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외인구단' 까치가 지옥훈련한 무인도

[여행]by 월간산

제주의 서쪽 끝… 수시 운항 관광유람선 15분이면 닿아

차귀도와 당산봉, 한라산이 늘어선 풍광. 제주 절경 중 하나다.

차귀도와 당산봉, 한라산이 늘어선 풍광. 제주 절경 중 하나다.

제주도는 동서남북에 크고 작은 여러 섬을 거느리고 있다. 남쪽 모슬포 앞바다엔 청보리로 유명한 가파도와 국토최남단 마라도가 접시마냥 떠 있고, 형제섬과, 범섬, 문섬, 섶섬, 지귀도, 서건도, 새섬 같은 무인도도 눈길을 끈다. 


동쪽엔 소섬 우도와 토끼섬이, 북쪽엔 다려도와 추자도가 있으며, 서쪽엔 비양도와 차귀도가 아름답다. ‘섬 속의 섬’인 이 유·무인도들을 둘러보는 것은 제주 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이상하게 연이 닿지 않는 장소가 생기기 마련이다. 꼭 가보고 싶고, 누구나 가는 곳인데도 날씨나 갑자기 발생한 상황 같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장소 말이다.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툭하면 제주를 찾는 내게 추자도와 차귀도가 그런 곳이었다. 추자도는 아직까지 갈 틈을 찾지 못했고, 몇 해를 벼르던 차귀도는 지난 4월에야 다녀올 수 있었다. 상상 이상으로 아름답고 멋진 섬이어서 한 달 만인 5월에 또 차귀도로 향했다. 

아름다운 길 끝에서 만나는 차귀도등대. 이 길을 걷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아름다운 길 끝에서 만나는 차귀도등대. 이 길을 걷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세 섬을 묶어 부르는 이름 차귀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바닷가에서 빤히 내다보이는 차귀도는 일몰 명소로 손꼽힌다. 자구내포구나 가까운 수월봉에서 조망하는 차귀도를 품은 석양 풍광이 여간 황홀한 게 아니어서 제주 여행객은 물론, 사진가들도 자주 찾는다. 그러나 차귀도의 아름다움은 오랜 세월 바람이 다듬고 파도가 깎은 그 섬을 두 발로 직접 걸을 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자구내포구는 예로부터 오징어와 한치잡이로 유명하다. 그래서 부둣가를 따라 손질한 오징어와 한치를 줄에 널어 해풍에 말리는 정겨운 풍광이 펼쳐진다. 말린 오징어와 한치를 판매하는 가게도 여럿이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좋다. 


부두 한쪽엔 밤에 배들이 무사히 귀항할 수 있게 항구 위치를 알려주던 제주의 옛 민간 등대인 도대불도 보인다. 크고 맛있다는 꾸덕꾸덕한 반건조 오징어 한 마리를 사서 배에 오른다.

초지대 곳곳에 섞여 자라는 갯강활. 제주도 곳곳의 바닷가에서 자주 보인다

초지대 곳곳에 섞여 자라는 갯강활. 제주도 곳곳의 바닷가에서 자주 보인다

포구를 벗어나자마자 와도가 눈길을 끈다. 큰 바람과 파도가 덮치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얇고 가파른 벽을 치켜세운 이 섬은 하늘에서 보면 와인잔 모양을 하고 있다. 주변 바다의 맑고 투명한 물빛이 무척 환상적이어서 남태평양의 어느 산호섬을 떠올리게 한다. 


차귀도는 임산부가 누운 것 같다는 와도, 본섬인 죽도, 지실이섬 또는 매바위로도 불리는 독수리바위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차귀도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이며 제주지질공원이고 천연기념물이다. 지난 30년간 출입을 제한하다가 2011년에야 다시 길이 열렸다. 


세 섬 중 가장 큰 죽도에 선착장이 있으며, 나머지 섬은 배로 둘러본다. 당산봉 아래 자구내포구에서 죽도의 차귀도방파제까지는 직선거리로 1.3km, 관광유람선(비누스타3호)을 타면 15분쯤 걸린다. 


죽도의 낡고 허름한 방파제에 내리자 오래 전부터 사람의 발길이 잦던 곳인데도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듯 설렘이 느껴진다. 무인도이기 때문일 게다. 차귀도는 제주에서 가장 큰 무인도다. 


