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경제] '코로나의 역설' 집 나간 5만원 권과 숨바꼭질

[비즈]by SBS

<앵커>


권애리 기자의 친절한 경제 금요일 순서입니다. 권 기자, 현금 대신에 카드 사용이 계속 늘어왔다는 얘기는 이미 주지의 사실인데, 최근 들어서 희한하게 5만 원짜리 사용이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면서요? 이게 어떻게 된 얘기인가요?


<기자>


네. 요새 흥미로운 모습이 좀 보입니다.


원래 해마다 설과 추석을 앞두고는 5만 원짜리 발행이 크게 늘어나거든요, 세뱃돈이랑 부모님 용돈 비롯해서 명절 때 현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을 앞두고 종이돈 5만 원짜리가 많이 풀렸는데요, 이 5만 원들이 평범한 때와 달리 한국은행으로 돌아오지를 않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집 나간 5만 원들이 귀가를 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작년 이맘때랑 같이 한 번 보시면요. 설을 앞두고 작년에도 한국은행이 5만 원권을 잔뜩 풀었습니다.


1월에 5조 3천600억 원어치, 그렇게 찍어낸 5만 원짜리를 사람들이 2~3월에 많이 쓰고 은행에도 갖다 넣고 해서 두 달 연속 또 찍어낸 5만 원짜리보다 회수된 규모가 더 큽니다.


이게 평범한 설 이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올해를 보시면요, 1월에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또 찍어서 내보내고 2월에는 발행액을 작년만큼 줄였는데요, 2월에 반짝 작년처럼 돌아오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돌아오는 5만 원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한국은행은 시중의 종이돈 수요를 보면서 종이돈 내보내는 규모도 조절합니다.


그래서 설 지나면 발행액을 대폭 줄이는 건데요, 결국 올해 4월에는 작년 같은 달보다 5만 원짜리 발행을 66% 정도 더 늘려야 했습니다.


5만 원짜리들이 본격적으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올해 3~4월에 세상에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5만 원짜리 규모 비교하면 올해가 작년보다 무려 14배 가까이 많습니다.


<앵커>


가출한 5만 원짜리들 대체 어디에 가 있는 건가요?


<기자>


아무래도 장롱 속에, 이불 밑에, 혹은 누군가의 금고 속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은행 같은 금융기관들로도 회수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거든요, 일단 첫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시장이나 마트 같은 데서 현금을 주고받을 일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별로 만나지를 않으니까 이른바 대면 접촉 거래가 줄어들고요, 그러니까 현금이 거래에서 쓰일 일이 줄어드는 거죠.


[정복용/한국은행 발권기획팀장 : 올해 같은 경우엔 설 전까지 평상시 같은 명절 자금이 발행이 됐었고요. 그런데 설 직후에 코로나 확산세가 나타나면서 내수 경제가 많이 위축되다 보니까 상거래 활동도 위축되면서 화폐 환수량이 줄어드는 바람에 화폐 발행 잔액이 늘어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마트 안 가고, 시장 안 가고 해도 온라인 거래만 한다고 해도, 그래도 은행에 갖다가 돈을 맡기는 게 보통 일인데 그러면 이게 은행으로 돌아와야 정상 아닌가요?


<기자>


그렇죠. 사실 당장 거래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5만 원권을 바라보면 은행 같은 데는 종이돈이 와야 되거든요, 그런데 오지 않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코로나의 역설'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현금을 쓸 일은 별로 없는데 현금 수요는 급증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조용히 갖고 있고 싶어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급격하게 경제나 여러 상황에 대한 불안이 아무래도 커지면서 5만 원짜리를 그냥 서랍에 넣어두지 은행까지 가져오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저금리이라는 것도 방증하고 있습니다.


'요새 뭔가 불안한데 그래도 이자를 받으려면 은행에 가야지, 금융기관에 가야지' 이런 분위기도 저금리이다 보니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현금 수요가 조용히 늘어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말하자면 실물 돈이라고 할 수 있는 현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보고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종이돈이 코로나 시대에 고생이 많습니다.


사람들끼리 직접 만나지 않으니까 제 역할을 할 기회는 적은데 또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이돈 표면에서는 나흘은 버틴다는 실험 결과도 나오면서 '만지기 싫다. 거래에도 쓰기 싫다' 기피하는 분위기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종의 안전자산으로서 장롱 속에 숨는 상황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새삼 들여다볼 일이 없었을 현금 종이돈 화폐의 다양한 면모, 다양한 얼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권애리 기자(ailee17@sbs.co.kr)


▶ '친절한 애리씨' 권애리 기자의 '친절한 경제'

▶ '스트롱 윤' 강경윤 기자의 '차에타봐X비밀연예'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2020.06.10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