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콘서트 고어가 알렉산더 셸리를 만날 때

[컬처]by 예술의전당

9.8(목) 오후 8시 콘서트홀

한국의 콘서트 고어가 알렉산더 셸리를

알렉산더 셸리 ALEXANDER SHELLEY

2011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와 내한한 리카르도 샤이는 한강 반포지구의 플로팅 아일랜드를 바라보며 “서울이 많이 변했다”고 부인에게 말했다. 가브리엘라 테라니Gabriella Terragni 여사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땐 우리가 아주 젊던 시절”이라 답했다. 1982년 테라니와 재혼한 샤이는 1984년 로열 필하모닉(이하 RPO) 내한 때 서울과 부산을 방문했고, 신혼의 여러 추억을 쌓았다고 했다. 1980년대, 샤이는 RPO 활동이 쌓이면서 영국에선 런던 필LPO 수석 객원지휘자까지 수월하게 올랐고, 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와 독일에서의 주요 포스트를 차례로 접수했다.

 

2010년 나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FRSO과 함께 온 파보 예르비의 차를 몰면서 도쿄 시부야에서 산 싸구려 ‘신세계’ 앨범을 보여줬다. 예르비는 레이블 이름도 미심쩍은 그 판을 살펴보고 “1994년, 로열 필하모닉과 함께한 어릴 때 녹음”이라 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할 ‘신세계’와는 어떻게 다른지,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대표 안드레아 쥐츠만에게 디테일을 설명했다. 청년 시절 예르비에게 연주를 허락한 런던 악단은 RPO였고, 경력이 붙으면서 런던 심포니LSO를 거쳐 지금은 필하모니아에서 영국 활동을 이어간다.

 

전통적으로 RPO는 훗날 거장 반열에 오를, 의욕 넘치는 신인 지휘자의 등용문이었다. 그런 RPO가 9월 8일 네 번째 한국 공연을 갖는다. 이런저런 팝스 콘서트를 제외하면 1984년, 1994년, 2013년 각각 리카르도 샤이, 예후디 메뉴인, 샤를 뒤투아 지휘로 RPO 정식 한국 공연이 열렸다. 이번 투어의 지휘봉은 알렉산더 셸리가 잡고, 협연에는 2015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나선다. 그림만 보면 32년 전 첫 내한과 흡사하다. 1984년엔 서른한 살의 샤이가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과 함께했고, 2016년엔 서른일곱의 셸리가 김남윤의 제자, 임지영과 함께한다. 셸리는 2011년 첼리스트 알리사 웨일러스틴 협연으로 서울시향을 지휘하고 5년 만의 서울 방문이다.

 

RPO가 LP 시절부터 한국의 올드팬들에게 친숙했던 건 1970년대 초반, 정경화의 데카 앨범이 라이선스를 얻으면서부터다. 루돌프 켐페 지휘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뒤투아가 함께한 쇼송 ‘시곡’이 출반됐고, 1972년 프롬스 협연에 정경화를 세웠다. RPO는 런던 심포니(1904년 창단)나 런던 필(1936년)은 물론이고, 필하모니아(1945년)와 BBC 심포니(1930년)에도 역사가 밀렸지만 다양한 앨범 실적을 기반으로 ‘런던 빅 5’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실력과 순발력 겸비한 연주자들로 생존한 교향악단

BBC 심포니를 제외하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직접 교부금이 분배되지 않는 여느 런던 주재 오케스트라처럼 RPO도 단원들에게 월급 형태의 고정급이 나가지 않는다. 대신 프리랜서 계약을 통해 연주 횟수로 수당을 받는 고용 형태를 취한다. 당연히 유럽 다른 도시들보다 리허설 횟수가 적은 대신,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단원을 조련할 지휘자들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토머스 비첨에서 뒤투아에 이르는 아홉 명의 음악감독과 수석지휘자가 남긴 음악적 유산은 유기적으로 쌓여가기보다 단편적으로 이어진 경향이 짙다. 명연에 목마른 단원들이 어쩌다 거장을 만나면 자신들의 연주력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자발적인 열성이 선명하게 보인다. 다니엘레 가티의 말러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마케팅을 놓고 런던 소재 악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단원들에게도 이어져 RPO 멤버들은 누구보다 최신 기류에 민감하다. 요나스 카우프만, 조셉 칼레야 같은 톱스타들의 반주에서도 짧은 리허설 동안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 “반주는 역시 로열 필”이란 평가가 클래식 음악의 비즈니스계에선 여전하다. 체임버홀 규모의 카도간홀에서의 연주나 6천 명이 들어가는 로열 앨버트홀에서의 특별 공연처럼 다양한 어쿠스틱 조건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유연성 역시 영국에서 RPO만한 곳이 없다. 다만, 정기 연주회 형태로 시즌이 진행되지 않는 탓에 악단의 기량을 일관되게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악단의 이름인 ‘로열’도 처음엔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의 공연을 일임해 연주하는 차원으로 사용했다가, 상호 계약이 끝나고 몇 년의 투쟁 끝에 1966년 간신히 ‘여왕’의 공식 칭호를 하사받았다. 그래서 이름만 들으면 악단에 왕실 특유의 기품이 흐를 것 같지만, RPO는 런던 중심지에 확실한 프랜차이즈를 마련하지 못해 수도 주변을 돌아다닌 강인한 생명력이 메인 컬러다.

