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너 어디로 가니?

[컬처]by 배순탁

음악의 시대가 있었다. 모든 음악이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져서, 어떻게든 그것에 가닿으려는 시대가 분명히 있었다. 매달 잡지를 사서 체크를 한 뒤 용돈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경주하고, 그렇게 구입한 CD를 하늘이 마르고 닳도록 되풀이해 들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를 어찌할까. 더 이상 음악은 우리 삶의 중심이 아니다. 글쎄. 중심은커녕 차라리 주변부에 위치해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적확하지 않을까. 지금은 무려 2016년. 끝내주게 재미있는 것들은 지천에 깔려있고, 음악은 사람들의 이목을 더 이상 끌지 못한다. 미친 듯이 하고 싶은 것들이 (심지어 동시다발적으로) 널려 있는 슈퍼 울트라 멀티태스킹의 세상이다.


음악, 어디로 가야하냐는 질문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는 없다. 이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음악의 가치는 갈수록 하락하고 있고, 뮤지션들이 거의 착취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현실 속에서 음악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을 넘어 부정에 가까워보인다. 부정은 가능성 없음이다. 가능성 없음은 미래가 없음을 뜻한다. 음악의 미래는, 과연, 부재하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엘피를 샀다. 해외에서는 보통 바이닐(Vinyl)이라고 부르는, CD보다 훨씬 큰 동그라미 형태의 매체다. 바이닐의 가장 큰 단점은 이것이 불편하다는 사실에 있다. 아날로그의 끝판왕답게 음악을 플레이하는데 있어 많은 수고와 노력을 요한다. 어디 이뿐인가. 바이닐을 플레이하는 기기인 턴테이블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 끼워 넣는 카트리지라는 물건이 수명을 다해 얼마 전에 교체를 해야 했다. 이게 달랑 하나에 10만원이 넘는다. 참고로, 봄이고 해서 지름신의 특명을 받아 이번에 2개를 질렀다. 나중에 또 사기 영 귀찮아서.


음악의 미래가 바이닐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도리어 나처럼 음악을 ‘깊게’ 듣는 행위는 앞으로 더욱 게토화될 것이고, 그 빈자리를 다른 것들이 싹 다 차지할 것이다. 이미 게임은 전세계 청춘들의 주요한 대중문화로 자리를 잡았고, 혼자서 음악 듣기보다는 차라리 영화를 보는 게 훨씬 폼 나는 세상 아닌가. 이런 와중에 매일 같이 플레이스테이션을 켜고 게임을 음악을 감상하듯 열심히 하는 내가 조금 자랑스럽기는 하다. 


그렇게 음악은 서서히 ‘백그라운드’로 전락할 것이다. 장담하건대,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이미 그 징조는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음악 시장의 파이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고, 저 위대한 퀸시 존스(Quincy Jones)가 일갈했듯 가뜩이나 줄어든 파이를 도둑질해가는 인간들만 떵떵거리며 잘 나가고 있다. 음악은 그렇게 죽어갈지도 모른다는 슬픈 예감이 음악판 전체를 휘감고 있다는 건, 여기에 몸담고 있는 대부분이 인정하는 바다. 고로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러니까 음악의 전성기만이 화양연화로서 끊임없이 소환될 것이다. 그래. 그런 좋은 시절이 있었지. 음악이 전부인 때가 있었지. 뭐 이런. 


작은 희망 하나, 얘기해보려 한다. 우선 진실로 고백하건대, 음악이라는 것이 어쩌면 별 게 아니라고도 나는 생각한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음악은 삶보다 위중할 수 없다. 음악뿐만이 아니다. 영화도, 문학도, 그러니까 예술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다. 소설가 김훈은 어떤 인터뷰에서“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참혹한 현실은 언제나 영화보다, 문학보다, 음악보다 조금 더 빠르다. 그러니까 음악을 포함한 예술은, 이 현실과의 간극을 어떻게든 줄여보고자 하는 몸부림일 것이다. 이 몸부림은 때로 허망하지만, 몸부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굳이 “음악이 없다면 삶은 하나의 오류일 것이다”라는 니체의 명언을 끌어들여오지 않아도, 음악은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형태를 갖는 그 순간부터 함께 하는 유일한 문화다. 그래서일까. 누구나 살다보면 한번쯤은 어떤 음악으로 인해 ‘구원 받는 순간’을 경험하지 않나.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Grace’를 처음 들었을 때, 이소라의 ‘금지된’을 우연히 만났을 때, 안토니 앤 더 존슨스(Antony & The Johnsons)의 ‘Hope There’s Someone’을 들으며 어두운 방구석에서 혼자 흐느꼈을 때, 구원과도 같은 그 어떤 순간은 벼락처럼 내게 찾아왔다. 그 벼락같은 순간을,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비록 음악의 시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위대한 음악은 여전히 그 어디에선가 써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어디에선가, 그 음악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만 분명히 있을 테니까.

Jeff Buckley 'Grace'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

201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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