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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취재파일

"한국에 줄 핵무기는 없다"

bySBS

"한국에 줄 핵무기는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전술 핵무기 한반도 재배치에 관한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정부 정책 담당자와 의회 인사들 그리고 싱크 탱크 연구자들은 마치 사전에 입이라도 맞춘 듯 한결같이 미국이 전술 핵무기를 한반도 남쪽에 재배치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언했다.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한 것처럼 중국 견제 차원에서라도 한국 내에서 일고 있는 전술 핵무기 재배치 가능성 논의에 대해 미국 측 인사들이 전략적 모호함을 보이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깨졌다.

 

미군 전술 핵무기 한반도 재배치 가능성 제로의 이유는 더 놀라웠다. 현재 한반도에 재배치할 가용 가능한 전술 핵무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구소련과의 핵무기 감축 협상을 통해 전술 핵무기 상당량을 폐기하였고 그 이후로는 군사적 효용성이 떨어지는 전술 핵무기의 개발과 생산도 중단한 상태라서 한반도에 배치할 만한 전술 핵무기가 없다는 것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2009년에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야심 찬 공약을 내세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한반도에 배치할 만한 전술 핵무기가 없다는 미국 측 언급은 단순한 수사만은 아니었다.

 

유럽에 배치하고 있는 전술 핵무기를 한반도로 이동 배치할 수는 없는 것이고 미국 본토에 일부 보유 중인 전술 핵무기가 있긴 하지만 낡고 구식이어서 미국으로서는 최일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에 즉각 실전 배치할 형편이 안 된다는 뜻이다. 전술 핵무기 재배치가 단순히 미국 내 벙커에서 한국 내 벙커로 이동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한 비핵화 원칙 준수 같은 거창하고 아름다운 명분을 전술 핵무기 한반도 재배치 반대의 이유로 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원칙은 미국인들의 안중에는 없어 보였다.

 

미국이 괌과 미국 본토의 전략 자산을 통해 한국과 한국민들에게 충분한 핵우산을 제공하는 있는 상황에서 굳이 전술 핵무기를 한반도 남쪽에 둘 군사적 이유는 없다는 것,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하면 한국민들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위해 미국이 그럴 수고를 할 이유는 없다는 미국 측 논리는 확고해 보였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 줄 핵무기는 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반도에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올해 말까지 NPR (NUCLEAR POSTURE REVIEW) 이라고 불리는 핵전력 대응 태세 점검을 진행 중이다. 이 작업의 핵심은 현재 러시아가 공세적으로 추진 중인 전술 핵 배치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푸틴의 러시아는 냉전 이후 약화된 러시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등에서 군사적 행동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 가운데는 전술 핵의 공세적 배치도 포함되어 있는데 미국은 이런 러시아의 조치가 미-러 간의 전략적 균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검토 중이다. 검토 결과 러시아의 공세적인 전술 핵무기 운용이 미국의 이익을 위협하고 세계적 차원의 군사적 균형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면 미국도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전술 핵무기의 재개발과 배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이고 한반도의 전술 핵무기 재배치도 그 조치의 연장선상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위협이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최우선 관심사인 것은 틀림없지만 전세계를 상대로 전략을 구상하고 집행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는 동북아의 일부일 뿐이다. 군사 전략 운용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핵무기의 개발과 배치를 한반도 상황만을 반영해서 미국이 결정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과 전략적 판단에 따라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였고 그들의 판단에 따라 전술 핵무기를 1992년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한반도의 전술 핵 재배치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국익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술 핵무기의 개발과 배치에 적극 나설 것이다. 물론 한국의 동의 없이 미국의 전술 핵이 일방적으로 들어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무기가 들어올 리도 없다.

 

이것과 관련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는 1992년 주한 미군 핵무기가 철수한 것은 그해 2월 초 평양에서 남북한이 합의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문>에 따른 조치라고 알고 있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필자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미국 싱크 탱크 관계자는 한반도 전술 핵 철수는 미-소 간 핵무기 감축 협상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아뿔사…. 그럼 그렇지. 남북 합의 때문에 미국이 핵무기를 철수했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윤춘호 기자 spring84@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