 

1964년 RPO가 글라인본 페스티벌의 상주 오케스트라 자리를 런던 필에 넘겨주고, 음악감독 루돌프 켐페가 자리에서 물러난 후 말콤 서전트는 런던 북서부 스위스 코티지의 작은 영화관에서 RPO 공연을 재개하는 것으로 부흥을 꾀했다. 1971년 런던 동부 크로이던에 새 근거지를 마련할 때도 스탠드업 코미디가 진행되는 페어필즈홀의 어쿠스틱은 클래식 전용 홀과 거리가 멀었지만 RPO는 결국 들풀처럼 생존했다.

 

RPO 산하에 ‘로열 필하모닉 콘서트 오케스트라Royal Philharmonic Concert Orchestra’를 두고 상당수의 일용직 연주가들이 참여해 팝 공연을 반주하는 것도 금전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 발발한 브렉시트Brexit는 RPO에게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해외 투어를 점차 늘이면서 악단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온 RPO는 브렉시트로 파운드화의 약세가 지속될 경우, 해외에서 RPO를 초청할 때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점을 이용해 동아시아 특히 중국에서의 활동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RPO와 오랜 유대 관계를 맺은 일본의 프로모터인 가지모토가 일찍부터 중국에 진출해서 유자 왕과 뒤투아를 RPO 투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묶어내고 있다

 

2016/17 시즌 오프닝인 9월 19일 아르헤리치가 출연하는 RPO 70주년 갈라(로열 앨버트홀)는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 샤를 뒤투아(2009년~)가 지휘를 맡는다. RPO의 수석 객원지휘자인 핀커스 주커만(2015년~)이 같은 공연에서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의 협연과 지휘를 함께한다. 2015/16 시즌, 뒤투아는 로열 페스티벌홀 시리즈에서 레스피기, 스트라빈스키, 칼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같은 자신의 시그니처를 지휘했다. 주커만은 런던 첼시에 있는 카도간홀(950석)에서 베이직 레퍼런스로 올드팬들의 향수를 달랬다.

한국의 콘서트 고어가 알렉산더 셸리를

로열 필하모닉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악단의 전략적 행보, 명민한 젊은 지휘자를 선택하다

RPO가 최근 주목하는 청년 지휘자는 일란 볼코프(1976년생), 바실리 페트렌코(1976년생), 알렉산더 셸리(1979년생)다. 2015년 1월, RPO 수석 부지휘자에 오른 셸리가 뛴 곳은 런던 밖 중소도시였다. 헐시티, 노샘프턴, 크로이던, 사우스엔드온시에서 피아니스트 알리시오 백스와 라흐마니노프, 본 윌리엄스의 작품을 소화했다. 바비칸센터(1,940석)와 로열 페스티벌홀(2,500석)에서 안정적인 정기공연이 사실상 불가능한 RPO는 정기 연주회Subscription Concert 대신 흥행 프로그램은 카도간에서, 도전적인 작품들은 로컬의 기획물로 소화하고 있다. 셸리의 2016/17 시즌 레퍼토리는 더욱 진보적이다. ‘1920년대의 아우성The Roaring20s’을 타이틀로 이베르, 콜 포터, 프로코피예프와 미요, 라벨을 다룬다

 

셸리는 명 피아니스트 하워드 셸리의 아들로, 유복한 예술적 분위기 아래 모친에게 피아노, 조모에게 첼로를 배웠다. 실제로 2003년 게르기예프가 주관하는 월드 오케스트라 포 피스에는 첼리스트로 참가할 정도로 기악 테크닉이 뛰어났다. 영국 왕립음악원을 거쳐 뒤셀도르프 음대로 건너가 지휘를 공부했고, 얀 파스칼 토르틀리에의 조수로 지휘 경력을 시작했다. 2005년 리즈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부터 영국 미디어가 라이징 스타로 조명했으며, 2009년 도이치 캄머필에서 ‘미래실험Zukunftslabor’ 프로젝트 감독을 맡았다. 또 같은 해 가을부터 뉘른베르크 심포니 수석지휘자(~2017)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독일 음악계에 진입했다.

 

2015년 1월에도 놀라운 소식이 연달았다. 주커만의 후임으로 캐나다 국립아트센터 수석지휘자로 임명됐고, RPO 수석 부지휘자직을 맡았다. 그동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스위스 로망드, 북독일 라디오 필과 뉴질랜드와 홍콩, 멜버른 등 영연방 국가 악단의 객원지휘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2015년 9월부터 시작한 캐나다 국립아트센터에서의 지도력에 대한 평가도 고무적이다. 세부에 대한 명확한 지시를 통해 악단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도전 정신이 셸리 최고의 미덕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단시간에 밸런스와 인토네이션을 잡아내어 표현력의 증진으로 이어가는 리허설 기술이 탁월하다. 지휘자의 기대 수준에 맞게 연주가 따라오지 않을 때, 셸리가 짓는 뜻밖의 미소가 결국에는 단원 전반의 분발을 일으킨다. 스스로는 “지휘자는 최고의 스포츠카를 뒷받침하는 정비공의 역할”이라고 겸손함을 강조하는 멘트를 자주 인용한다. 특히 음악감독과 톱매니지먼트가 펀딩과 교육에서 책임을 공유하는 북미 오케스트라에선 셸리의 사회성이 더욱 높게 평가된다.

 

현지의 청중과 단원을 매료시킨 신인 지휘자를 과연 한국 팬들도 환영할 것인가. 15년 후쯤 또 다른 악단과 서울을 찾는다면 셸리도 RPO 내한을 추억할 날이 올까. 셸리는 임지영과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후반부에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지휘한다.

 

글 한창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제이케이앤컴퍼니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8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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