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무엇인가? - 백화산 둘레길 ②

[여행]by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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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다른 세계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의 여정이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여행도 여행 나름이지. '휘' 둘러보면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건 그냥 처음 떠났던 그 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거에 불과해. 그러면 남는 게 거의 없지. 저 바깥에는 하나의 온전한 세계가 펼쳐져 있어. 그걸 발견하려고 하느냐가 문제인 거야. '온 세상을 재미나게 돌아다녀 보자'는 식으로만 하면 안 된다는 거지. 주위를 둘러봐. 세상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 그 세계는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 티찌아노 테르짜니, <네 마음껏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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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해 얻어진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그것은 얻기 위해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맞닥뜨릴 때면 오래전 아이와 생애 처음으로 둘만의 여행을 떠나던 그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중학생이던 녀석을 꾀어 떠나는 여행이라 나름 기대에 부푼 나머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딴에는 '여행은 말야'로 시작되는 꼰대스러운 강의 아닌 강의를 하고 만 것이다. 고백하노니 결단코 잔소리가 아닌 선의로 시작한 대화였다. 아마도 내용은 위의 인용 글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싸한 것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이어폰을 꾹 눌러 끼더니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서너 시간 동안을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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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만 보지 말고, 가슴에도 담아왔으면...' 여행하는 이의 바람이다.

나중에 물었다. 왜 그러냐고? 아이가 그런다. 여행은 놀러 가는 것이고, 놀러 가는데 무슨 의미가 있으며, 찾긴 뭘 찾느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왜 자꾸 부담을 주느냐면서 '내가 이럴려고 따라나섰나?' 하는 표정으로 힐난 아닌 힐난을 하는 것이다.


이런... 내가 읽은 교과서가 틀렸나 보다. 일견, 아이의 말이 옳다. 그것이 '논다'는 표현으로 단순화시킬 수야 없겠지만, 여행은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함은 분명했던 것이다. 그렇게 즐기다가 무언가가 느껴져 오면 그때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면 될 터였다.


여행을 통해 얻어진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그것은 얻기 위해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저절로, 부지불식간에 얻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랬으니 아이와의 여행에서 무언가 의미를 부여해야 하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꼰대스러운' 강박이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의미를 찾자는 어설픈 먹물(?)이자 걱정 많은 아비의 조바심이 결국 일을 그르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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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염원이 돌로 쌓여 있다.

그때의 그 아이가 지금은 혼자서 하는 여행을 하겠다며, 먼 길을 떠났다. 아이의 표현대로 '놀러' 간 것이다.


그런데, 아이와 첫 여행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비는 다시 어설픈 일장 연설을 아이의 카톡 바구니에 남기고 말았다. 아비는 아직까지도 고리타분하였고, 투입 비용 대비 명확한 아웃풋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웃풋이라는 것이 그렇게 명확하게 계량화 내지 개념화되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바도 아니면서, 또 그러고 말았다.


보고 경험한 것을 눈에만 담지 말고, 가슴에도 나눠 담아 오라는 아비의 말을 아이가 얼마나 알아들었을지... 그래도 아비는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그 조바심이 아이에게 한 번쯤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 정도는 만들지 않을까 하는 바람은 있다. 그동안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여행자와 관광객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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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천을 배경삼아 억새가 아롱댄다.

햇살이 비끼어 흐르는 구수천은 억새를 배경 삼아 짙은 명암의 빛깔을 빚어낸다. 깊지 않으니 물살은 가파르고, 절벽의 그림자가 드리웠으니 또 검다.


구수천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주인공은 임천석대(林千石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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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석대의 모습

고려 말엽에 임천석(林千石)이라는 북과 거문고를 잘 켜는 악공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지금의 이곳으로 낙향해 절벽 위에 대(臺)를 만들고, 그곳에서 거문고를 켜며 망해버린 왕조에 대한 충절의 지조를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 그의 음악적 재능을 귀히 여긴 태종이 임천석을 부르니,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던 임천석은 거절을 반복하다 결국에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이 가득한 절명시를 남기고 이곳에서 투신하기에 이른다. 기록에는 '그가 떨어져 죽으니 수풀 사이로 새들이 슬피 울고 산하가 참담하였다.'고 적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임천석대(임천석;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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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흔들리는 억새가 무심히 빛살을 튕겨낸다.

임천석대 아래로 흐르는 물길은 그날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평온하다. 봄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억새만이 봄 햇살이 겨운 듯 기어이 몸을 비틀어 빛살을 무심히 튕겨낸다.


이곳 임천석대가 있는 구수천 5탄에서 멀리 않은 곳에 몽골항쟁의 역사가 스며있는 저승골이며, 저승폭포, 방성재 등의 장소가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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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삐 걸음 걷는 그들에게서 여행자를 생각한다.

