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손바닥 여행 어디로 떠날까, 예술의 광주냐 커피향의 대구냐

[여행]by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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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무등산 정기와 예술혼이 살아있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성지다.

낙엽을 끝으로 화엽이 소멸해버린 겨울, 앙상한 가지에 하얀 눈이라도 쌓인다면 보기엔 썩 아름답지만 그 진한 꽃향기가 그립다. 연말 여행은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여행지 선정에 더욱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성탄절 휴일에 며칠 남은 연차까지 끌어모아 챙기는 연말 여행. 여행의 향기는 이미 사무실 책상까지 스며들어 돼지 해에 지친 궁둥이를 띄운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 향기의 발원을 찾아 KTX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슝~하고 떠나면 좋다. 광주엔 그윽한 예술의 향기가, 대구에는 커피의 고소한 향기가 배어있을테니. 그게 좋겠다. 이쯤엔.

예술의 향기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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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금세 닿는다. 용산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불과 2시간 남짓이다. 물론 푹 잘수는 없다, 자칫 잘못하면 목포역에서 갈매기 소릴 들을 수도 있다.


2년마다 비엔날레를 여는 예향(藝鄕) 광주는 각종 예술의 보고다. 수많은 문화예술인을 배출한 곳이다. 의재 허백련(한국화), 오지호(서양화), 임방울(판소리), 박용철(시인), 이이남(미디어 아티스트) 등 내로라는 예술가들이 광주와 인연을 맺었다.


팍팍한 연말에 예술적 감성을 섭취하고자 떠나는 여행이다. 도심 곳곳에 ‘어반 폴리(Urban Folly)’라 부르는 조형작품이 있다. 국내외 작가들이 수년간에 걸쳐 어번폴리 삼십여 개를 제작했다. 거리가 온통 미술관인 셈이다.


어반 폴리란 ‘도시의 멍청이 짓’이란 뜻에서 나온 말로 도시내 문화 거점공간이다. 프랑스어 폴리(Folie)는 ‘미친’이란 뜻이지만 ‘사이코패스’ 같은 의미가 아니라 뭔가에 굉장히 몰입하다 내지는 실없다(Crazy)는 쪽으로 쓰였다. 건축물이란 원래 건립목적이 있어야 하지만 폴리는 실용적인 목적 없이 예술품으로서 존재가치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파리의 라 빌레트 공원(베르나르 추미)의 붉은 색 건축물이다.


지난 2011년 처음 선보인 광주폴리는 버스정류장, 광주역,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도심을 돌아다니면 쉴 새 없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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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폴리투어. 광주사랑방.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인근 길가에는 버스정류장처럼 생긴 ‘광주사랑방(프란시스코 산인)’이 있다. 전망이 좋은 ‘잠망경과 정자(요시하루 츠카모토)’는 대성학원 앞에 있다. 도심을 걷거나 짧은 구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열린 공간, 기억의 현재화, 열린 장벽, 99칸, 유동성 조절, 광주 사람들, 서원문 제등, 소통의 오두막, 콩집, 뷰폴리+설치작품 자율건축 등 어느 하나 비슷하지 않고 다양한 매력을 담은 광주 폴리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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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림동 양림교회

광주 문화예술의 요람은 양림동이다. 볕이 잘 든다고해서 양림동(陽林洞), 천변 버들숲이 있어 양림동(楊林洞)이다. 선교사들로부터 일찌감치 신문물을 받아들인 이곳은 광주지역 문화예술인의 고향이 됐다. 다형 김현승 시인, 음악가 정추, 시인 이수복,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영화감독 임권택, 극작가 조소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모두 양림동 볕을 받으며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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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림동 이장우 가옥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 등 너른 한옥 고택에 나지막한 집들이 뚝뚝 박힌 이곳은 여느 도시의 원도심처럼 세인의 기억 속에서 멀어지며 낡아갔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서양화 한희원 작가 등 예술인들이 다시 나서 예향의 텃밭을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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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양림동

양림동은 예술적 분위기가 오롯이 남았다. 세 곳의 양림교회 인근 골목은 차분하고도 정감이 넘친다. 파나플렉스 활자가 아니라 손으로 쓴 ‘점빵’의 간판 하나에도 예술적 감성이 묻어난다. 마을 공공창작소와 스튜디오 역시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기품이 서렸다. 언덕배기에는 호랑가시나무 창작소가 있다. 예전 선교사들이 살던 곳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고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도슨트 투어를 신청하면 이곳에 묻어나는 진한 예술의 향기에 젖어들 수 있다. 고택과 골목을 둘러보고 낡은 ‘펭귄마을’까지 둘러보면 양림동에서의 한때가 금세 지난다. 시간이 된다면 무등산 의재 허백련 미술관까지 방문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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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가시나무. 크리스마스 즈음에 더욱 어울리는 ‘장식’을 자연스레 내보이고 있다.

커피의 향기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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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커피의 향기가 그윽하다. 특히 겨울을 맞은 연말에는 더욱 커피향이 진하게 다가온다.

대구는 커피의 도시다. 커피하면 강릉이 생각날테고 멀리 시애틀을 떠올릴 법도 하지만 왜 하필 대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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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일찍이 커피문화가 발달했다. 커피체험단이 카페 편에서 커피를 맛보고 있다.

