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시대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을 찾다

[컬처]by 예술의전당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3막 무대스케치 / ⓒ김현정

자코모 푸치니는 주세페 베르디의 명성을 잇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위대한 작곡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등 4개의 흥행한 오페라를 포함해 총 12편의 작품을 남겼다.

푸치니 음악의 특별함

연출 표현진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푸치니는 교회 음악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서북부의 도시 루카(Lucca)에서 나고 자랐다. 1876년 '아이다'를 보기 위해 루카에서 피사까지 30km나 되는 거리를 걸어갔을 정도로 베르디의 작품에 깊은 애정을 가졌으며, 그의 작품에 크게 감명받고 오페라 작곡가의 꿈을 품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베르디의 작품처럼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이탈리아 오페라 전통의 상징이 됐다.

 

푸치니 음악의 특별함은 극적인 음악표현에 있다. 그는 대본과 음악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완벽주의자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강렬하고도 섬세한 음악은 마치 귀로 한 편의 극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특히 유작이 된 '투란도트'에 많은 애정을 쏟았는데, 작곡할 당시 푸치니는 “이 전의 오페라는 잊어도 좋다” 라고 말했을 만큼 작품에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음악을 창작해 내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투란도트'의 어두운 동화 속 분위기와 고대 중국설화의 소재를 극대화하기 위해 동양적인 언어와 중국 선율을 가져와 풍부한 소리 세계를 만들어 내면서 그는 이전의 작품들보다 훨씬 더 독창적이며 화려한 음악색을 표현해 냈다.

 

'투란도트'는 카를로 고치(Carlo Gozzi)의 희곡으로 페르시아의 서사시 '7명의 미녀(Haft Peycar)'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12세기 시인 니자미(Nizami)가 고대 중국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투란도트 공주에게 구애하기 위해 노력하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를 썼다고 전해진다. 푸치니는 주세페 아다미와 레나토 시모니와 함께 대본 작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한 번도 다뤄 보지 않은 초현실적인 시대 배경과 낯선 중국문화를 재현해 내기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음에도 환상적인 내용은 그를 매료시켰고, 끊임없는 창작과 수정을 거듭하고서야 마침내 2막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테마는 결국,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사랑’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의상스케치 / ⓒMinsun Jung

이제 '투란도트'의 주제를 이끄는 세 명의 등장인물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잔혹한 피의 역사를 응징하는 공주 투란도트, 그의 응징은 또 다른 피의 역사를 만들고 있음에도 어느 누구도 그를 멈추게 할 수 없다. 그의 만행을 멈출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의 수수께끼를 맞히는 것뿐이다. 만약 수수께끼를 맞힌다면 그는 기꺼이 그와의 결혼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이방인과의 결혼은 다시 나라를 빼앗기는 것이고 자신도 로링 공주처럼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공포감에 더 잔인하게 자신과 나라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류의 숭고한 희생과 칼라프의 진심은 그를 변화시켰고 결국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나라를 잃고 이곳으로 도망 온 칼라프 왕자는 세상 그 어느 곳도 자신에게는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칼라프 왕자는 투란도트 공주를 보자마자 마법같이 사랑에 빠져 버린다. 그리고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주의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도망자로 살다 죽느니 용감하게 도전해 새로운 세상을 꿈꿔 보리라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류가 죽기 전에 그의 진심을 투란도트에게 더 확실히 보였어야 했다는 후회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왕자의 아버지를 모시고 망명길에 오른 노예 소녀 류. 오래전 칼라프의 다정한 미소를 보고 사랑의 마음을 남몰래 간직해 왔다. 사랑을 이룰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막상 왕자의 무모한 수수께끼 도전에 괴로워하며 왕자를 말려 본다. 하지만 칼라프 왕자의 진심을 이해하며 그의 승리를 응원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칼라프 왕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

 

오페라 '투란도트'는 결국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인 ‘사랑’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이런 통념적인 주제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여러 작품의 주제로 쓰인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인간의 원천적인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불가능에 도전하게 만들고, 사랑은 기꺼이 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게 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차갑고 냉혹했던 마음까지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작품은 말한다.

 

투란도트 공주가 내는 수수께끼의 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가지 답인 '희망, 피, 투란도트'는 모두 ‘사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랑은 희망을 갖게 만들고, 사랑하는 자는 끓는 피를 가지며,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는 나를 정열적으로 만든다 결국 푸치니는 수수께끼의 정답 속에서 오페라의 주제인 ‘사랑’을 간접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미래의 오페라 마니아들을 위하여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 1막·2막 무대스케치 / ⓒ김현정

2019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는 오페라 초심자들과 미래의 오페라 마니아들로 성장할 수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오페라로 기획된 작품이다. '투란도트'가 푸치니의 역작으로서 여전히 세계인들의 레퍼토리로 각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화려하고 입체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한 음악은 흠잡을 데가 없고 음악의 화려함만큼이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번 '투란도트'는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은 혼탁한 세상, 천상과 지상이 자유롭게 만나던 전설의 시대를 무대로 옮겨와 표현해 본다. 또한 동양신화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인물들을 찾아본다면 어린이들과 오페라 초심자들이 이 오페라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관전포인트가 될 것이다.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환상적인 작품의 탄생을 위해 많은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예술의전당 임직원분들과 모든 크리에이티브 팀에 감사를 드린다.

 

글 표현진 오페라 연출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8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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