임천석대 앞 휴식 공간에서 땀을 식히던 사람들이 다시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문득 그들을 보면서 여행자와 관광객의 차이에 대해 아느냐고 묻던 걸음이 날렵했던 친구를 떠올린다. 여행자이면 어떻고 관광객이면 또 어떨까 싶기도 한데, 굳이 그 차이를 나누어 알아야 할까 하면서도 두 단어의 차이가 품고 있는 속내는 그렇게 가볍지 않기에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이다. 더불어 나는 여행자인가, 아니면 관광객인지를 자문해본다.


<중국 기행>이라는 책을 쓴 폴 서로우는 '관광객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여행자는 앞으로 어디를 갈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인이며 소설가인 체스터튼은 '여행자는 보이는 것을 보는 반면, 관광객은 보러 온 것을 본다.'고 했다. 나름 냉철한 통찰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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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보이는 것을 보는 반면, 관광객은 보러 온 것을 본다.'

여행을 하다 보면 스스로 여행자이고자 하지만, 실상은 그것마저도 녹록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시간의 제약이 있으니 유유자적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렇게 가끔은 발걸음이 저 혼자 바쁘고, 정해진 루트를 벗어나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주어진 여건 안에서 보이는 대상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조금 더 보고, 느끼고, 발견하고자 딴에는 노력이라는 걸 해보지만, 어쩌지 못하는 까막눈인지라 그마저도 마냥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보러 온 것을 보고 계획된 루트를 따라 걷고는 있지만, 건네줄 이야기를 가득 담은 큰 바구니를 든 채로 길 위에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을 세상의 만물과 또 그곳에서 뿌리박고 살고 있는 사람들과 살갑게 만나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다만 더 크고 밝은 눈과 넓고 깊은 가슴은 필요해 보인다.

변화,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의 당면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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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돌다리. 산과 강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하다.

물길을 좇아 산굽이 하나를 돌자, 저 멀리 돌다리가 보인다. 이름하야 잇단 돌다리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다리는 산과 강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하다.


이제껏 구수천의 물길을 가로질러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징검다리는 하류로 내려갈수록 강폭이 넓어지는 까닭에, 그 넓고 깊음을 감당하지 못해 돌다리에게 그만 역할을 넘겨주고 말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돌다리를 건너는 여행자들은 징검다리를 건널 때의 조심스러움일랑은 기억조차 못 하는 양 건너는 폼이 씩씩하고 여유롭다. 실제 돌다리에 올라서니 멀리서 보던 것보다 다리의 폭이 꽤나 넓고 또 튼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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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흘러 언젠가는 금강을 만난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구수천은 아까 모습 그대로 변함이 없다. 그저 폭이 조금 더 넓어졌을 뿐, 산과 산 사이에 가로놓인 좁고 긴 계곡을 따라 그저 하염없이 흘러가는 모습이야 수천, 수만 년을 한결같이 지속해 온 일이니 다를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물은 흘러 언젠가는 금강을 만나고 큰물에 녹아드는 자신을 보며 또 다른 이름으로 태어나는 자신을 무심히 깨달을 것이다. 혹시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하지만 변화는 필연이니, 담담히 수용하는 수밖에... 그것이 물길이든 사람이든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모든 변화하는 존재들에게 주어진 운명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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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로 터벅터벅 사람들이 간다.

다리를 건너면 양옆으로 숲을 거느리고 이어지는 포석이 깔린 짧은 길이 이어진다. 길 위로 터벅터벅 그들이 간다. 길은 잠시 강을 놓치더니 기어이 다시 물길을 좇는다.


잘 정비된 둘레길을 걸을 때면 어디로 가야 할 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길이 안내하는 대로 발걸음만 옮겨 놓으면 될 일이다. 그것이 돌투성이의 길이든 아늑한 숲길이든 또 어쩌면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일지라도 그저 길이 이끄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더러는 갈림길에서 두리번대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친절한 안내는 늘 제 길을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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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겅 비탈을 조심스레 건너고 있다.

얼마 더 걷지 않아 만나는 너덜겅 비탈길.


산사태의 흔적들이 길 위를 침범하고 있는 곳이다. 너덜겅의 뜻이 '돌이 많이 흩어져 깔려 있는 비탈'이니, 길은 바위투성이를 지난다. 그런 이유로 울퉁불퉁 바위들을 건너는 발걸음은 조심스럽다. 이 너덜겅 비탈은 '반야사 호랑이'라고도 불리는데, 산 저편 반야사의 뜰에서 이 비탈을 바라보면 바위로 뒤덮인 산사태의 흔적들이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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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저편 반야사가 있다.

