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끝과 북녘의 끝이 이어지다

[여행]by 세계일보

분단의 아픔 간직한 강원 고성 / 北 향해 뻗어 있는 7번국도… 저 길 따라 고작 30분만 달리면 금강산 /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길,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눈 앞서 ‘아른’


“서울에 가려면, 진부령을 넘어야 해서 아침 일찍 출발했어. 그래야 저녁에라도 도착하지.” 1960년대엔 강원 고성에서 서울에 가려면 진부령을 넘는 방법밖에 없었다. 한계령, 미시령은 군사도로였다. 그나마 있는 진부령도 도로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열악했다. 차로는 달랑 하나였다. 서울 쪽에서 진부령을 넘어오는 차가 출발하면 고개를 넘을 때까지 마냥 반대편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차로가 하나인 단일로이기에 막상 출발하더라도 앞차가 느리게 가면 시간은 한없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남녘의 끝과 북녘의 끝이 이어지다

바닷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고성 해안도로.

세월이 흘러 진부령 고갯길은 포장되고, 넓어졌다. 한계령과 미시령도 잘 정비돼 언제든 고개를 넘을 수 있게 됐다. 최근엔 이 고갯길들도 옛길이 돼버렸다. 산을 넘어가는 길 대신 산을 뚫어 터널을 조성했다.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가 놓여 서울까지 가는 데 하루가 걸리던 곳이 이젠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동북쪽 끝에 있는 지역이지만, 남쪽으로 어디든 시원하게 뚫린 길을 따라 달려갈 수 있다. 잘 닦인 길은 남쪽뿐 아니라 북쪽으로도 놓여 있다. 하지만 북쪽으로 닦인 길은 철조망에 가로막혀 갈 수가 없다.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 선 장용수(67)씨의 눈빛이 흔들린다. 해안을 따라 북으로 향하는 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간혹 군 차량만이 길을 이용할 뿐이다. 바로 저 길을 따라 30분만 달리면 금강산이다. 하지만 고성에서 9대째 살고 있는 장씨에게 이 도로는 험한 산길보다도 더 가기 힘든 길이다. 고성군 관광해설사를 하기에 누구보다도 자주 통일전망대를 오지만, 매번 한발 더 앞으로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가슴 한구석에 안고 돌아온다. 장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고향이 바로 북한의 고성인데, 가본 적이 없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나라도 고향 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한과 북한의 경계

끝과 끝이 만난다. 남쪽의 최북단, 북쪽의 최남단이 접하는 곳이다. 인간이 세운 차디찬 쇳조각들로 경계가 나뉜다. 이 경계는 산, 바다, 강, 들판엔 의미 없는 존재지만 우리에겐 이 경계를 기준으로 남과 북이 나뉜다. 망원경조차 필요 없다. 통일전망대 바로 앞에 펼쳐진 모래사장을 따라 시야를 북으로 옮기면, 모래가 쌓여 뭍과 연결된 작은 섬이 보인다. 그 뒤로 다시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우거진 숲 너머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이 서있다. 산봉우리의 능선은 바다로 이어진다. 바다로 시야를 돌리면 5개의 섬이 줄 맞춰 떠있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남녘의 끝과 북녘의 끝이 이어지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해금강. 바다를 향해 뻗어 나온 말무리반도를 비롯해 현종암, 부처바위, 사공바위 등을 해금강이라 한다.

경기 파주, 강원 철원, 화천 등 다른 접경지역 전망대에서도 북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에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이 강하게 다가온다. 반면, 고성 통일전망대에서는 남북 대치 상황뿐 아니라, 금강산 자락과 해금강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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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통일전망대에서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마지막 봉우리 구선봉을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산봉우리 모양새가 낙타 등처럼 생겼다하여 ‘낙타봉’으로 부른다.

북측 모래사장 너머에 서있는 봉우리가 바로 금강산 일만이천 봉의 마지막 봉우리 구선봉이다. 북한에서는 산봉우리 모양새가 낙타 등처럼 생겼다하여 ‘낙타봉’으로 부른다. 구선봉 옆으로 바다의 금강산인 해금강이 펼쳐진다. 바다를 향해 뻗어 나온 말무리반도를 비롯해 현종암, 부처바위, 사공바위 등 섬들을 합쳐 해금강이라 칭한다. 남한 곳곳에 있는 해금강의 원조가 바로 이곳이다. 모래사장 중간에 있는 송도는 작은 섬에 불과하지만 이 섬 또한 주인이 나뉘어 있다. 섬 중간을 기준으로 북과 남이 갈라진다.


통일전망대에서 왼편으로는 남과 북의 초소들이 서있다. 그중 남한과 가장 가까운 북한 산봉우리 위에 초소가 보인다. 351고지로 불리는 곳으로 남북한 양편으로 시야 확보가 용이해 6·25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폭격으로 산의 높이가 366m에서 351m로 낮아졌다고 한다.


모래사장 왼편으로는 7번국도와 철길이 놓여 있다. 7번국도의 다른 명칭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아시안하이웨이다. 하지만 철조망에 막혀 현재 북쪽으로는 7번 국도를 타고 더 올라갈 수 없다. 철길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이 길을 따라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마음껏 달릴 날이 올 것이다.

