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콘티, 람페두사, 파브리치오

[컬처]by KT&G 상상마당 웹진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레오파드>에서 벌어지는 삼위일체.

비스콘티, 람페두사, 파브리치오

이 글에서 다루려는 사람은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연출자로서 20세기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의 대명사 루키노 비스콘티다. 하지만 그의 활동 내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여 정리하는 찬사의 글을 쓰려는 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비스콘티는, 범위를 아주 좁혀서 특정한 영화, 정확하게는 1963년 <레오파드>를 찍은 비스콘티다. 나는 그의 영화 중 네오 리얼리즘 계열로 분류되는 초기작 <흔들리는 대지>와, 후기작 <레오파드>, <베니스에서의 죽음>, <순수한 사람들>만 보았지만, 그 중에서 <레오파드>를 가장 사랑한다. 몇 번이고 다시 보아도 그 매혹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한 인간 안에 얼마나 많은 상충되는 지점들이 들끓을 수 있을까.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은 그 모순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대단히 특별한 개인이기 때문에 모순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착각하거나, 모순을 견뎌내지 못하고 어느 한쪽에 투항하면서 변명을 늘어놓는다. 비스콘티는 그렇지 않았다. 비스콘티는 밀라노의 유명한 귀족 집안 출신이며, 루키노 비스콘티 디 모르도네 백작으로 불리는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열혈 맑시스트였고, 20세기 초반 귀족들의 세계가 이미 무용해지고 있음을,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명확하게 인지한 채 자신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개척해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모순을 작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와 그의 소설 <표범>(이 작품은 얼마 전 드디어 한국에서도 번역되었다. (최명희 옮김, 동안 펴냄))의 주인공인 돈 파브리치오 공작으로부터 읽어냈고, 그것을 영화로 옮겼다.

비스콘티, 람페두사, 파브리치오

언젠가 인생에서 세 시간을 가장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으로 <레오파드> 관람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진심이었다. 1860년대, 이탈리아의 분열이 심각해지고 주세페 가리발디가 이탈리아 통일을 부르짖으며 전투를 지휘하던 무렵,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아직 출간되기도 이전 농민들이 서서히 구 봉건제의 모순과 해악을 뼛속깊이 느끼며 변화를 갈망할 무렵이다. 이때를 배경으로 하는 <레오파드>에서 파브리치오 공작은 ‘현세에 어울리지 않는 표범(살리나 가문의 상징. ’살쾡이‘라고도 번역된다)’의 마지막 후손이다. 그의 혈육들은 도저히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과거 귀족제의 창백한 그림자로 머무르거나, 약삭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스스로를 물 흐르듯 바꿔나가는 기회주의자의 태도를 취할 때, 파브리치오 공작은 (그리고 루키노 비스콘티는) 자신이 속한 세계가 사그라드는 순간을 감상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곧 닥쳐올 아름답지만은 않은 새로운 세계의 파고를 피할 수 없다면 현명하게 맞서기로 마음먹는다.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선,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야심만만한 조카 탄크레디가 파브리치오에게 말한다. "현재를 유지하기 위해선,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파브리치오는 상원의원 출마 권유에 이렇게 답한다. "그들(시실리아 인들)은 결코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죠. 그들의 허영은 그들의 불행보다 훨씬 큽니다." 노스탤지어나 데카당스와 자기연민으로 뒤범벅하는 대신, 자신의 ‘황혼’을 바라보는 절제된 탄식과 비감의 시선이 최상급으로 유지되는 영화가 <레오파드>다. 비스콘티는 정치적 퇴행을 천명하거나, 닫힌 문 뒤로 숨어버리면서 자신이 속한 원래 세계의 아름다움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하는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다.

비스콘티, 람페두사, 파브리치오

크라이테리온에서 출시된 <레오파드> 블루레이에는 영화학자 마이클 우드의 글이 실려있다. “람페두사는 보수주의자가 과거에 고착된 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기에는 너무나 생각이 많았고, 비스콘티는 모든 변화가 반드시 개선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믿기에는 너무나 이성적인 급진주의자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살리나 공작은 새벽의 여명 속에서 무릎 꿇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말해주십시오, 얼마나 오랫동안 이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까?” 이 순간 람페두사와 살리나와 비스콘티의 삼위일체는 완성된다. 인간에 대한 혐오, 라고 결론 내릴 수 없는 이 장면은, 과거에 갇힌 채 현재와 미래를 보지 못하는 자신의 계층에 대한 혐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속한 뿌리 자체를 거부할 수 없는, 뼛속까지 귀족인 스스로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빚어낼 수 있는 숨막히는 불화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한 장면으로 영원히 기억된다. “우리는 표범이었고 사자였소. 이제 자칼과 하이에나가 우리를 대신하려 하고 있소.”


픽션을 탄생시키는 예술가는 언제나 질문할 것이다. 어떻게 한 인간을 대표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표면적으로는 가족사를 다루는 듯 보여도 종국엔 그것이 더 거대한 사회를 비춰내는 제유법을 어떻게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인가? 루키노 비스콘티는 <레오파드>를 통해 그것을 해냈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실제 로케이션 촬영(거의 대부분 시실리의 귀족 저택에서 촬영했다)을 고집하고, 1860년대 유행했던 인테리어를 재현하고, 프레스코화를 다시 그리고, 정원에는 신중하게 고른 색깔의 생화들을 빼곡하게 심고,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소품마저도 진품으로 채워 넣었다는 악명 높은(!) 실화들(심지어 <레오파드>의 여주인공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인터뷰에서 ‘내 지갑 속에 들어있던 것들마저 모조리 진품이었다’고 회상했다)을 그저 가십으로 넘겨버릴 수 없다. ‘진짜 디테일’에 대한 타협 없는 집착을 통해, 그는 1860년대 격변기 한복판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이 엄연히 코앞에 존재하는데도 사교계에 데뷔하는 미인에게 열광하는 귀족들의 땀내 어린 밤샘 무도회장을 40분 넘게 지켜보면서, 이 풍경이 어떻게 역사의 정확한 일부가 될 수 있는지를 입증해 보였다. 역사는 그런 디테일 속에서 이야기되며, 가상의 인물은 그 어떤 실존 인물보다 훨씬 선명하게 격변의 고뇌를 느끼게 한다. 


<레오파드>를 찍을 당시의 비스콘티는 이후의 작품 활동을 아예 결정지어버린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레오파드>를 보고 또 볼 때마다, 나는 이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경애를 멈출 수 없다.


글 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2015.11.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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