또 하나의 돌다리를 건너자, 멀리 반야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반야사는 신라시대 당대 최고의 고승들인 원효나 의상이 세웠다는 창건 설화가 여럿 있으나, 지금의 반야사는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것을 터를 옮겨 중건하고 있는 중이라 옛 모습을 찾을 길은 없다. 다만 이곳으로 옮긴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만이 고찰의 면모를 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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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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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전에서 바라본 구수천의 모습

그나마 반야사 옆 산등성이 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문수전(文殊殿)이 있어 대찰(大刹)로서의 지위를 짐작한다. 문수전을 오르는 것은 가파른 작은 산 하나를 오르는 것이라 나름 땀깨나 흘려야 한다. 하지만 문수전을 오르면 올라온 보람 정도는 굳이 찾지 않아도 저절로 깨닫게 된다.


먼저 반기는 놈은 백화산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이다. 그리고 바람이 지나온 저편, 백화산을 에둘러 굽이굽이 흘러온 구수천의 질긴 생명줄이 가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게다가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얻는다면 그건 아주 특별한 덤이 될 것이다.

아! 월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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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과 사람의 길은 서로를 놓치지 않으며 더불어 흐르고 있었다.

안동의 옥동서원을 출발한 길은 이곳 영동의 반야사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끝이 끝이 아니다. 반야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월류봉이 있기 때문이다. 반야사에서 내쳐 걸으면 월류봉에 닿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는 저물 듯 아슬아슬하고, 갈 길은 머니 어쩔 수 없이 차편을 이용해 월류봉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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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과 월류정

달도 머물다 간다는 월류봉(月留峰)은 407m의 야트막한 봉우리로, 월류봉이란 이름은 달이 능선을 따라 물 흐르듯 기우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월류봉 봉우리 꼭대기에 천하제일의 정자가 아닐까 싶은 월류정(月留亭)이 날아갈 듯 자리하고 있다.


월류봉은 오래된 수묵화에 봤음직 한 모습 그대로 여행자를 맞는다. 만약 산 위로 보름달이라도 뜬다면 산과 달과 정자는 가히 최고의 절경을 만드는 하모니를 연출하지 않을까 싶다. 깎아 세운 듯 가파른 층층의 절벽은 아스라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고, 일부러 해자를 파 암벽을 감싸기라도 한 양 물길은 월류봉을 에둘러 하염없이 돌아나가고, 날개를 펴고 앉은 한 마리 학처럼 사뿐히 내려앉은 월류정과 과하지도 모자람도 없는 은은한 달빛이라... 그저 먹먹한 마음으로 가슴 가득 밀려드는 흥분과 감동에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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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끼는 월류정을 보노라니, 그마저도 절경이다.

하지만 달 대신 해다. 언젠가 인연이 닿아 월류봉에 걸려 있는 달을 볼 수 있다면 하는 기대를 품고,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끼는 월류정을 보노라니, 그마저도 절경이다.


다만 불현듯 안타까운 마음이 이는 것은 저 암벽 위 산봉우리에다 월류정을 지은 이는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모두 제 것인 양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을 선비나 시인묵객은 아니었을 터. 그는 분명, 저 높은 산봉우리까지 무거운 목재며 자재를 지고 나르며, 위험천만인 작업 환경에서의 수고로움과 공포까지도 이겨낸 일반 백성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월류정은 아름다웠을까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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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정은 나무꾼이 숨겨둔 선녀의 날개옷마냥 고혹하고 날렵하다.

정자를 지은 그들에게 월류봉은 정자가 완성되는 순간, 금단의 땅이 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선택받은 일부만을 위한 땅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어딜 감히 그들의 땅에 일반 백성들이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사실은 월류정만이 아니다. 이 땅의 경치 좋은 계곡이나 물가에 자리 잡은 수많은 정자들이 그러했다. 정자를 세움으로써 그 땅은 소수인 그들만의 땅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아쉽게도 그랬다. 하지만 또 어쩌면 많은 문화유산의 속성이 그러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크고 화려할수록, 만듦새가 훌륭할수록 그것은 백성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냉혹한 현실이었음을...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햇살이 비끼는 월류정은 나무꾼이 숨겨둔 선녀의 날개옷마냥 고혹하고 날렵한 것이 금방이라도 승천의 꿈을 이루기라도 하려는 양 이른 봄 해거름 녘 하늘을 무심히 떠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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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이 번지는 월류정이 그저 아득하다.

둘레길 여정

  1. 옥동서원~백옥정~징검다리~독재골산장~출렁다리~저승골 입구~난가벽~임천석대~잇단 돌다리~반야사 옛터~너덜경~반야사

 

가는 길

  1. 교통편은 버스나 열차를 이용하여 황간에 도착하고, 황간에서 수봉리까지는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상주시에서는 모동행 버스를 이용한다.
  2.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에서 황간IC를 빠져나와 상주시 모동 방면으로 가다가 우매리에서 반야사로 진입하거나 수봉재를 넘어 수봉리에 도착하면 된다.

박대영 기자

2019.05.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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