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그녀는 발레다!

[컬처]by 예술의전당

10.15(토) 오후 7시 IBK챔버홀

 

2010년에 시작해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이한 예술의전당 대표 인기 공연 'TALK & CONCERT'(이하 토크 & 콘서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아티스트들의 이야기와 공연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음악회이다.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정상급 아티스트를 무대와 객석이 가까운 IBK챔버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인생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니 관객들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출연하는 10월의 '토크 & 콘서트'는 지난 3월, 티켓 판매를 시작한 후 빠르게 매진되었다. 예매를 놓친 회원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지면으로나마 세계 발레 애호가들의 영원한 스타 발레리나로 살아온 강수진의 모습 그리고 발레 꿈나무들의 롤 모델이자 멋진 멘토로 살아갈 예술가 강수진을 만나본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그녀는 발

얼마 전 KBS와 SBS에서 한국의 발레에 관한 기획 취재 프로그램이 나란히 방영되었다. 공중파 티브이에서 하루 사이에 서로 다른 발레 기획물이 잇따라 방영되는 건 전례가 없던 일이다. 각각 '강수진 KIDS', '강수진을 통해 본 강철나비들의 세계'라는 타이틀로 국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수들을 다룬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한국 발레 무용수들의 해외 진출과 발레리나 강수진을 그 중심에 두었다는 것이다. 국립발레단과 최근작 '스파르타쿠스'의 연습 현장,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은퇴 공연까지 무용수로, 예술감독과 단장 역할로 분주한 강수진의 일상이 인터뷰와 함께 화면에 담겼다.

 

모나코에서부터 시작된 무용수 강수진의 외국에서의 발레 인생은 두 달 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의 은퇴 공연으로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30년이 넘는 발레 여정 동안 댄서로서 그녀가 한국 발레계에, 아시아 발레계에, 그리고 세계 발레계에 남긴 족적은 결코 작지 않다. 이번 기사를 위한 강수진과의 인터뷰는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할까 고민하다 국립극장에서 있었던 최근 공연에 관한 것부터 물었다.

 

며칠 전 ‘라이징 스타 갈라 공연’을 보았더니 국립발레단 신예 무용수들의 성장세도 성장세지만, 클래식에서부터 컨템퍼러리 발레, 그리고 국내 안무가들과 해외 안무가들의 유명 작품까지 고루 짜인 것을 보고 놀랐다고 운을 떼자 “단원들이 여러 스타일의 춤을 춰보는 것 자체가 무용수로서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국내 안무가들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은 국립 예술단체로서 국내 발레계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내친김에 지난 8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첫날 공연을 봤는데 주요 배역인 크라수스와 예기나의 캐스팅이 바뀌어 있었다. 이미 공표된 배역을 공연 당일에 바꾸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무용수 중에 다친 사람이 있었는지 물었다.

 

“아닙니다.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지요.”

 

공연 당일 댄서의 컨디션을 고려해 초청 안무가와 트레이너, 예술감독의 만장일치로 정했다지만, 이 같은 결정은 확실히 달라진 국립발레단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2014년 2월 강수진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국립발레단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레퍼토리의 확장, 단원 선발과 캐스팅, 공연 지역과 장소의 확장,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적 완성도와 공연의 질적 향상 및 국제교류의 확대가 눈에 띈다. 국립발레단 부임 이후 어떤 면에 가장 중점을 두고 발레단을 운영했는지가 궁금해졌다.

 

“당연히 국립발레단의 성장이었어요. 단원들의 기량 향상을 위해 공연 작품을 다채롭게 골랐지요. 단원들에게 안무할 기회를 주는 시도 역시, 각기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테크닉뿐만 아니라 표현력 등에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그녀는 발

이쯤에서 아주 구체적인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부임 이후 필자가 처음 본 공연이 '라 바야데르'였고, 이전의 국립발레단 공연과 비교했을 때 단원들의 앙상블이 좋아진 것과 오케스트라 반주가 몰라보게 달라진 점이 인상적이었다. 발레 공연에서의 오케스트라 연주는 특히 지휘자가 중요한데, 급하게 새 지휘자를 외국에서 초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임기를 시작한 예술감독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한 달 만에 전막 공연의 지휘자를 구할 수 있었는지 당시의 상황이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전임 단장께서 섭외한 지휘자가 공연을 한 달 앞두고 갑자기 불가능하다고 해 난감했지요.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주디스 얀을 초청할 수 있었어요. 발레 지휘자로 명성이 높은 분이에요.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죠.(웃음) 30년 동안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쌓은 인맥이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국립발레단을 통해 이전엔 접하지 못한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본다는 것은 발레 마니아들에게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첫해에는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과 글렌 테틀리가 안무한 '봄의 제전'을, 이듬해에는 존 크랑코 안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단원들의 안무 작품을 모은 'KNB Movement Series', 그리고 신예 무용수들을 위한 'Rising Stars GALA' 시리즈를 새롭게 시작했어요. 올해는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와 '봄의 제전'에 이어 11월 마르시아 하이데 안무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공연할 예정입니다.”

