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겨울바람도 경주의 야경 앞에서는 잠시 관대해지는지 경주의 밤은 황홀할 만큼 눈부시다. 형산강을 따라 신라 천년의 빛이 일렁이고 발 닿는 도심 곳곳 신라인의 숨결이 가득하다. 지금, 낮보다 아름다운 천년고도 경주의 밤에 취할 시간. 경주역사유적지구 중 월성지구를 따라 걷다 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 멀리 반짝이는 다리가 월정교란 사실을 절로 알게 된다. 다 리에는 흥미로운 설화 하나가 전해지는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다. 원효대사가 옷을 입은 채로 다리에서 떨어지자 태종무 열왕의 명을 받은 신하가 그를 요석궁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가 문을 연 듯하다. 누가 두 손가락으로 살며시 연 듯한 하늘에는 무지개가 오래 머물렀고, 하얀 포말 부서지는 해안길에는 숲의 내음과 삶의 정취가 걷는 길마다 묻어났다. 대게 말고도 되게 좋았던 영덕! 대소산 망일봉 자락의 지세를 따라 한 행, 한 행 시를 완성하듯 들어선 가옥들은 전통의 아름다움을 애써 갖춤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유려하다. 이런 마을에서 나고 자라 목은 선생은 원나라까지 품격과 유희를 갖춘 문장을 뽐냈을까? 괴시리 전통마을은 고려시대 대학자로 이름을 떨친 목은 이색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선을 보고 온 날 엄마는 “사람은한 번 봐서 모르는 거야”라며 다시 등을 떼밀었다. 내가 느끼는 첫인상은꽤 정확해. 두 번 봐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확신에 찬 나였는데 두 번째 맛본 과메기가 뒤통수를 때리네. “내가 바로 포항 구룡포 과메기라는 말씀, 다른 과메기랑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 청어의 눈을 꿰어 만든다는 관목(貫目)에서 이름이 유래한 과메기. 관목의 ‘목’이 포항 지방의 방언으로 ‘메기’라고 발음되어 ‘관목’이 ‘관메기’로 변했는데 다시 ‘ㄴ ’이 탈락되어 ‘과메기’가 된 것이다. ” “저는 지금 이곳의 내년 겨울
외출할 때마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나날이다. 일기예보가 우중충해도 남도의 날은 왜인지 따뜻할 것만 같다. 산과 바다, 윤택한 들에서 키워낸 식재료와 인심 넉넉한 이웃, 계절을 수놓는 꽃과 삶을 밝히는 문학이 있는 전남 장흥을 향해. 사람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관계에 있다. 사람은 일평생 살아가며 관계를 맺는다. 마치 사슬처럼 끈끈한 결속력이 되어주고 때로는 끊고 싶은 압박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안부를 묻고, 위안을 받는 관계는 쉬이 잃어서 도 잊어서도 안 되는 법이다. 거대한 태풍이 한반도를 지난다는 소식을 가
제주 동쪽 바다 마을 삼달리에는 작은 오름 두 개가 있다. ‘삼달오름’이다. 이 오름은 화산의 폭발이나 융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어머니를 향한 건축주의 마음, 제주의 자연을 건축에 담고픈 건축가의 바람이 빚은 것이다. 덕분에 그 어떤 오름에서도 볼 수 없는 아늑함과 따스함이 이곳엔 있다. 地利 지리 제주의 동남쪽, 성산읍 서귀포에 있는 삼달오름은 한적한 바닷가 마을 어귀에 위치한다. 걸어서 5분도 채 안 걸리는 곳에 존재하는 바다가 삼달오름의 대지에선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건축가들은 이곳에서 길쭉한 모양에 땅, 삥 둘러
불꽃처럼 타오른 한 사람의 꿈이자 전설 같은 사랑, 용맹한 기상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무왕의 시대를 맞으러. 사람이 사람에게 줄 것은 오직 사랑뿐이라는 고결한 정신을 배우러, 익산으로. 더운 여름을 불평도 없이 산과 들은 푸른 기운을 뻗치고, 농부의 구슬땀 밴 논밭에는 알곡이 껍질을 터뜨릴 듯 부풀어오른다. 그 가운데 자연이 요동치고 사람의 생이 이뤄지는 모든 것을 오래 지켜본 ‘익산왕궁리5층석탑’이 서있다. 완만한 구릉에는 건물 하나 없이 석탑만이 남았는데 무슨 말을 전하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백제, 신라, 고구
천안 곳곳에 저수지. 물오리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천안 곳곳에 독립운동의 역사. 불꽃처럼 산화한 젊음이 빗방울 떨어지듯 후드득 쏟아진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천안 곳곳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만 20개에 달한다. 안정적인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저수지는 본래의 목적은 물론 일상에 여유를 전하는 풍경이 되어준다. 목천읍에 자리한 용연저수지는 1966년 준공되었다. 천안의 진산인 태조산과 흑성산이 감싸안은 자리에 너른 제방을 따라 산책을 나서기도 좋고, 드라이브 코스로도 큰 사랑을 받는다. 6월 말이면 저수지 주변으로
남쪽으로, 남쪽으로 해남의 숲, 바다를 향하여. 좋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충만한 평화와 설렘이 가슴 가득 들어찬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나무의 몫이라면 정수리에 떨어지는 태양빛, 빗 물 아낌없이 받아 제 안에 흐르게 하는 것. 그래서 바람이 이리저리 저를 흔들어도 단단히 뿌리 내린 덕에 담대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대흥사 가는 길에 장춘숲길로 불리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다. 제 몫을 이리도 잘해낼 수 있을 까 싶은 소와 편백과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에 발을 들인다. 윤기 나는 머릿결을 자랑하듯 편백나무가 초록 잎
완연한 봄을 지나 싱글싱글 싱그러운 초록이 물드는 이맘때는 장관이었던 갈대 대신 작고 소중한 생명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강진만생태공원에 가면 놀고 있는 짱뚱어를 잔뜩 볼 수 있어요!” 현지인이 해준 말인데도 기자는 일단 의심부터 한번 해보는 사람인지라 전남 강진까지 와서 살아 있는 짱뚱어를 못 만나게 될까봐 불안하다. 짱뚱어는 너무나 작고 소중한 생물이라 시장에서도 쉬이 구할 수 없다. 아무 데서나 자라주지 않고 양식도 되지 않는다. 동면을 하는 생선이 있다더니, 그것이 짱뚱어일 줄이야. 전남 장흥군의 탐
너와 나 사이 바다가 있다면 징검다리를 놓아야지. 고운 발 바닷물에 젖지 않도록, 겨울에도 시리지 않도록. 전남 신안, 병풍리. 크고 작은 6개 섬을 잇는 노두길을 따라 걸으면 자비와 평화를 바라는 12개의 작은 예배당도 만날 수 있다. 글 정상미 사진 이효태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바깥에서 얼굴 반 을 가리던 마스크를 벗게 되었다. 아직도 서로가 조심하는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켜켜이 닫힌 마음의 빗장 하나가 사라진 느낌이다. 한 발 내딛기가 불안했던 수많은 어제에는 경고장과도 다름없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그저 일어나는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