예전에는 7가구가 보리와 콩, 참외, 수박 같은 작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1970년대 말, 나라에서 간첩사건 등을 이유로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후 무인도로 남았다. 그 덕에 이리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던 걸까? 한편으론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난 원주민들의 심사가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탐방로의 첫 전망대. 뒤로 붉은 송이가 드러난 절벽이 눈길을 끈다.

탐방로의 첫 전망대. 뒤로 붉은 송이가 드러난 절벽이 눈길을 끈다.

방파제에서 지그재그 계단을 따라 섬에 오르니 벽채만 남은 낡은 건물 한 채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섬에 살던 이들의 흔적이다. 건물 터 주변엔 연자방아와 빗물 저장시설도 남아 있다. 이런 독특한 환경이다 보니 1977년에 개봉한 영화 ‘이어도’와 1986년, 이현세의 인기 만화가 원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지옥훈련 장소가 차귀도였다. 


죽도를 둘러보는 탐방로는 총 4.1km. 집터에서 길은 섬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가거나 왼쪽 장군바위 또는 오른쪽 정상 세 갈래로 갈린다. 여행자 대부분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장군바위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길 끝에 눈길을 끄는 하얀 등대가 서 있기 때문일 게다. 


동서로 길쭉한 모양을 한 죽도는 서쪽 상공에서 보면 약간 통통한 한반도를 닮았으며, 허리 부분의 남쪽과 북쪽 해안을 제외하면 사방이 온통 깎아지른 절벽이다. 섬의 대부분은 완만한 구릉을 이룬 가운데 띠와 억새가 뒤섞인 넓은 초지가 펼쳐져 바다에 떠 있는 목장 같다. 풀밭엔 어른 키보다 높이 자란 갯강활이 자주 보인다. 


정상인 동쪽 봉우리 남사면에는 1974년, 고산리 부녀회가 심었다는 곰솔이 무리지어 자라지만 바람 때문인지 키가 작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섬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초지 가운데서 몇 개의 작은 신이대숲만 눈에 띈다. 이 외에 보리수나무, 돈나무, 순비기나무, 멀구슬나무, 찔레덤불 등도 확인된다. 

동쪽 상공에서 본 차귀도. 약간 통통한 한반도 같다.

동쪽 상공에서 본 차귀도. 약간 통통한 한반도 같다.

설문대할망의 500명 아들 중 막내

섬에는 해안 절벽에 둥지를 튼다는 매와 물수리를 비롯해 몇몇 조류와 누룩뱀, 대륙유혈목이, 도마뱀 같은 파충류도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파제와 가까운 숲에서는 닭 우는 소리도 들리는데, 누군가 방사했거나 예전에 사람이 살던 때에 가축으로 기르던 게 남은 듯하다. 


시계돌이 방향으로 길을 따르다가 만난 첫 전망대. 섬의 남쪽 풍광이 손바닥 보듯 훤히 펼쳐지는 이곳의 풍광이 가히 환상이다. 전망대 앞으로 독수리바위를 위시해 몇 개의 바위섬이 우뚝우뚝하다. 그중에서 가장 작은 듯 보이는 검은 돌기둥이 장군바위다. 

자구내포구에서 수월봉까지 이어지는 1km의 해안길인 ‘수월봉엉알길’.

자구내포구에서 수월봉까지 이어지는 1km의 해안길인 ‘수월봉엉알길’.

제주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의 500명 아들 중 막내라는 전설이 전해 온다. 장군바위 옆으론 온통 붉은 송이로 가득한 절벽이 장관이다. 안내판에는 이곳도 화산의 굼부리였다고 한다. 즉, 차귀도가 오름이라는 말이다. 


이 일대의 풍광이 한없이 평온하고, 목가적이며, 아름다워서 걷는 기분이 제대로다. 해안을 따라 난 풍광 좋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지며 눈을 즐겁게 하고, 억새며 띠 같은 풀로 채워진 초지대를 지나온 해풍이 마음까지 상쾌하게 만든다. 제주의 이 황홀한 순간을 만끽하고파 천천히, 최대한 느릿느릿 걸으며 서쪽 언덕으로 향한다. 

자구내포구에서 본 차귀도 일몰. 제주를 대표하는 일몰 명소다.

자구내포구에서 본 차귀도 일몰. 제주를 대표하는 일몰 명소다.

