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와 고종의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서

[컬처]by 예술의전당

명성황후 역 박혜나 & 고종 역 박영수 인터뷰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07.08(수)~07.26(일) | CJ 토월극장

©이보영

우리가 몰랐던 명성황후와 고종의 이야기, 간결하되 무게감 있는 이미지의 미장센, 중독성 강한 음악과 에너지가 응축된 군무. <잃어버린 얼굴 1895>(이하 <잃얼>)는 서울예술단이 추구하는 ‘창작가무극’의 정의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다. 2013년 초연 이후 네 번째 공연을 준비 중인 새로운 명성황후 박혜나와 ‘고종 장인’ 박영수를 만났다.

처음 명성황후 배역을 맡아 새로운 해석, 새로운 연기로 기대를 모으는 박혜나 배우. ©이보영

Q. 차지연, 김선영 배우에 이어 세 번째 명성황후로 <잃얼>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공연을 본 적이 있나?


박혜나: 서울예술단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심도 깊은 군무의 완성미를 좋아해서 즐겨 보러 오던 관객이었다. <잃얼>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무대와 군무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명성황후라고 하면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가 주는 이미지가 강한데, 그냥 한 여인의 삶과 암울한 시대가 보였다. 명성황후에 대한 어떤 선입견을 깬 작품이었다.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에게 기회가 올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Q. 박혜나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작품의 배경이 한국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명성황후라는 배역이 그동안 보여준 인물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도 받았다.


박혜나: 2011년에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에서 중전 역을 맡았었다. 중전의 서사가 길진 않았지만, 당시 경희궁에서 공연을 하면서 구중궁궐이 주는 정서적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궁에서 대기하다가 궁에서 벌어지는 설정의 공연을 한 거니까. 궁이라는 공간이 다 뚫려 있는데 한편으론 또 그렇게 밀폐되고 외로운 곳이 없다.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들리는 공간이었다.


결이 다르다는 건 오히려 나에게 더 도움이 된다. 이전 작품과 다르다 보니 나도 배역을 신선하게 느끼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적극성을 갖고 작업을 하게 된다. 사실 나는 항상 직업 1순위로 공무원이나 선생님을 적어냈던 모범생이었다. 다만 반복적인 것에 약한 편이었는데, 무대에서 늘 똑같은 공연을 반복한다고들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래서 이 직업이 너무 좋다. 전작이 일본에서 한 뮤지컬 <데스노트>였다. 배우로서의 나를 돌아보고 도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잃얼>이 한국에 돌아와서 하는 첫 작품이 됐다.


Q. 그렇게 만난 첫 대본을 읽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


박혜나: ‘재밌겠다’, 였다. 공연을 본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서 웅장하고 독특했던 그림이 떠오르지, 내용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본을 읽어보니 이게 모두의, 이 시대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대사들이 친절하지는 않다. 노래도 그렇고. 여긴 모든 게 그렇다. (웃음) 내 경우엔, 갈수록 설명이 많은 것에 흥미가 없어졌다. 그런 나에게 배우가 표현해야 할 것들이 많은 <잃얼>은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다. 배우로서 많은 것을 시도해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인물이라서 만남 자체로 설렜다.

매 시즌 고종을 연기하며 ‘고종 장인’이란 애칭까지 생긴 박영수 배우. ©이보영

Q. 반면 박영수 배우는 2013년 초연부터 이번 네 번째 시즌까지 모든 공연에 고종 역으로 참여했다. 작품의 어떤 매력 때문에 계속 참여하게 되는 걸까?


박영수: 초연 때 작품을 완성도 있게 잘 만들어둬서 그런 게 아닐까. 이 작품의 시작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지나 연출님은 초연 작업을 할 때 배우들에게 다양한 숙제를 내주신다. 정말 열심히 조사했고, 가사 하나 대사 하나 배우들이 직접 적었던 것들이다. 그때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서 그런지 네 번째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인물에 대한 생각이 착 붙는다.


Q. 이 작품이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건 명성황후와 고종이라는 인물의 전형성을 깼기 때문이다. 박혜나 배우가 본 명성황후는 어떤 인물인가?


박혜나: 뭔가를 정의하는 게 참 어렵다. 그 인물의 성장 배경, 조선이 처한 시대상을 고려해봤을 때 명성황후도 그저 유약한 한 인간이었는데, 위치 때문에 선택에 여러 크고 작은 책임을 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명성황후 주변에는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왜 그렇게 없었나 싶다. 우선 급한 불을 끄느라 했던 선택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 일조한 것 같아 그 점도 아쉽다.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명성황후도 인간이다 보니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불쌍한 인간,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기회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라는 것도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Q. 고종도 새로운 면을 많이 보여줬는데, 다시 접해보니 또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나?


