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이 담긴 춤

[컬처]by 예술의전당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11.1(금)-3(일) CJ 토월극장

ⓒAiden Hwang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안성수와 작곡가 라예송이 오는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신작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을 선보인다. 춤과 음악의 완벽한 합일을 추구하는 두 사람이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BAKi

우연은 시간 위에 흔적을 남긴다. 단단한 돌이 한줌 모래로 흩어지기까지 숱한 우연이 그 시간을 채우는 것처럼. 시간에 새겨진 우연은 우리 각자의 존재를 고유하게 만든다. <검은 돌: 모래의 기억> 속 모래의 비유는 곧 사람이다. 작품은 모래가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 과정을 그린다. 바람에 의해, 때로는 물에 의해, 어떤 커다란 존재는 모래가 되어간다. 작품 안에는 네 명의 무용수가 기억을 적극적으로 찾는 모래로 등장한다. 모래들이 강을 따라 움직이는 사이 모든 무용수와 연주자는 함께 모래가 된다. 모래들은 마법처럼 서로를 깨뜨리며 무대 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작품은 크게 모래가 기억을 찾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기억을 찾는 모래들이 깨달음을 얻은 뒤 무대 위 다섯 명의 연주자가 무용수들의 무대와 조우하는 순간이 온다. 과거를 알게 되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몰랐거나 혹은 잊었던 검은 돌을 만난 순간부 터 오히려 더 잘게 부서질 준비가 된 것이다. 마법 같은 우연을 가장한 철저한 계획 위에 관객도 함께 모래가 된다.

(왼쪽) 안무가 안성수 (오른쪽) 작곡·음악감독 라예송 ⓒAiden Hwang

검은 돌과 모래 만나기

몸이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에 집중해 안무를 구성했다. 네 명의 여자 무용수는 기억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는 주인공 같은 존재다. 다른 무용수는 이 모래의 친구들로, 이들의 기억을 살려주기 위해 함께 강물을 따라 움직인다. 무용수들은 스스로 어떤 부분 을 ‘모래 신Scene’이라고 부를 만큼 무용수 자신이 모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와 다른 특징적인 아홉 가지 동작의 조합이 아홉 개의 음악과 연결된다. 연주자들도 “우리가 진짜 모래가 되는 것을 실천하고 있구나”라고 이야기한다. 음악 중 태평소 솔로 부분은 ‘모래가 기억을 찾아낸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뒤는 모래의 깨달음 이후 이야기다.


가장 미니멀한 무대 위 가장 작은 모래

악사의 배치가 무대를 구성한다고도 할 수 있다. 후반부에 악사들이 일어나 뒤로 도는데, 그 뒤 장면은 관객에게 주는 선물 같은 부분이다. 의상과 조명도 다 잘 맞아떨어졌다. 의상을 구한 것도 우연의 마법이다. 스웨덴 공연 당시 방문한 덴마크 공항에서 옷 가게에 들어갔는데, 마음에 쏙 드는 수영복을 발견했다. 그것이 이번 작품의 의상이 됐다.


모래의 음악

<제전악-장미의 잔상>에 비해 더 거친 소리를 끌어낸다. <제전악-장미의 잔상>이 리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면,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은 해금 선율이 스토리를 이끈다. 모래를 실어 나르는 듯 흐르는 음악은 영화 같은 이미지를 저절로 불러일으킨다.


기억을 찾은 모래

기억을 찾았다는 것은 모래에서 더 잘게 부서질 준비가 된 것이다. 과거를 알았으니 자유로워진 것이다. 몰랐던 혹은 잊었던 과거를 알고 나면 더 편안한 마음으로 살게 된다. ‘과거의 이런 일 때문에 나의 현재가 이렇구나’ 하는 것을 알면,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길을 알게 된다. 지금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도, 과거에 대한 원인을 알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지 않을까. 마지막에 도달해 그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그것이 기억을 찾은 모래의 기분일 것이다.


글 안성수 안무가, 라예송 작곡·음악감독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9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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