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음악의 가벼움 (feat.청춘)

[컬처]by 배순탁

이게 뭔가 싶었다. 음악 영화도 아닌데, 영화 속 흘러나오는 음악이 30곡이 넘는다니, 감독이 제 정신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감독의 이름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 비포 선라이즈 >(1995)를 포함한 3부작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하고, 잭 블랙(Jack Black)과 함께 < 스쿨 오브 락 >(2003)을 개교하더니, < 보이후드 >(2014)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던 바로 그 분. 

 

그래. 30곡 이상이라고? 리처드 링클레이터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1993년에 만들었던 영화 제목도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곡에서 따와 < Dazed and Confused (한국어 제목은 ‘멍하고 혼돈스러운’) >라고 지었던 분이잖아? < 스쿨 오브 락 >의 음악이야 당연한 거고, < 보이후드 >의 음악도 끝내줬잖아. 그 중에서도 패밀리 오브 더 이어(Family of the Year)의 ‘Hero’는 말 그대로 감동적인 엔딩을 장식했고 말이야,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음악으로 한가득인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새 영화 < 에브리바디 원츠 썸 >은 이제 갓 대학 초년생이 된 야구부 친구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시대는 정확히 1980년. 개강까지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3일하고 15시간. 이 짧은 기간 동안 이 친구들은 말 그대로 놀고 놀고 또 놀면서, 돌고 돌고 또 돈다. 화끈하게 노는데 클럽 문화가 빠질 수 없는 법. 주인공들은 1980년대 초반까지도 인기 있었던 디스코 클럽은 기본이고, 심지어 컨트리 클럽까지 돌아다니면서 맥주, 양주, 칵테일 할 것 없이 온갖 술을 마구 쏟아붓는다. 나도 대학시절에 술 좀 마신다고 마셨는데, 저렇게 마시다간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참을 수 없는 음악의 가벼움 (fea

영화 '에브리바디 원츠 썸' 스틸컷

< 에브리바디 원츠 썸 >은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자신의 20대를 되돌아보며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라고 한다.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수많은 음악들로부터 영감을 수혈한 뒤 영화의 초안을 완성했다고 하는데, 과연, 저 자신이 음악광답게 1980년을 수놓았던 음악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이 곡들을 다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기에 핵심만 일단 추려본다. 영화 < 청춘 스케치 >에도 삽입되었던 낵(The Knack)의 ‘My Sharona’(1979)를 시작으로 관객들은 블론디(Blondie)의 ‘Heart of Glass’(1979)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밴 헤일런(Van Halen)의 ‘Everybody Wants Some’(1980)을 거쳐 데보(Devo)의 ‘Whip It’(1980)에 이르기까지, 숱한 명곡들을 만날 수 있다. 어디 이뿐인가. 뉴웨이브와 디스코 리듬을 절묘하게 결합한 퀸(Queen)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1980), 디스코의 정수를 담아낸 피치스 앤 허브(Peaches & Herb)의 ‘Shake Your Groove Thing’(1978) 등, 1980년대 초반까지도 인기 있었던 디스코 음악들도 끊임없이 흘러나와 귀를 즐겁게 해준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음악이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그러니까, 1980년이라는 시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한다. 간단하게, 1980년대는 당대의 물신(物神)이 과거의 정신 (精神)을 압도한 시대였다. 영화 속 화려한 파티 장면들과 주인공들의 패션에서도 나타나듯이 경제 호황에 힘입은 미국의 1980년대는 ‘물질만능주의’ 그 자체에 다름 아니었다. 저 유명한 마돈나가 “나는 물질적인 소녀(‘Material Girl’)야”라고 노래했듯이 말이다. 바로 위에 언급한 곡들이 정확히 이 ‘물신의 시대’를 상징하는 곡들이라고 보면 된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리하여 다음과 같다. 3일하고 15시간이면 괜찮은 거라고, 이 정도라면 아무리 빡세게 놀아도 언젠가는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맥주잔을 든 뒤에 ‘카르페 디엠!’을 외치라고 말이다. 

 

좋은 얘기다. 우리도 흔히들 우리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말하고는 하지 않나. “지금 안 놀면 너 평생 후회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내가 살았던 한국의 1990년대는 미국의 1980년대와 똑같았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긍정적인 기운’이 그 시대를 감돌았고, 적어도 IMF가 터지기 전까지, 세상은 날이 갈수록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쪽으로만 발전할 것처럼 보였다. 글쎄. 지금 대기업 다니고 있는 내 친구들, 아마 그 때와 동일한 스펙과 성적이라면, 지금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을까.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일 것이다. 취직 준비하는 요즘 친구들이 들으면 어이가 없어 코웃음칠 게 분명하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1990년대 중반에는 용돈을 ‘좀 더’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면 지금은 ‘생존’을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청춘들을 위한 레일포인트를 이렇게 빽빽하게 만들어놓은 것은 어디까지나 기성 세대의 책임이다. 이런 시대에 청춘들에게 “늙기 전에 마음껏 놀아라”라고 권유하는 것은 어쩌면 유죄일 수도 있다. 즉, 지금의 청춘은 미래를 알 수 없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미래가 너무 ‘뻔히 보이기에’ 불안한 세대인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음악의 가벼움 (fea

영화 '에브리바디 원츠 썸' 스틸컷

그럼에도, “늙기 전에 마음껏 놀아라”라는 권유를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유혹을 때때로 느낀다는 점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놀면서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에는 부지기수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요즘 가장 고민하고 있는 주제는 바로 다음의 두 가지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사기꾼이나 매한가지인 희망 세일즈맨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절망의 깊은 터널을 낮은 포복으로 겨우겨우 통과해내고 있는 청춘들에게 ‘적확하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아직까지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출발점이 어디인지 정도는 알 것 같다. 바로,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p.s. 이 작품 < 에브리바디 원츠 썸 >뿐만 아니라 감독의 다른 영화들까지 ‘함께’ 감상해본다면,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확실히 괜찮은 어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 영화만 보고 비판하는 청춘이 있을까 염려되어 적어둔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청춘을 달리다’ 저자, SNS 냉면왕)

201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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