤버인 리처드, 로버트, 에이미였죠. 마침 다들 스케줄이 허락돼 여름 음악축제 때 호흡을 맞추기로 했어요. 그런데 에이미가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하는 바람에 느닷없이 프로젝트를 변경하게 된 겁니다. 결국 리처드, 로버트 외에 다른 연주자들을 섭외해 멘델스존의 현악 팔중주를 녹음해서 음반에 수록했어요.”

 

그 후 콰르텟 프로젝트를 부활시킨 것은 에이미 슈워츠 모레티였다. “몇 달 뒤 에이미한테 전화가 왔어요. 무산된 현악 사중주에 대한 아쉬움을 도저히 떨치지 못하겠다면서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교로 우리를 초청했어요. 거기서 우리의 첫 콰르텟 연주가 이뤄졌죠.”


리허설을 시작한 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에네스를 포함한 모두가 직감했다. 이 팀이 지속되리라는 것을. “더 많은 연주를 같이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몇 차례의 연주를 기획하고, 또 기획하는 식으로 이어가다 보니 어느덧 한 팀이 됐죠.”


플로리다 오케스트라와 오레곤 심포니 악장을 지낸 에이미 슈워츠 모레티, 현직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첼리스트인 로버트 드메인, 링컨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의 일원이자 실내악 축제 디토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인 리처드 용재 오닐, 시애틀체임버뮤직소사이어티에서 20년 넘게 활동해온 제임스 에네스는 모두 앙상블의 전문가였다. 이들의 조합이 기막힌 하모니를 빚어낸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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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용재 오닐, 에이미 슈워츠 모레티, 로버트 드메인 © Sangwook Lee

왜 베토벤인가

에네스 콰르텟은 창단 후 버르토크, 브람스, 슈베르트, 드보르자크 등의 현악 사중주 명곡들을 두루 다뤘다. 특히 베토벤 현악 사중주곡에는 특별히 무게를 뒀다. “베토벤이 남긴 현악 사중주곡은 하나하나가 걸작이지요. 현악 사중주 장르에서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고요. 멤버들 모두가 이 레퍼토리에 열의가 있어서 한 곡씩 해보다가, 결국 전곡을 다 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같은 장소에서 전곡을 내리 연주하는 것은 창단 이후 처음입니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전곡은 한두 해에 걸쳐 연주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들은 나흘 동안 여섯 번 무대에 올라 ‘초단기간 완주’를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현악 사중주 장르에서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왜 이런 길을 택했을까. “사실 현실적인 이유가 컸지요. 우선 디토 페스티벌 기간에 맞춰서 전곡 연주를 끝내려 했고요. 또 네 명의 스케줄을 맞추기가 몹시 힘들어서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연주하기로 했죠. 청중들도 띄엄띄엄 나눠 듣는 것보다는 몰아서 감상하는 편이 낫고요. 시간이 흐르면 지난 연주가 어땠는지 기억이 희미해져서 감정을 연결하기가 어려워지니까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도 일주일 사이에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다 올리지 않습니까. 이번 사이클은 베토벤이 남긴 개별 현악 사중주곡들이 어떠한 큰 흐름 안에 있는지를 발견하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겁니다. 연주자로서는 소화할 음표가 너무 많아 힘들지만, 한 작곡가에 온전히 몰입해볼 기회이기도 해서 굉장한 도전이 될 듯합니다. 완주하고 나면 아마도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전곡 연주를 계속하고 싶어질 것 같아요.”


현악 사중주곡은 피아노 소나타나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베토벤이 생애 전반에 걸쳐 썼으며, 그의 음악적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에네스는 “초기 작품이라고 해서 연주하기가 더 쉽거나 후기 작품이라고 해서 더 어렵다고는 말할 수 없다”며 “작품마다 연주할 때 난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초기 작품들은 빈틈없이 깔끔하게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기 작품들에는 고도로 기교적인 패시지들이 등장해요. ‘라주모프스키1’의 제1바이올린 파트에는 베토벤이 작곡한 모든 바이올린 곡을 통틀어 기교적으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나옵니다. 후기 작품들은 정통적인Orthodox 양상을 띠는데, 이를 어떻게 풀어내서 청중에게 전달할지가 관건이에요.”

콰르텟을 연주할 때 가장 순수해진다

야론 질버맨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중주>에서 묘사된 바 있듯 현악 사중주단에서 네 사람이 호흡을 맞춰나가는 과정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예민한 조율을 거쳐 한마음, 한목소리가 되어야 제대로 된 콰르텟 사운드를 빚어낼 수 있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리더인 에네스는 자신의 해석과 다른 멤버들의 의견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그의 대답은 진지했다.


“물론 멤버들이 서로 다른 음악적 견해를 가질 수는 있습니다. 리허설 중에 토론과 실험이 이뤄지는 것 역시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콰르텟 연주를 잘해낼 수 있는 것은 각자의 견해를 관철하기보다 넷이 함께 연주한다는 사실을 우위에 두기 때문입니다. 확신하건대, 우리 팀은 리허설 한 번 없이 무대에 오르더라도 자신이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를 알 겁니다. 청중과 주고받을 음악적 메시지를 일치시키려면 무대 위에서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해요.”


그는 “에네스 콰르텟 멤버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콰르텟 활동에서는 음악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개의치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음악가도 일종의 직업입니다. 돈도 벌어야 하고 인지도를 높여 음악시장 안에서 입지도 다져야 하죠. 우리 네 사람도 독주자로서는 그렇게 경력을 일구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콰르텟 활동에서만큼은 아무런 야심 없이 순수하게, 오로지 음악 자체만 생각합니다. 어떤 화려한 무대에 서야겠다거나 무슨 음반을 내야겠다거나 하는 욕심 따위 없이,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으면 행복합니다. 이는 정신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자부심의 원천이죠.”


지난 1997년 줄리아드 음악학교 오케스트라 순회공연의 악장으로서 잠시 들른 게 지금껏 한국에 대한 경험의 전부라는 그는 콰르텟 멤버들과 함께하는 사실상의 첫 내한에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멤버들 모두 한국에 갈 날을 고대하고 있어요. 여러 한국인 음악가 친구들이 사는 곳이기도 하고, 열정적인 청중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단기간에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전곡을 연주하는 흔치 않은 기회에 많은 분이 함께해주기를 바랍니다.”


글 김소민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크레디아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6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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