의외로 보수적이라 생각되는 대구에는 커피 문화가 첨예하게 발달했다. 전통적으로 ‘모임’이 많고 차를 마시던 습관이 커피 문화로 전이됐다. 여름에 날이 덥고 겨울이 추운 기후도 카페문화 발달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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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카페 편.

1936년 대구출신 서양화가 이인성이 문을 연 아루스(ARS)다방부터 50년대 화가 이중섭이 작품전을 연 백록다방, 향촌동 다방골목, 약전골목 미도다방 등 일찌감치 다방과 커피골목이 생겨나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팔공산, 앞산, 수성못, 교동, 동성로, 삼덕동, 북성로 등에 수많은 카페 골목이 있고 실로 다양한 추출법의 커피가 널리 유통되고 있다. 지난 1일 폐막한 제9회 대구커피&카페박람회가 그 증거다. 100여개 업체 250개 부스 규모로 많은 커피 업체와 관련 업계가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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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다양한 로컬 커피 브랜드다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레이지모닝의 아이스커피.

글로벌 카페 체인이 유독 힘을 못쓰는(?) 곳이 바로 대구다. 커피명가, 다빈치커피, 핸즈커피, 매스커피, 모캄보 등 자생 브랜드와 소규모 개인 자영업 카페들이 대구 시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일부 대구 카페 브랜드들은 수도권으로 진출해 맹위를 떨치고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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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관광뷰로는 지난 6~7일 대구커피체험 투어단을 모집했다. 푸드디렉터 안젤라 김이 인솔하며 대구 커피 문화와 대구 관광자원을 둘러봤다. 한 참가자가 커피를 시음하는 척 사진을 찍고 있다.

대구관광뷰로는 ‘제1 커피도시’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구축하기 위해 지난 6~7일 대구커피체험투어단을 모집하기도 했다. 김유경(안젤라 김) 푸드디렉터가 전국 각지에서 신청한 커피 마니아들과 함께 대구 시내에 소재한 카페&베이커리, 관광지 등을 돌며 대구 특유의 커피 문화를 탐방했다.


마침 겨울철 시그니처 메뉴인 딸기케이크를 출시한 커피명가를 비롯해 대구 커피 여행은 진하고 달콤하고 또 따뜻한 연말여행의 추억을 남기기에 좋다. 도심을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진 색다른 매력의 카페골목을 야금야금 찾아가기에도 좋다. 대구는 지하철이 3개노선에 거미줄같은 대중교통망을 자랑하는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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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로컬카페브랜드 커피명가의 시그니처 상품인 딸기케이크가 판매를 시작했다. 제철 딸기를 거창에서 들여와 봄까지만 제작해 판다.

동성로 커피명가의 딸기케이크 한 조각에 명가치노 한 잔이면 어떤 추위도 이겨낼 칼로리와 온기가 생겨난다. 또한 매운 맛 위주의 대구음식을 먹은 후라면 맛있는 빵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레이지모닝(동대구역앞)에서 ‘입가심’하면 된다. 말이 입가심이지 머릴 망치로 얻어맞은 듯 어질어질한 ‘달달이’ 크루아상과 마들렌이 새로 생겨난 위장의 여백을 포만감으로 채운다. 연신 하얀 김을 올리는 쌉사름한 커피 한 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한가로이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여행자 만이 누릴 수 있는 연말 한 때의 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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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성구 카페편 옥상의 계단 포토존.

웅장하고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대형 커피점 카페편(수성못)에는 하늘로 치솟은 계단 등 포토존이 있어 여행의 추억을 인증샷으로 남기기에도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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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커피를 선보이는 ‘모래에 빠진 커피콩:쿰’

핸드드립으로 추출한 커피를 다시 한번 뜨거운 모래에 끓이는 정통 터키식 커피를 파는 ‘모래에 빠진 커피콩:쿰(수성못)’은 또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보기에도 생소한 추출과 제조과정을 즐기고 쌉쌀하고 진한 커피 한잔을 즐기기에 가게의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너무도 따스하고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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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는 이름난 짬뽕집도 많다. 만약 인내심이 강하다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진흥반점에서 짬뽕을 맛보면 좋다. 볶음밥을 안시키면 후회할 지도 모른다.

‘카페 호핑’을 하며 커피를 마시고나면 ‘막 주유한 자동차’처럼 앞산공원 전망대나 달성공원, 동성로 일대 등을 둘러볼 힘이 생겨난다. 카페인이 주는 각성 효과와 그 자체의 뜨거운 온기는 어떤 겨울 추위도 이겨낼 수 있을만큼 강력하다. 다행히 대구에는 근대골목과 주전부리, 맛집들이 가득하다. 마음먹고 멀리가지 않아도 인근에 바로 들를 곳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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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앞산전망대. 일몰 때 오르면 더 좋지만 춥다. 다행히 전망대 아래에 커피명가가 있다.

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든 대깨아(대가리가 깨져도 아이스)든 상관없다. 사택, 카페류, 사운즈커피, 티클래스 등 이름난 대구의 카페만 골라 잠깐씩 다닌대도 대구에서의 밤은 쉽사리 잠들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멀리 시애틀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향기로운 커피 여행이란 이처럼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광주·대구=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demory@sportsseoul.com

2019.12.2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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