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한 삶을 위한 건축물을 꿈꾸다

[컬처]by 예술의전당

12.6(화) - 2017.3.26(일) 한가람디자인미술관 1, 2, 3전시실

간소한 삶을 위한 건축물을 꿈꾸다

롱샹 순례자 성당

간소한 삶을 위한 건축물을 꿈꾸다

르코르뷔지에
LE CORBUSIER

아쉽게도 르코르뷔지에(1887~1965)는 아직 대중에게 많이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몇 가지 단서를 준다면, 우리는 이미 그에 대해 꽤 깊게 알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일단 그의 이름에 붙은 몇 가지 수식어부터 확인해보자. 201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들(일곱 국가의 현대건축 총 열일곱 개가 이례적으로 한꺼번에 등재됐다)을 만든 사람이자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100인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건축가인 르코르뷔지에는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전혀 과하지 않은, 건축계의 거장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건축이라는 ‘도구’를 통해 일군 세계관이 오늘날 우리 곁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마도 대규모 공동주택인 아파트를 최초로 발명한 건축가라고 하면 르코르뷔지에라는 인물의 중량감과 중요성이 좀 더 실감 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가 고안해낸 공동주택이 한국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스위스 태생인 르코르뷔지에의 본명은 샤를르 에두아르 장느레다. 그는 시계 세공업을 가업으로 이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위스의 웅장한 자연과 어머니의 예술적 감수성은 유년시절 장느레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시계 장인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던 그는(실제로 십 대에는 시계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좀 더 규모가 큰 구조적 세계로 관심을 돌린다. 건축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전업 건축가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 그는 돌연 여행을 떠난다.

세계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다

1907년부터 1917년까지 이어진 이 긴 여행은 이후 그에게 건축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은 중요한 계기가 됐다. 특히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의 샤르트루즈 데마 수도원 방문은 그에게 공동주택 모델을 발견하게 한 중요한 ‘사건’으로 꼽힌다. 훗날 그는 수도승들의 여러 독방이 정원을 향하게 설계된 이 수도원을 떠올리며 ‘빌라형 공동주택 l’immeubles villas(1922)’을 설계한다. 또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할 때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본 후 충동적으로 파리로 갔다. 르코르뷔지에의 파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이곳에서 철근 콘크리트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페레 형제를 만났기 때문이다. 잠시 고국에 들른 후 또 한 번 발걸음을 외국으로 돌린 그는 그리스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그동안의 근대건축물이 간과한 점인 ‘간결하고 견고하면서도 열린 구조’를 발견하기도 한다.

간소한 삶을 위한 건축물을 꿈꾸다

돔-이노 골조

1917년에는 드디어 파리에 정착한다. 아직 자리 잡은 건축가가 아니었던 그는 당시 생계를 위해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등 어렵사리 프랑스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는 동안 또 하나의 중요한 사건이 그에게 일어난다. 1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플랑드르 지방의 재건을 위한 프로젝트를 모색하다 ‘돔-이노 Dom-ino’라는 골조를 고안하게 된 것이다. 대량 생산된 철근 콘크리트 기둥과 슬래브(수평의 판상), 계단으로 간결하게 이뤄진 이 골조는 사각 평면을 묵직하게 메우던 벽 대신 기존 벽면 기준으로 한 발 안쪽으로 기둥을 세워 건물을 지탱하게끔 한다. 이로 인해 마침내 평면과 입면 모두의 자유로운 구성이 가능해졌다.

친환경적 현대건축의 ‘기준’을 만들다

위대한 인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르코르뷔지에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얻은 것은 자신의 세계관을 글로 표현하고 난 뒤였다. 실제로 르코르뷔지에라는 이름도 이때 생겨났다. 장느레로 불리던 1919년, 그는 화가 아메데 오장팡과 시인 폴 데르메와 함께 잡지 「에스프리 누보」를 발간한다. 이 잡지에서 건축 관련 논설을 쓰면서 장느레는 친척 이름 르코르뷔지에에서 정관사 르Le를 한 칸 떼어낸 후 필명으로 사용한다. 「에스프리 누보」가 예술잡지를 넘어 근대정신에 대한 하나의 담론장으로서 국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르코르뷔지에도 덩달아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그는 이 잡지의 성공으로 1922년 한 전람회에 초청받아 ‘300만 거주자를 위한 현대 도시’ 계획안을 전시하게 되는데, 이 문제작에 대한 세간의 평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녹지 공간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콘셉트 아래 기획된 이 계획안에 따르면 도시의 중심에는 비행기를 위한 활주로가 놓이고, 활주로 주변에는 24개의 마천루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또한 도시의 외곽으로 설정된 공공주택지에는 정원이 있는 빌라형 공동주택이 등장한다. 당시의 눈으로는 파격적일 수밖에 없는 이 계획안을 통해 르코르뷔지에는 늘어나는 인구 문제를 해결하되 교통 편의를 도모하며 녹지 또한 가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의 원형을 그려냈다.