 

공연 프로그램이 다양해진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예술의전당에서 주로 공연했던 것과 달리 국립극장뿐 아니라 아르코예술극장, LG아트센터 등으로 공연 장소가 확장된 것과 함께 공연 횟수도 늘어난 것 같다고 덧붙이자 그녀가 말했다. “2014년에 104회, 지난해에는 164회 공연을 했어요.” 164라는 횟수에 깜짝 놀랐다.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공연한 셈이다. 외국의 메이저 발레단 공연이 1년에 150회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연과 더불어 교육 프로그램과 지방 공연 등 공공성 획득을 위해 새롭게 시도된 프로그램도 궁금했다.

 

“군부대 발레교실은 2015년에 처음 열었는데 호응이 좋아 참가자들과 자체 공연도 했지요. 올해도 계속 진행하고 있어요. 가정법원과 연계해 보호관찰대상 여자 청소년들을 위한 발레교실을 올해 새로 시작했고요. 6개월 단위로 아이들이 바뀝니다. '강수진과 함께하는 온 나라 발레교실'은 한국국토정보공사와 연계한 사업으로, 거제 지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이틀에 걸쳐 열었습니다.”

 

강수진 단장이 부임한 후 국립발레단의 예산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경영평가 역시 좋아진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런 성과를 이루어낸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기본적으로 무용수들의 재능이 뛰어나요. 그리고 사무국 행정 스태프들의 능력과 성실성도 제겐 큰 힘이지요. 결국 단원들과 행정, 무대기술 스태프들이 함께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2014년 강수진 단장이 취임 공식 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립발레단의 향후 운영에 대한 생각은 ‘천천히’, ‘더불어’, ‘현장에서’였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안이 튼튼한 내실 있는 발레단을 만들고 싶다. 머릿속은 공연하고 싶은 작품들로 꽉 차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한 스텝 한 스텝 천천히 밟아 나갈 생각이다.”, “무용수 개개인이 빛을 낼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고 사기를 북돋워 주고 싶다. 무용수뿐 아니라 행정 스태프와 무대 뒤 모두가 하나가 돼 눈부신 국립발레단을 이루어갈 것이다”, “무용수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백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직접 동작으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빨리 전달되더라.”

 

인터뷰에서 밝힌 이 말들은 발레단 운영을 위한 새 예술감독의 준비된 구상이었고, 결국 강수진 단장은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직접 보여주었다. 공식적인 행사 이외에 모든 시간을 발레단 연습실에서 단원들과 함께 땀 흘리며 보내고, 사무국에서 행정 스태프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강수진의 일상은 공공 예술단체 수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신뢰를 갖게 한다. 그녀가 무대 위에서 늘 예술적인 감동을 안겨주었듯이!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그녀는 발

문득 예술가로서 강수진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필자가 가장 최근에 그녀의 공연을 본 것은 7월 22일 슈투트가르트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오네긴'이었다. 강수진의 타티아나는 슬픔과 절망감, 기쁨과 회한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연기력, 인물의 심리를 담아내는 섬세한 감정 표현과 춤은 일품이었다. 음악을 타고 흐르는 제이슨 레일리(오네긴 역)와의 호흡은 깃털 같은 가벼움으로, 때론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로 결코 쉽지 않은 크랑코의 안무를 육신으로 녹여냈다. 세 차례의 파드되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앙상블과 감정의 교감은 춤이 사람의 감성을 얼마나 깊은 곳까지 건드릴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무용수로서의 은퇴,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단원으로서의 30년을 마감하는 이 날 무대는 공연 후 단원들과 1천5백여 명의 관객이 함께 연출해낸 감동적인 세리머니와 함께 댄서로서 강수진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무용수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한 지가 두 달여 지났다. 슬그머니 은퇴 공연 얘기를 꺼내면서 다시 춤추고 싶은 미련은 없는지 넌지시 물었다.

 

“없어요. 이제는 주는 것만 남았지요. 은퇴 공연 날 제가 춤추고 싶은 대로 추었기 때문에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춤출 수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공연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요. 한국의 발레 발전을 위해, 기회가 된다면 세계의 발레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싶어요.”

