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vs 거장 샤갈, 달리, 뷔페展

[컬처]by 예술의전당

거장이 빚어낸 예술과 삶의 감동적인 이중주
6.25(토) - 9.25(일) 한가람미술관 1, 2전시실

 

당신에게 ‘거장’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으로 인정받은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거장’이라는 단어는 위대함으로 다가오고,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비범함과 빛나는 성취들을 찾으려 한다.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베르나르 뷔페는 시대와 삶을 영감으로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인 장르를 이룩하여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예술가다. 사실 이들의 전시에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너무 뻔한 나머지 재미없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굳이 거장이라고 칭하지 않아도 그들의 업적은 그 자체로 빛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그 속에 숨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거장’이라는 진부한 단어를 굳이 꺼내 든 이유이자, 본 전시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스토리이다. 우리는 거장들의 위대함 이면에 숨은 그늘을 미처 보지 못한다. 그들이 천재로 태어나 하루아침에 거장이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위대함 뒤에는 치열하게 고뇌하고 강인하게 버텨낸 한 인간으로서의 거친 삶이 있었다.

현실을 딛고 삶을 노래한 몽상가, 마르크 샤갈

거장 vs 거장 샤갈, 달리, 뷔페展

마르크 샤갈 '서커스의 약혼자들'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Chagall ®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샤갈. 생명력 넘치는 색채와 밝고 아름다운 화풍은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하지만, 정작 그의 삶은 그가 남긴 작품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샤갈은 러시아 변방의 가난한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나 어렵게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훗날 프랑스 파리에서 특유의 색채를 꽃피우며 화가로 성공하지만, 그에겐 언제나 이방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이후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 등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랑스, 독일, 미국 등을 떠돌았지만, 그는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시기에 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이 유실되기도 하고, 나치의 탄압으로 압수되거나 소각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고통은 30년간 열렬히 사랑한 아내 벨라의 죽음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자신의 모든 시간을 벨라와 함께하리라 생각했던 샤갈에게 그녀의 죽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수난과 고독으로 얼룩진 삶 속에서도 그는 결코 붓을 놓지 않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정체성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성하였고, 삶에서 느낀 슬픔은 화려한 색채와 환상적 이미지로 승화시켰다. 그렇게 그는 캄캄한 밤과 같은 삶 속에서 언제나 태양이 빛나길 바라며 그림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샤갈이 평생 가슴에 품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 가족과 연인에 대한 사랑,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파리에서 처음 만난 서커스 등 삶의 외로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다프니스와 클로에> 등 삽화로 쓰인 판화 연작과 이방인의 고독을 담은 자작시 등을 통해 샤갈의 다재다능한 면모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서커스의 약혼자들>이 있다. 화려한 서커스는 샤갈의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샤갈에게 서커스란 화려한 볼거리로 가득한 환상의 세계인 동시에 가난이나 천대를 견디며 웃음을 끌어내는 광대들의 세계였다. 그림 속에는 샤갈의 세계에서 인간과 동일하거나 친밀한 존재로 표현되는 동물인 닭과 나귀 그리고 사랑에 빠진 연인이 상징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의 의미 등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이 작품 하나로 그가 살아온 삶을 압축적으로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가 말년에 정착한 프랑스 남부의 풍광처럼, 살아움직이는 듯한 자유로운 터치와 풍부하고 밝은 색채는 전형적인 후기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광기를 지배한 사나이, 살바도르 달리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난 달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 ‘살바도르’의 이름을 물려받아 또 다른 ‘살바도르’가 되어야 했다. 늘 집안에 드리워진 죽은 형의 그늘에서, 달리는 평생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애써야 했다.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달리는 자신의 신경증을 치유하기 위해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심취했고, 이론의 많은 부분을 작업에 적용하고자 시도했다. 그리고 이것은 순수미술뿐 아니라 디자인, 영화 등 달리가 다룬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이 만든 트라우마는 인간 ‘살바도르’에겐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 ‘달리’에게는 축복이 되었던 것이다. 특이한 행동을 일삼아 광인이라 불리기도 했던 달리는 사실 그 자신을 넘기 위해 스스로를 ‘비범한 천재’로 규정하고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노력을 거듭했다. 실제로 그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작업에 임했으며, 동료들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는 달리의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선보이기 위해 초현실주의적인 작품뿐 아니라 상업예술 작품들도 다수 전시된다. 그는 이러한 상업적 활동 때문에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되고 돈에 환장했다는 미술계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당대가 ‘미술’이라고 정해놓은 틀에 머무르지 않은 것일 뿐, 미술 장르에서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을 확장시킨 것이었다. 그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예술을 끝없이 새롭게 규정하였다.