 

또 1923년에는 「에스프리 누보」에 실린 논평 중 일부 글을 묶어 「건축을 향하여」라는 책을 발간하는가 하면, 1930년에는 자신의 건축에 대한 생각을 집약적으로 담은 「프레시지옹」을 내기도 한다. 이 책에는 ‘새로운 건축의 5원칙’, ‘네 가지 건축적 구성’, ‘복도형 도로의 폐지’ 등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한 건축의 주요 개념이 담겨 있다. 이 중 특히 새로운 건축의 5원칙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가 보는 많은 건축물이 르코르뷔지에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건축의 5원칙은 건물과 지면을 띄우는 ‘필로티’, 필로티로 인해 생긴 면적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옥상 테라스’, 건물 하중을 기둥이 감당하게 하면서 벽의 개방성을 확보한 ‘자유로운 평면’, 파사드(앞면)에 창을 수평으로 길게 내어 수직창보다 더 자연광을 많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수평창’, 기능적인 필요나 미적인 필요에 따라 마치 회화의 화면처럼 파사드의 원하는 곳에 문과 창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의 ‘자유로운 파사드’ 등을 말한다.

간소한 삶을 위한 건축물을 꿈꾸다

사부아 저택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주창하는 등 1920년대 건축계의 담론을 이끌며 화려하게 급부상한 그는 마침내 1929년, 대표작 중 하나인 ‘사부아 저택Villa Savoye’을 설계한다. 그가 주장한 필로티라는 건축양식을 전면에 부각한 이 작품은 주거 공간이 있는 옥상정원을 기둥이 받치고 있는 형태로, 따로 정면이 없고 사방이 다 열려 있는 구조로 구현됐다. 필로티는 요즘의 많은 현대 건축물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굳게 자리매김한 상태다. 또한 이 건물에 구현된 가로로 긴 창들도 눈에 띄는데, 르코르뷔지에는 당시 주된 흐름이었던 세로로 된 창보다 햇빛을 더욱 많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로 창을 적용했다. 콘크리트벽에 유리로 된 창을 한 저택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 출발점에는 르코르뷔지에가 서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또 하나의 건축물로는 ‘롱샹 순례자 성당Chapel of Notre-Dame du Haut’이 있다. ‘기도하는 기계와도 같은 성당’이라고 표현되는 이곳은 얼핏 보면 종전에 그가 보인 합리주의적 성향과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기도하는 곳이라는 성당의 목적성과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실용성 면에서 고찰해볼 때 더할 나위 없이 합리적으로 구상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르코르뷔지에가 특정한 원칙을 주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없이 자유로운 면모를 지닌 건축가라는 사실을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특히 빛의 교회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이곳의 채광은 특별한데, 교회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서도 그 영향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롱샹 성당은 이처럼 건축이 자연의 빛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품는 유기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르코르뷔지에는 현대건축의 알파와 오메가 같은 존재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한 번도 그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 적이 없다. 올겨울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르코르뷔지에 재단주최로 열리는 첫 전시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12월 6일부터 내년 3월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코르뷔지에 展:네 평의 기적'에서는 그의 미공개작 140점을 포함해 5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전시된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만든 르코르뷔지에 건축모형 50점도 이번 전시에 포함된다. 회화와 드로잉, 조각, 설계도면, 모형, 서적, 사진, 영상 등을 총동원해 르코르뷔지에를 눈앞에서 재건설하는 흔치 않은 현장이 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르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이 국내 관객들에게도 좀 더 친숙해지길 기대해본다.

 

글 김나볏 (뉴스토마토 기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6년 11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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