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 대신 외로움을 선택하다

[컬처]by 예술의전당

“힘든 하루를 보내고 텅 빈 집으로 돌아온 나를 위로해주는 건 이 맥주 한잔뿐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이렇게 혼자 마신다. 사람들 속에 시달리며 하루를 보내는 우리는 술 한잔만이라도 마음 편히 마시고 싶어 혼자 마시기도 하고, 앞이 안 보이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골치 아픈 걱정거리를 내려놓기 위해 혼자 마시기도 한다. 바쁜 하루 끝에 마시는 술 한잔, 나 혼자만의 시간은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며 내일도 힘내라는 응원이기도 하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대사다. 이 드라마가 대세란다. 제목의 ‘혼술’이란 ‘혼자 마시는 술, 또는 혼자 술 마시기’를 뜻하는 신조어다. 비슷한 신조어로 ‘혼밥’(혼자 밥 먹기)과 ‘혼행’(혼자 여행하기) 등이 있고, 이런 이들을 일컬어 혼술족, 혼밥족, 통칭해 ‘혼족’이라고 부른단다. 언론에서는 마치 새로운 종족이라도 출현한 듯 호들갑이지만, 이들의 출현이 그리 새로운 현상은 아닌 듯싶다.

 

딱 10년 전에 ‘글루미 제너레이션’이 있었다. 명칭만큼 ‘우울한 세대’는 아니었다. 이들은 혼자 있기를 선택한 자발적 외톨이로, 순화해 ‘외톨족’ 혹은 ‘나홀로족’이라 불렀다. 비슷한 용어로 ‘코쿤족’이 있었다. 과거 그들의 모습이나 지금 혼족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흥미로운 대목은 당시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실시했던 설문조사 결과다. 그때 SBS '굿모닝 세상은 지금'에서는 성인남성의 60퍼센트가 글루미 제너레이션이라는 흥미로운, 그러나 신빙성은 떨어지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글루미 제너레이션도 최초의 혼족은 아니다. 그보다 더 10년 전, ‘싱글족’이 있었다. 1996년 어느 일간지 기사의 제목은 ‘화려한 싱글은 원룸을 좋아한다’였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당시는 「초라한 더블보다는 화려한 싱글이 낫다」, 「시집 안 간 여자, 시집 못 간 여자」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시절이다. 그렇다고 싱글족이 혼족 최초의 조상인 것도 아니다. 싱글 이전에 독신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잊을 만하면 이름을 달리해 등장하곤 했다.

 

그렇다고 어느 시대에나 개인주의자들은 존재했다고 눙쳐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1990년대 싱글족이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주의자를 일컫는 ‘결혼’에서 파생한 단어였다면, 2000년대 글루미 제너레이션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세련된 트렌드세터를 가리키는 ‘취향’과 관련된 단어였다. 그런데 지금의 혼족은 결혼이나 취향과는 또 다른 결로 설명되어야 할 것 같다.

괴로움 대신 외로움을 선택하다

함께 괴롭거나 홀로 외롭거나

어쩌면 그들이 달라진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예전 그대로인데,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변한 것은 아닐까.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찾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호사스런 취미가 아니어도 취미생활을 누릴 금전적, 시간적, 무엇보다 심적 여유가 부족해졌다. 계속 진화하는 미디어 환경은 전 세계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 동시에 옆 사람과의 소외를 일으켰다. 물론, 이런 사회적 현실로 개인의 선택을 부정할 의도는 없다. 그들 중에는 함께 괴롭기 대신 홀로 외롭기를 택한 자발적 혼족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공동체를 중시하면서 개인을 등한시했다. 전체를 위해 개인은 희생당해야 했다. 저 멀리 프랑스의 사상가 사르트르도 말하지 않았던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이름을 달리하는 저 많은 혼족들은 타인을 위해 더 이상 희생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개인들이다. 그 대가가 외로움이라 할지라도, 괴로움보다는 나을 테니까.

 

하지만 저렇게 결론을 맺자니, 무언가 부족한 듯 느껴진다. 함께 괴롭기 대신 홀로 외롭기란 어쩐지 반쪽짜리 진실로 보인다. 때로 외로움은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더 커진다. 그리고 괴로움과 외로움, 결국은 둘 다 관계를 전제한 감정 아니던가. 진정 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면 관계, 소통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건 아닐까.

 

오직 홀로 외롭지 않은 이들만이 함께 괴롭지 않을 수 있다.

 

글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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