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와이파이·MRI… 기술의 본류는 천문학이었다

[테크]by 세계일보

달 탐사 50년… ‘우주 향한 꿈’ 세상을 어떻게 바꿨나

전파망원경 기술 의료 CT촬영 활용

지구와 닮은 금성 연구해 기후 이해

외계 행성 탐색 ‘빅데이터’ 기술 견인

블랙홀 전파 분석 ‘와이파이’ 만들어

“기초과학 연구 초기 성과 안 보여도

응용력 무궁무진… 멀리 보고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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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정부의 대한(對韓)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키우자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기초과학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기초과학은 멀리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기초과학 육성을 위해서는 장기간 대규모 연구개발(R&D) 비용이 투입될 뿐 아니라 그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199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아메드 즈웨일은 “기초 연구는 긴 시간이 지나야 성과가 증명된다”며 “중요한 점은 그 과정에서 얻은 이성과 진리가 모든 사회 문화를 보다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천문학은 고대로부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바탕이 돼서 수학과 과학, 의학 등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올해는 인류 달 탐사 50주년이 되는 해이자 블랙홀의 그림자를 최초로 관측해낸 해이다. 이를 계기로 천문학이 인류의 인식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전파망원경 기술에서 탄생한 MRI

의료 분야는 천문학의 원천 기술이 적용된 대표 분야다. 멀리 떨어진 여러 전파망원경이 신호를 받은 뒤 전자적으로 결합해 초대형 가상 망원경을 구현하는 것을 간섭측정이라 하는데, 이 방식으로 영상을 얻는 것을 ‘합성개구법(aperture synthesis)’이라고 한다. 이를 활용한 자기공명영상(MRI) 기술을 통해 진료 시간을 줄이면서도 고화질의 의료 영상을 얻을 수 있게 됐다.


MRI는 자석과 전파를 이용해 생체 조직 내의 물 분자와 양성자가 전자기장의 영향으로 편광되고 양자역학적으로 들뜨게 하는 것을 활용했다. 전자파를 끄면 양성자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전파를 방출하고, 전자파 수신기에서 이를 검출해 고화질의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다. 이 기술은 MRI뿐 아니라 컴퓨터 단층촬영(CT),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등 다양한 의료영상 시스템에 활용된다.


우주의 다양한 천체를 촬영할 때 쓰이는 천문영상 시스템은 카메라는 물론 고성능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요구한다. 천문학은 어두운 천체를 관측하기 때문에 고감도 카메라와 이를 컴퓨터와 연결하기 위한 기술, 노이즈(잡음이나 방해신호)를 줄이기 위한 자료 처리 기술 등을 발전시켜왔다.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은 국내 중소기업의 요청으로 이 기술을 안과의 검안기 개선에 활용했다. 이를 통해 검안기 하드웨어는 물론 인터페이스를 개선하는 한편 동공 자동 추적 및 자동 초점 기술을 적용한 바 있다.

금성 연구하다가 발달한 기후 연구

태양계 행성 중 금성은 크기와 구성 성분이 지구와 가장 비슷하다. 이 때문에 금성을 연구한 천문학자들은 지구의 기후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금성의 대기는 지구보다 90배 이상 두꺼운데, 이는 금성 표면 온도가 상승해 대기 중 수증기 농도가 짙어져 온실효과가 폭주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기후학자 제임스 핸슨은 금성 대기에서 빛 에너지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계산해 이를 지구에 적용했다. 그 결과 미량의 기체나 에어로졸(대기 중 고체나 액체, 혹은 혼합 상태인 입자)이 기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반영해 대기 모형을 제작했다.


국내에서도 지구 대기에서 산란되거나 방출된 빛을 나눠 분석해(분광) 대기 중 온실기체와 에어로졸의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기체와 에어로졸 중 작은 입자인 미세먼지는 대기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물론 여러 나라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연구하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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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분야의 각종 기술이 집약된 인공위성. 로스앤젤레스 공군기지 제공

천문데이터 수집·분석 위해 발달한 빅데이터

빅데이터는 최근 10여년에 걸쳐 우리에게 익숙해진 개념이지만 천문학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관련 연구가 진행됐다. 초대형 망원경을 운영하고 우주를 임무하는 과정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데이터가 수집되고, 이를 분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공용 네트워크에 광범위하게 분산된 많은 컴퓨터를 상호 연결하는 그리드 컴퓨팅은 수집된 방대한 자원을 공유하고 사용하기에 효율적인 도구이다. 다수의 컴퓨터를 전 세계에 분산시키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복잡한 과학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전파천문학자들은 초창기 그리드 컴퓨팅을 통해 외계생명체를 탐색하기도 했다.


천문연이 운영 중인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과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우주물체 전자광학 감시시스템(OWL), 국제 GNSS(전지구위성항법시스템) 관측망 등에서는 매년 수십 페타바이트(PB·기가바이트의 100만배)의 데이터가 생성된다. 이러한 빅데이터를 관리하기 위해 100Gbps의 초고속 네트워크 환경에서 고성능 저장(스토리지) 시스템이 가동되고, 처리·분석하기 위해 개방형 소프트웨어 기술 및 딥러닝 기술이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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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에 있는 유럽남방천문대(ESO) 본부의 데이터센터. ESO 제공

블랙홀 전파 분석 기법이 Wi-Fi로

전파천문학은 통신 분야의 발전도 이끌었다. 오늘날 유명한 글로벌 통신사의 상당수가 전파천문학자에 의해 설립됐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호주연방과학기술원(CSIRO)은 블랙홀에서 방출되는 전파를 분석하는 기술을 활용해 무선 전송 기술을 상용화했다. 벽이나 구조물 탓에 무선 신호가 교란돼도 전송정보는 유지되도록 하는 Wi-Fi(와이파이) 집적회로를 만들어낸 덕분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 휴대전화 등 각종 기기에 보급되면서 현대인의 필수 기술이 됐다.


이렇듯 천문우주 분야의 과학기술은 인류에게 유용한 기술을 제공하며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 영향이 바로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천문연 관계자는 “통상 과학기술을 붙여 이야기하는데 기술은 목적이 뚜렷하고 산업과 연관성이 크지만 과학은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해 장기적으로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것을 지향한다”며 “하지만 서로 보완작용을 하며 발전을 이끄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과거의 한국은 남을 뒤쫓아가기 위한 R&D가 주된 것이었기 때문에 성과를 내기 수월했던 측면이 있지만, 어느 순간 새로운 것을 개척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며 “새로운 형태의 발전을 위해 국가 R&D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2019.09.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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