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바르트' 슬픔은 끝나지 않는다

[컬처]by KT&G 상상마당 웹진

지금도 하나뿐인 그대, 롤랑바르트.

'롤랑바르트' 슬픔은 끝나지 않는다

삶은 끝없는 교환으로 이어진다. 연애는 다음 연애로, 취미는 또 다른 취미로, 상처 또한 새로운 상처로 대체되고 잊힌다. 그럼에도 ‘오직 하나뿐인 그대'라면, 내게 그 명패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언제나 바르트였다. 문학 비평가, 기호학자, 구조주의자, 논쟁가, 결코 완성되지 못했던 소설을 준비하던 작가, 탁월한 취향의 발신자, 누구보다 더 글쓰기의 쾌락에 탐닉했던 사람. <사랑의 단상>으로 롤랑 바르트를 처음 만난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좋아해온 저자는 롤랑 바르트가 유일하다. 어떤 작가도 그의 자리와 교환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롤랑 바르트의 문체에 홀딱 반했고, 이후 오랫동안 그는 출중한 ‘댄디’로서 나를 매료시켰다. 이제는 애초의 동경을 고스란히 품은 채 말년의 바르트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롤랑바르트' 슬픔은 끝나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는 변화무쌍한 이력을 자신만만하게 통과한 인물이었다. 혹자들은 그가 젊은 시절 보여준 좌파적 태도와 맹렬한 사회 비판을 ‘바르트 풍의 스물 여섯 가지 취향 중 몇몇’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런 말들을 근거로 그의 초창기 시절을 폄하하는 것은 경솔한 실수겠지만, 롤랑 바르트의 전술이 종종 바뀌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마치 조금 전 자기 자신이 이룩한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욕구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그는 언제나 새로운 주제와 관심사를 발견하곤 했다. 현대 자본주의 문화의 기만을 통렬하게 조망한 <신화론>부터 서구 담론들의 변방에 방치되어 있던 사랑의 수사학을 매혹적으로 분석한 <사랑의 단상>, ‘저자의 죽음’을 주장해 문학의 주체를 독자에게 돌리는 동시에 쓰기와 읽기의 쾌락을 신체적 감각에 대입한 <텍스트의 즐거움>, 당대 아방가르드 문학의 수호자를 자처한 <글쓰기의 0도>, 기호학 이론들을 동원해 패션을 관찰한 <모드의 체계>까지, 바르트는 자신의 분야를 한정 짓지 않고 지적인 모험을 이어갔다. 게다가 그 모험들은 즉흥적인 발상이나 욕망의 소산이 아니었다. ‘비평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바르트는 이렇게 말한다. “비평가의 책무는 숨겨진 의미 –과거의 진실- 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시대의 인식가능성(intelligibility)을 구성하는 것이다. ‘우리들 시대의 인식 가능한 것’을 구성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현상들을 다루는 개념의 틀을 다시 짜는 일이다.” 한편, ‘목소리의 결’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인터뷰에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평생 동안 나를 매혹시켜온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방식이었다.”

