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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영화 '그녀'

사랑의 이해와 실제
초급과정

byKT&G 상상마당 웹진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컴퓨터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진 외로운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스파이크 존즈의 <그녀>는, 과거 어떤 영화들보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속삭인다. 

사랑의 이해와 실제 초급과정

“당신 마음 속의 두려움이 느껴져. 그걸 떨쳐버리게 도와주고 싶어. 당신이 더는 쓸쓸해하지 않도록.”

예컨대 아이폰의 음성 인식 서비스인 시리(Siri)와 사랑에 빠진 남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상상만으로는 쉽게 친해지기 힘들 것 같은 그 남자 ‘테오도르’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써주는 대필 작가로 제법 잘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 무슨 이유인지 아내와는 이혼 절차를 밟고 있고, 무의식과 일상에 불쑥 끼어드는 아내와의 기억은 테오도르를 괴롭힌다. 타인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로 돈벌이를 하고 있지만, 막상 자신이 타인과 마음을 주고받는 데에는 서툰 것이다. 주변에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테오도르는 대개 시간이 나면 혼자 컴퓨터 게임을 하며 공허하게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 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만난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해주는 사만다로 인해 조금씩 행복을 되찾기 시작한 테오도르는 점점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목소리만 있는 OS와의 사랑이라니,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그들은 정말 심각하다.

사랑의 이해와 실제 초급과정
사랑의 이해와 실제 초급과정

“결혼했을 때 어땠어?”

“누군가와 삶을 공유한다는 기분은 꽤 괜찮아.”

“삶을 어떻게 공유하는데?”

찰리 카우프만의 센세이셔널한 각본으로 연출한 두 편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1999)와 <어댑테이션>(2002)으로 단숨에 가장 감각적인 연출가로 주목 받은 스파이크 존즈에겐, 찰리 카우프만의 그늘을 지우는 시간 역시 필요했다. 단편영화와 비디오 다큐멘터리 작업, 또 오랜 시간 매달린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의 영화화(모리스 샌닥의 원작동화를 각색한 이 작품에선 데이브 에거스가 스파이크 존즈와 공동으로 각본에 참여했다.)를 지나온 스파이크 존즈는 홀로 <그녀>의 각본과 연출을 근사하게 완성해냈다. 소피아 코폴라와의 이혼까지 거슬러올라가지 않더라도, 혼자 완성한 <그녀>의 이야기, 정확하게 테오도르의 모습에 스파이크 존즈 자신이 가장 많이 투영됐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이제야 드러난 스파이크 존즈의 본색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도 어렴풋이 눈치 챘겠지만) 그에게 곧잘 덮어씌워지는 번뜩이는 재치, 놀라운 상상력이 아니라 고전적인 방식의 연가다. <그녀>는 스파이크 존즈가 테오도르를 둘러싼 관계들을 통해 ‘대필한’ 사랑 이야기다. 스파이크 존즈의 사랑은 ‘공공연히 허락된 미친 짓’인 동시에 삶을 공유하고 학습하는 것. 그리고 OS와 사랑에 빠진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곁에 있어서”가 아닌 “곁에 있는 것 같아 좋아”라던 테오도르의 대답이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실제(實際) 하는 것이다.

사랑의 이해와 실제 초급과정
사랑의 이해와 실제 초급과정

“난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 진정한 관계를 맺을 자격이 없어서 내가 이런 걸까?”

“그럼 이건 진정한 관계가 아냐?”

테오도르의 이메일을 자동으로 체크해 일정을 관리해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OS 사만다와의 관계는, 서로를 질투하고 물리적으로 욕망하기에 이른다. 한편 테오도르 주위의 실제 관계에서 이혼한 부인과의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또 주변 친구들에게서 테오도르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는지가 하나 둘 밝혀진다. 테오도르가 이런 과정을 겪는 동안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SNS의 메시지들이 프로그래밍된 것이라면 어떨까? 사용자의 대화 패턴을 분석해 자동입력 되어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그 메시지가 사람이 작성한 것인지, 컴퓨터가 작성한 것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그녀>는 결국 가장 보편적인 사랑의 힘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그 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고, 복잡한 전선 없이도 가능할 거라고 스파이크 존즈는 믿고 있다. 아름다운 화면과 배우들의 조화로운 연기(사만다 역을 맡은 스칼렛 요한슨은 목소리 연기만으로 로마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섬세한 감정표현과 대사들로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시나리오만큼이나 인상적으로 쓰인 건 음악이다.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가 담당한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감정을 이끄는 주요한 축이다. 영화 속에서 두 배우가 함께 부르기도 한 주제곡 ‘Moon Song’은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당신을 사랑하듯이 누굴 사랑해본 적이 없어.”

“나도… 우린 이제 사랑을 배운 거야.”

영화 '그녀' 예고편


글. 김수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