볼레기등대 앞에서 취한 풍광

드넓은 구릉의 초지가 몰려간 서쪽 봉우리엔 하얗고 예쁜 등대 하나가 자연으로 가득한 차귀도와 주변 바다를 지켜보며 섰다. 이 아름다운 풍광에 방점을 찍은 듯 멋진 차귀도 등대는 고산리 주민들이 손수 만든 무인등대다. 


지을 때 돌을 나르는 게 몹시 힘들어서 제주어로 ‘볼락볼락’ 가쁜 숨을 쉬었다고 해서 고산리 주민들은 이곳을 ‘볼레기언덕’, 등대를 ‘볼레기등대’라고 부른다. 


1957년 첫 점등 후 지금까지 주변 바다에 생명의 빛을 비춰오고 있다. 차귀도 풍광의 중심이기도 한 이 등대는 섬의 어디서건 도드라져 보이기에 섬을 둘러보는 동안 위치와 방향을 가늠하는 기준점이 되어 준다. 


등대 앞에서 바라보는 차귀도가 얼마나 멋들어지는지,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주변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그 뒤로 가만히 펼쳐진 한라산과 제주도 본섬의 풍광은 또 어떤가! 이 풍광이 지겨워질 때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다른 지역에 비해 수심이 깊어서 참돔과 돌돔, 혹돔, 벤자리 등 고급 어종이 풍부하다고 한다. 그래서 낚시꾼들에게 이곳은 성지로 통한다. 등대까지 오는 동안에도 여러 대의 낚싯배와 갯바위에서 낚시 중인 꾼들을 보았는데, 그들의 살림망이 궁금하다. 


‘차귀도遮歸島’라는 이름의 유래에 얽힌 재밌는 전설이 전해 온다. 중국 송나라 때 사람인 푸저우福州 출신의 호종단胡宗旦이 장차 이 섬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을 두려워해 제주의 지맥과 수맥을 찾아다니며 끊었다고 한다. 


그 일을 마친 후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고산에서 배를 타고 이 섬 부근을 지날 때 매로 변한 한라산의 수호신이 나타나 뱃머리에 앉아 돌풍을 일으켜 호종단의 배를 침몰시켜 버렸다. 


제주에 해를 끼친 호종단이 돌아가는 것[歸]을 막았다[遮]고 해서 그후로 이 섬을 차귀도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차귀도의 독수리바위가 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차귀도에 내린 후 정확히 1시간 뒤에 다시 유람선이 태우러 온다. 여행자들은 그동안 자유롭게 차귀도를 둘러보면 된다. 풍광 좋은 곳마다 사진을 찍으며 서쪽의 등대가 있는 볼레기언덕과 동쪽의 정상봉까지 다녀오는 데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등대 앞으로 펼쳐진 차귀도 풍광에 취한 탓인지 벌써 배가 들어올 시간이다. 저 건너 정상까지 다녀오려면 부지런히 달려야 할 판. 이 환상적인 섬에서 달음박질이라니, 다음엔 정상만 다녀오는 일정으로 또 와야겠다. 

교통

차귀도행 유람선(베누스타3)을 탈 수 있는 자구내포구는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제주공항에서 서귀포버스터미널을 오가는 202번 버스를 타고 ‘고산우체국앞’ 정류장에서 내려 1.5km를 걷거나, 동광육거리에서 자구내포구를 오가는 771-1, 771-2번 버스를 이용한다. 배표는 인터넷(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이나 전화(064-738-5355) 예매, 현장 구매가 가능하며, 인터넷 예매 시 할인도 된다. 유람선은 09:30~17:30 수시 운항(기상, 현지 상황 따라 유동적). 


주변 볼거리

수월봉엉알길 자구내포구에서 남쪽의 수월봉까지 이어지는 1km쯤의 해안길을 ‘수월봉엉알길’이라 부른다. 화산탄과 화산재가 뒤섞이며 쌓인 아름다운 지층이 해안을 따라 길게 노출된 이 길은 ‘수월봉 지질공원 지오트레일’ 코스로, 2011년부터 매년 트레일 행사가 펼쳐진다. 중간에 만나는 일제의 갱도진지도 눈길을 끈다. 


먹거리

자구내포구 주변엔 관광명소답게 여러 식당이 성업 중이다. 배낚시 대물1·2호를 운영하는 ‘대물식당(064-773-5858)’은 각종 생선조림과 구이, 한치물회와 자리물회를 잘한다.

2022.08.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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