'롤랑바르트' 슬픔은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는 지상 최고의 멋쟁이였다. 마치 그의 문체처럼, 균형과 방만함, 세속적 기질과 품위를 오만하게 겸비한 남자. 이색적인 자서전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에서 그는 한 페이지에 달하는 리스트로 자신의 취향을 설명한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아몬드 파이와 글렌 굴드, 정치적으로 가벼운 입장, 샴페인, 작약, 포도밭에서 재배된 복숭아, 정제하지 않은 소금, 리얼리즘 소설, 낭만주의 음악과 막스 브라더즈, 아두르 강의 만곡부, ‘샌들을 신고 남서부 지방의 소로를 저녁 시간에 거니는 것’, ‘잔돈을 가지고 다니는 것’ 등을 포함시킨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에는 제라늄과 딸기, 비발디, 바르톡, 사티, 호앙 미로, 정치와 성의 결합, 주도권, 충실성, 자발성,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저녁 시간’ 등이 열거된다. 바르트가 쓴 글 중 가장 단순하고 덜 사변적일 항목들. 내 말랑한 심장에 이 즉흥적인 목록은 우아한 남자의 경전처럼 새겨졌다. 에릭 사티보다 슈만이, 호앙 미로보다 잭슨 폴록이 오직 ‘바르트적’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감을 샀다. 그토록 반칙 같은 형용사를 동원해야 하는 개성은 그의 문체에서도 드러났다. 자신의 취향을 자유롭게 인용하며, 롤랑 바르트는 형이상학의 감각적 면모들, 글쓰기의 관능을 지면 위로 끊임없이 끌어온다. 그는 독서와 비평, 글의 구조에 대해 촉감, 즉 신체적 표현들로 설명하길 즐겼고, 이것은 바르트의 중요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런 순간마다, 바르트의 문장들은 고스란히 내 피부 아래로 스미는 것 같았다. “텍스트의 즐거움은 나의 몸이 텍스트의 관념을 좇아가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다.” 롤랑 바르트의 문체야말로 그의 이러한 주장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롤랑바르트' 슬픔은 끝나지 않는다

내가 바르트에게 매료된 가장 중요한 이유들은 여기에서 끝난다. 그러나 '매료'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내가 그에게 품은 애정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있었다. 내가 아는 한, 롤랑 바르트의 가장 최근 판본은 무척 캄캄하고 슬픈 모습이다. 슬픔이라는 감상적인 추상 명사가 아니고서는 바르트의 마지막 책들인 <밝은 방>과 <애도 일기>를 설명할 길이 없다. 그 책들은 독자를 ‘너무 슬퍼하지 않으려고 싸우듯’ 읽는 독서 경험으로 넘어트린다.


1977년 10월 25일 롤랑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가 사망했다. 1980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바르트가 행했던 작업들은 죽은 어머니에 대한 애도의 연속이었다. 사진에 대한 고전들 중 하나인 <밝은 방>은 예술의 영역에도 사회적 기호에도 포함될 수 없는 사진들의 특수한 감흥에 대한 분석이다. 어떤 사진도 ‘거의 어머니처럼 보일’ 뿐, 그녀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사진들을 찾아본다. 온실 앞에서 촬영된 유년 시절 어머니의 사진을 발견한 바르트는 마침내 그녀의 본질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에게 사진은 상실과 상처의 흔적이다. 존재의 사라짐은 멈출 줄 모르는 시간에 묻혀 좀처럼 인식되지 않지만, 사진은 그 사실을 섬광처럼 명징하게 우리의 직관에 제시한다. 순간은 끊임없이 죽어가고, 사진은 프레임 위에서 그 죽음을 한없이 지연시킨다. 우리의 마음을 찌르고 개인적 진실을 알려주는 그 경험에 그는 ‘찔린 자국’을 의미하는 라틴어, ‘푼트쿰’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끝장나버린 사랑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꿈을 꿀 때, 오래 전 폭발한 별이 수십만 광년을 통과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빛을 우리의 머리 위로 비출 때, 이미 사라진 누군가의 정수를 구현하는 한 장의 사진을 볼 때, 잊지 않기를 바랐던 것들은 고통스럽지만 황홀하게 반송된다. 그 메커니즘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순간을 정확하게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 사각형의 인화지 안에서 잃어버린 대상과 완전하게 해후하지만, 상실감은 다시 한 번 헐거운 손 밖으로 흘러내린다. 바르트가 어머니의 온실 사진의 효과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면서도 결국 그 사진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는 이렇게 쓴다.