박영수: 이전 공연 영상을 보니 아직 팔팔하구나 싶더라. (웃음) 고종은 어렸을 때부터 보통 사람이라면 겪을 수 없는 경험을 많이 하고 극도의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그렇게 한 번도 제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인물이 어떻게 살았을까. 초연 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펼치는 인물로 표현했는데, 지금은 그가 얼마나 뒤틀려 있었을까 싶고 그 부분에 집중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젊은 상태였기 때문에 고종의 힘과 감정을 뱉으려 했다면, 지금은 조금 힘이 풀어진 상태랄까.


박혜나: 괜히 ‘고종 장인’이 아니다. (웃음) 순간의 몫을 제대로 해내고, 기록으로 남겨진 고종과는 다르게 박영수라는 배우의 색을 입혀서 관객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도록 연기했다. 예전 영상을 봤는데 너무 신기하게 고종을 표현해서 좀 놀라기도 했다. 초연 때 많이 고민하며 인물에 다가갔다고 했는데 그게 느껴졌다. 힘이 빠졌다면 오히려 보다 유연하게 무대에 더 잘 녹아든, 깊어진 고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박영수: 이전과는 다르게 집요한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예전에는 “엄 상궁을 내 처소로 들라 하라”는 말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이가 생기고 직접 육아를 하다 보니 “애는 낳는 족족 다 잡아먹고”라는 말이 그렇게 끔찍하더라. 정말 뱉기도 싫은 말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단어들이 강약이 다르게 다가온다.


Q. 같은 배역이라도 배우에 따라 다른 느낌이 나는데, 박혜나 배우의 명성황후는 어떻게 다른가?


박혜나: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대본 속의 인물과 잘 만나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뿐이다. 이지나 연출님과의 첫 작업인데 나라는 배우가 표현하는 것에 대해 믿음을 갖고 지켜봐주시니까, 책임감을 갖고 더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어렵지는 않지만 친절하지 않은 작품이라서 단어 하나, 숨결 하나가 정말 소중하다. 그게 삐꺽하는 순간 극이 흔들리거나 전달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까. 잘하려는 욕심보다는 정확히 전달하려는 게 목표고 희망이다.


박영수: 차지연과는 느낌이 아예 다르다. 직접 보면 소름 돋게 다르기 때문에 최소 두 번은 와서 봐야 한다. (웃음)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엿보이는 콘셉트 사진. ©서울예술단

Q. 공연을 보면 각각의 인물에 대한 안타까움이 든다. 명성황후와 고종으로서 서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박혜나: 애썼고 미안하다. 사실 고종도 명성황후를 많이 사랑했다고 하더라. 사공이 많다 보니 조선이라는 배가 산으로 갔는데, 나도 결혼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이 스쳐 간다.


박영수: 김옥균에게 하는 “이런 사람이 왕이 됐어야 했는데”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이 작품은 실질적으로 삼각 구도가 아닌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 구도를 다룬다. 고종은 본인의 주장을 입혀서 힘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고종이 명성황후를 많이 존경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나 억압적인 부분이 없었더라면, 둘이 나라를 잘 이끌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Q. 마지막으로 오래간만에 만날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박혜나: 모두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작품적으로는 ‘잃어버린 얼굴’이라는 타이틀이 많이 와닿았다. 관객들 역시 함께 고민해보며 작품을 진하게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일단 지치지 않는 게 목표다.


박영수: 개인적으로는 ‘잃어버린 얼굴’이 곧 관객 한 분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공연이 4년 전이고 여러 면에서 많이 달라졌지만, 최대한 초연 때 느꼈던 감각들을 내면적으로 더 살려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싶다.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


기간 : 2020.07.08(수)~2020.07.26(일)
시간 : 화-금 8PM / 토 3PM·7PM / 일2PM·6PM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 CJ 토월극장
관람등급 : 8세 이상 관람
관람시간 : 150분
장르 : 복합장르
가격 : R석 9만 원 / S석 6만 원 / A석 3만 원
주최 : 서울예술단
문의 : 1577-3363
후원/협찬 : 문화체육관광부 / 바세츠 아이스크림

사진 이보영(스튜디오 록), 서울예술단

글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2020.06.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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