거장 vs 거장 샤갈, 달리, 뷔페展

살바도르 달리 '달팽이와 천사'
© I.A.R. Art Resources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달팽이와 천사>를 눈여겨보자. 이 작품은 달리가 정신적 아버지라고 여겼던 프로이트와의 만남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매료되었던 달리는 오스트리아 빈에 들를 때마다 프로이트에게 만남을 청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고 한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프로이트에게 거절당하고 돌아서던 달리는 그의 집 앞에서 달팽이를 발견한다. 그는 달팽이와 프로이트의 머리를 연결할 생각을 했고, 달팽이를 작품 소재로 가져왔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그리게 된 달팽이는 이후 달리의 단골 소재가 된다. 부드러움(몸체)과 딱딱함(껍데기)을 동시에 가진 달팽이의 역설적 성격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속도의 한계를 모르는 천사가 느림의 상징인 달팽이에게 사뿐히 앉아 운동성을 부여하는 이 작품은 역설적인 속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은 우직한 화가, 베르나르 뷔페

어린 뷔페는 정규 교육 대신 시에서 운영하는 야간 드로잉 강좌를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15세의 나이로 에콜 데 보자르에 조기 입학을 할 정도로 천재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세계대전 이후 직접 겪은 전후 시대에 대한 젊은 해석으로, 당대를 선도하던 최고 권위의 비평가상을 받은 뷔페는 겨우 20세의 나이에 파리 미술계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피카소의 대항마로 거론되며 파리를 넘어 미국까지 명성을 떨친 뷔페였지만, 오히려 너무 이른 성공으로 개인적으로는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아야 했다. 쏟아지는 주문 제작은 고민 없이 작업하는 상업 화가라는 오명을 불러왔고, 추상회화 중심의 미술계 권력은 뷔페를 고립시켰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외면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찾고 그리는 것에 몰두했다. 어떤 것에도 끄떡없던 뷔페였지만, 파킨슨병으로 그림을 그리기 힘들어지자 결국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작업을 그만둔다.

 

시대가 변한 지금, 미술계에서는 뷔페가 활동하던 당시의 분위기와 오해들에 가려져 과소평가되었던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더 이상 예술가의 명성이 상업적 활동의 결과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지금, 오직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로 살았지만 차갑게 외면받아야 했던 뷔페의 삶은 가장 흥미로운 미술계 비화가 되었다.

 

사실 뷔페는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미술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했지만, 화단의 오랜 외면 때문인지 쉽게 그의 작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전시는 1940년대 초기작부터 그가 죽음을 맞은 1999년의 작품까지 전기의 작품을 대규모로 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이다.

거장 vs 거장 샤갈, 달리, 뷔페展

베르나르 뷔페 '에코르셰 앞면'
© Bernard Buffet / ADAGP, Paris - SACK, Seoul, 2016

이번에 소개되는 <에코르셰 앞면>은 1964년 뷔페가 ‘에코르셰’라는 주제로 그린 20개 연작 중 하나이다. ‘에코르셰’는 피부가 벗겨진 채 근육을 드러낸 인체도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캔버스가 저부조Bas-relief로 보일 만큼 물감을 두껍게 쌓아 올린 후, 그 위에 긁어내듯 강한 선으로 인체의 형태를 그린 것이다.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근육과 성을 내는 것처럼 한껏 이를 드러낸 입은 불길 같은 배경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림 속 남자는 벗겨진 피부 때문에 피투성이처럼 보이지만, 그의 끊어질 듯 팽팽한 근육과 힘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강하고 진한 선들은 마치 외부의 비난에도 끄떡없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뷔페의 굳센 의지를 드러내는 듯하다.

 

샤갈, 달리, 뷔페가 활동했던 20세기는 다양한 장르가 화려하게 꽃핀 미술의 황금기였다. 3인의 화가 또한 어느 한 장르에 종속되기보다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각자의 작품세계를 확립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거장 3인의 개성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각자의 개인전처럼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120여 점의 오리지널 작품과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보여주는 자료들은 이 ‘거장’들의 삶 이면에 존재했던 치열한 열정과 노력을 다각도로 조망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글 최가영 (전시기획자) 사진 한솔BBK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6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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