 

단호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의 30년 동안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하는지, 지난 40여 년의 발레 인생에서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지 두 개의 질문을 이어서 던졌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에요. 저는 그곳에서 새로운 것을 위해서는 전통은 물론이고 단단한 기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런 견고함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만의 특징이죠. 정직하고 정확하고 올곧은 것이오. 저 또한 그렇고요. 영향을 받은 사람을 꼽자면… 몬테카를로 무용학교에서 공부할 때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선생님이 저의 기초를 형성해주셨죠. 남편 툰치 소크멘은 제가 발레단에 합류했을 때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제가 프로 무용수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프로 무용수로서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었지요. 전 예술감독인 마르시아 하이데는 무용수로서, 현 감독 리드 앤더슨은 지도자의 역할에 들어설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보낸 30년이 현재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일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묻자 강수진은 “어깨너머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마르시아와 리드 감독님뿐 아니라 리허설 코치님들로부터도. 단장으로서 행정부는 물론이고 다방면의 사람들과 만나 일을 하지만 이제까지 그 누구와도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어요. 그건 분명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쌓은 경험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들이죠. 그곳에서 배운 또 하나는, 인생은 쉽지 않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내 손 안에 있고 내가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라고 답했다.


정말 궁금했던 질문을 다시 꺼냈다. 50세의 나이에 어떻게 드라마 발레 전막 공연이 가능할 정도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이전에도 몇 차례 물었지만 늘 같은 대답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항상 젊다는 기분으로 생활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제 주위에는 늘 젊은 무용수들이 있으니까요. 새로운 세대와 교류하는 것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열어줍니다. 발레도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땀을 많이 흘리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땀과 함께 스트레스도 흘러나가니까요.”


이번에도 대답은 그리 명쾌하지 않았다. 은퇴 공연이 끝난 후 필자는 이 오랜 의문에 대한 해답을 그녀의 주치의인 볼프강 헤르프도로부터 얻었다. “수진의 몸은 의사가 고쳐주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훈련을 통해 다져진 몸이고,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알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춤출 수 있었다.”

 

이번에는 거주 문제를 꺼내 들었다. 지난번 독일 은퇴 공연 후 가진 인터뷰에서 남편이 한국 생활을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했는데,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기로 한 것이냐는 질문에 “은퇴 공연 후에는 남편이 한국 생활을 원해서 한국 정착을 생각했지만, 독일 집을 처분할지를 결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2016년 7월 22일은 한국 발레사에 의미 깊게 기록될 것이다. 80여 명의 무용수와 지도자, 행정·기술 스태프 모두가 19세에 입단, 30년간 재직하고 은퇴하는 무용수 강수진을 위해 특별히 헌정한 '오네긴' 공연이 있던 이 날은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외국으로 진출한 한국인 무용수가 군무에서부터 시작해 솔리스트와 수석무용수를 거치면서 30년 동안 프로 무용수로서의 치열한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무용수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고, 앞으로도 세계 춤의 중심에서 월드스타로 활약하는 댄서들이 나타날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4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명예 무용학 박사학위를 받은 강수진은 답사에서 “예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예술의 힘은 그만큼 강하고, 예술의 가치는 그래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의 힘을 믿는 월드스타를 더 자주 공연장에서 만나고 싶은 바람은 그를 아끼는 팬들에게는 떨칠 수 없는 여망이다.

10월 IBK챔버홀에서 만나는 예술감독으로서의 강수진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그녀는 발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그녀는 발

9월 국립극장에서의 국립발레단 '라이징스타2' 연습을 지도하는 강수진 예술감독

“클래식 발레, 네오 클래식, 그리고 컨템퍼러리 발레 색채를 가진 세 개의 파드되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백조의 호수'와 해외 안무가 아우스 홀베르크 자이트의 작품, 그리고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안무상을 받은 현대무용가 김재덕의 '아리아'를 계획하고 있어요.” 뭔가 흥미로운 무대를 꾸며보겠다는 강수진의 야심(?)이 묻어난 선택이다.

 

강수진은 많은 무용수가 생각하는 시간, 그 이상을 뛰어넘어 자신의 커리어를 지속했다. 가냘프면서도 우아한 그녀의 모습에는 표범과 같은 강인함과 나비와 같은 연약함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그런 강수진을 필자는 30년 동안 지켜보고 있다. 그녀는 셀 수도 없이 필자를 놀라게 했다. 그중 베스트를 선정하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녀가 했던 세 가지 대답을 꼽을 것이다.

 

1993년 줄리엣 역으로 주역 무용수로 등극한 이후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물었다. 만약 발레리나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으냐고. “지금 나는 발레 무용수이고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발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라는 답이 첫 번째. “하루에 열대여섯 시간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식사 시간과 이동 시간을 빼면 잠은 얼마나 자는가?”라는 질문에 “잠은 죽은 후에 무덤 속에서 실컷 잘 텐데요.(웃음)”라고한 대답이 두 번째. 마지막은 독일 시각으로 7월 21일 은퇴 공연 전날 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던진 질문에 대한 것이다. 당시 심경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하루 남았다. 타티아나만 생각하고 있다. 다른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흐트러질 테니까.”

 

오로지 발레만을 생각하는, 자기 일에 전력을 다하는 철저한 프로페셔널리즘과 마지막까지 작품에 몰입하는 고도의 집중력. 월드스타는 결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글 장광열 (무용평론가)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10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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