남녘의 끝과 북녘의 끝이 이어지다

DMZ박물관에 설치된 대북 심리전 방송 장비들.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 신청서를 접수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들어온 통일전망대다. 이곳에만 있는 DMZ박물관이 가까우니 들렀다 가는 것도 좋다. DMZ박물관은 분단국가인 우리 현실과 통일의 염원이 담긴 곳이다. 끊긴 철도가 유리바닥에 반사돼 연결돼 있는 듯이 보이는 조형물과 방문객이 평화 메시지를 적은 엽서로 만든 ‘평화의 나무가 자라는 DMZ’ 등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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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응봉에서 본 화진포 풍경.

분단의 흔적은 화진포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석호 화진포는 그 풍경이 남북 가리지않고 모두에게 맘에 들었나보다. 남북 정상들이 모두 이곳에 별장을 뒀다. 이승만 별장을 비롯해 부통령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했다는 이기붕 별장,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김일성이 하계휴양지로 사용했다는 김일성 별장(화진포의 성)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 중 김일성 별장은 나치 정권을 거부하고 망명한 독일인 H 베버가 1938년 건축한 것이다. 당시 외국인 휴양촌의 예배당으로 사용되다가 삼팔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외국인 휴양촌의 귀빈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김일성의 처 김정숙은 김정일, 김경희 등 자녀를 데려와서 귀빈관에 머물렀다고 한다.

금강과 설악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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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신선대에서 바라본 동해 풍광.

또 다른 끝과 끝이 만나는 곳이 있다. 설악산과 금강산 경계가 나뉘는 곳이다. 바로 금강산 첫 봉우리인 신선봉에 오르면 그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 신선봉 자락에 자리 잡은 절집 화암사에서부터 시작이다. 이름부터 금강산화암사로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화암사 주차 후 고개만 돌리면 범상치 않은 바위가 눈에 띈다. 계란 모양의 바위에 왕관 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 형태로 수바위로 불린다. 바위 위에는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다고 한다. 이 웅덩이에는 항상 물이 고여 있어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 수바위 이름의 ‘수’자를 ‘물 수’로 보는 이도 있지만, 그 생김새 때문에 ‘빼어날 수’로 보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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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신선봉의 수바위.

수바위 방향으로 산길을 타 5분 정도면 오르면 수바위 앞에 이른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크기가 너무 커 수바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이곳에서부터 설악산의 모습이 들어온다.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산길을 따라 오른다. 오르는 길에 간혹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고성과 속초, 동해 풍광이 펼쳐져 기대를 품게 한다. 40분 정도만 오르면 신선대(성인대)에 이른다. 정상 신선봉과는 다르다. 신선봉 정상보단 신선대가 풍광으로는 더 빼어나다. 평평한 신선대에 올라 설악산 쪽으로 갈수록 선명히 산의 모습이 다가온다. 특히 걸음이 늦어, 금강산에 가려다 주저앉았다는 울산바위가 바로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얘기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구나란 것을 알게 된다.

남녘의 끝과 북녘의 끝이 이어지다

강원 고성 신선대(성인대)에 오르면 걸음이 늦어, 금강산에 가려다 주저앉았다는 울산바위가 바로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얘기는 나름 과학적 근거도 있다. 금강산이 형성된 시기가 1억5000만년 전인데, 설악산 암석은 1억년 전후에 생성된 화강암이라고 한다. 그중 울산바위는 설악산 화강암 중 가장 늦은 7000만년 전 생성됐다고 하니, 태어난 순서로 보면 금강산이 먼저고, 설악산은 아들뻘, 울산바위는 손자뻘 정도 될 듯싶다. 울산바위와 반대편 동해 풍광을 품은 신선대에서 땀을 식힌 후 신선봉으로 향하거나, 다시 화암사로 내려오면 된다. 내려오는 길은 능선길을 탄다. 화암사에서 출발해 신선대를 들린 뒤 돌아오는데 2시간 정도면 된다.


울산바위를 본 뒤 화암사로 내려와 수바위를 다시 보면 오르기 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금강산에 가려 했던 울산바위를 금강산 문지기 역할을 한 수바위가 마치 막아서는 듯한 분위기다. 울산바위를 비롯해 어떤 것도 금강산에 쉽게 들이지 않겠다는 듯, 문지기가 이 정도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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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 송지호해수욕장 초입에 있는 서낭바위는 가냘픈 목이 큰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고성 바닷길 역시 예사롭지 않다. 7번 국도가 뚫리며 해안길을 찾는 이가 부쩍 줄었지만, 그래도 바닷길의 매력 중 하나는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는 드라이브다. 드라이브를 즐기며 고성의 독특한 바다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을 들르면 된다. 일출로 유명한 공현진 해변의 옵바위를 비롯해 능파대와 서낭바위 대표적이다. 능파대는 곰보바위로도 불린다. 파도가 암석에 부딪히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방파제가 있어 파도가 강하게 치지 않는다. 바위들이 다들 이리저리 뒤틀린 모양을 하고 있고, 곳곳에 움푹 구멍이 패어 있는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외계 행성에 온 듯한 풍광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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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로 유명한 고성 공현진 해변의 옵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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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파대 바위들은 움푹 구멍이 패어 있는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서낭바위는 송지호해수욕장 초입에 있는데, 가냘픈 목이 큰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독특한 형태다. 이 서낭바위는 성황당과 관련이 있다. 마을 성황당이 이 근처에 있는데, 독특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보니 서낭바위로 불리게 됐다. 보는 이에 따라 부채바위, 하트바위, 거인바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마을의 안녕만 지켜준다면 무엇으로 불리든 상관이 없을 것이다.


고성(강원)=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2018.07.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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