'롤랑바르트' 슬픔은 끝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발견한 사진의 진실을 이렇게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겨울정원의 사진은 슈만의 마지막 음악, 그러니까 그가 광기로 건너가기 직전에 썼던 ‘새벽의 노래 (Gesang der Fruehe)’, 그 첫 번째 악장이다. 이 노래는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의 본질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뒤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슬픔과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이 화음의 상태를 무수한 형용사들로 수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폴 발레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작은 책 하나를 쓰고 싶었다.” <밝은 방>에 실려 있는 이 문장은 <애도 일기>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애도 일기>는 1977년 10월 26일부터 1979년 9월 15일까지 그가 쓴 일기를 모은 책이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마망’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애도 일기>의 특별한 정서는 책 말미의 번역 후기에 섬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바르트의 슬픔은 애도와 멜랑콜리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건 바르트의 슬픔이 애도와 멜랑콜리와는 다른 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애도와 멜랑콜리는 서로 양립적이기는 해도 하나의 원칙에서 만난다. 그건 상실된 대상의 ‘대체’다. 애도는 다른 사랑의 대상으로, 멜랑콜리는 자기 자신으로, 상실된 사랑의 대상을 대체한다. 애도와 멜랑콜리는 다 같이 교환의 경제학을 따르는 슬픔의 작업이다. 하지만 바르트에게 사랑의 대상은 경제학의 대상이 아니다. (…)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이 상실되었으므로 그 상실이 남긴 부재의 공간 또한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패인 고랑’으로만 남는다. (…) 그것은 대체할 수 없는 그가 더 이상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절대 공백의 공간이지만, 그 절대 부재성은 그 공간이 오로지 그 사람 자신으로만 채워질 수 있고 또 채워져야 하는 공간, 그 사람이 반드시 귀환해야 하는 공간임을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이 부재의 역설이 바르트의 애도를 특별한 공간으로 만든다.”

'롤랑바르트' 슬픔은 끝나지 않는다

롤랑 바르트는 슬픔을 통속적이고 영리하게 소모하는 방식에 포섭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의 위로와 관심에 무기력하고 무관심하게 대응하며, 어머니의 부재를 지키고 보존하려고 애쓴다. 회복과 망각을 거부하고, 상실한 대상과 맞잡은 유일한 끈인 ‘슬픔이 놓여 있는 곳(“나의 슬픔이 놓여 있는 곳, ‘우리는 서로 사랑했다’라는 사랑의 관계가 찢어지고 끊어진 바로 그 지점이다. 가장 추상적인 장소의 가장 뜨거운 지점……”<애도일기>)’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살아남음이 아닌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그 도상에서 롤랑 바르트는 연민의 도덕을 발견한다. <밝은 방>의 마지막 구절에서 말하듯, “사진이 불러내는 감정 안에서는 또 다른 선율이 들려왔다. 그것은 연민이었다. 죽은 것, 죽어야 하는 것들을 껴안으며” 그는 “사진 속으로 뛰어 든다.” 그러나 그러한 통찰을 틀이 갖춰진 작업으로 발표하기 전 롤랑 바르트는 숨을 거둔다.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인 후 병원에 옮겨졌으나, 심리적으로는 치료 받길 거부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 죽음을 일종의 자살이라 부른다. 아주 허튼 소리만은 아니다.


<애도 일기>로 바르트의 진면목을 알기는 힘들다. 이 책의 주인공은 롤랑 바르트라기보다 그가 처한 슬픔의 심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머릿속을 맴도는 구절들이 있다. “마망은 평생 동안 나를 지배했던 법률이었다.” “나는 그녀와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동시에) 죽지 못했다” 애도의 이상한 고양 상태에 감염된 채, 그 문장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혹은 우리가, 나날을 건너 계속 서성이는 우매한 질문들이 있다. 사랑의 경험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머무르려 한다는 것은, 변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어째서 매 순간 살아있음을 선택해야 하나. 새로운 사건들은 새로운 교훈을 남기는 법이지만, 때로 각각의 체험이란 그 질문들을 향해 또 다시 걸어 들어가는 폐곡선이다. 폐곡선들의 반복이 종래에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 수 있다면,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책들을 대체할 수 있는 독서는 무척 드물 것이다. 쾌락의 신봉자로서, 슬픔의 윤리학자로서, 나의 하나뿐인 그대.


글. 정미환(프리랜스 에디터)

2015.08.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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