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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세계 최초 해킹은
언제 일어났을까

by테크홀릭

세계 최초 해킹은 언제 일어났을까

PC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해커나 해킹이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세계에서 처음으로 해킹을 한 건 지금부터 1세기 이상 전이라고 한다. 해커라는 말 역시 컴퓨터나 네트워크에 침입해 막대한 피해를 주는 나쁜 사람이라는 인상이 짙지만 시스템 보안 취약점을 찾아서 피해를 방지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해커도 있다. 이런 해커들은 인터넷 탄생 이전부터 통신이나 전기 집계 시스템을 해석하고 다양한 정보를 해킹하고 있었다.

 

1900년대 초반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인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는 무선기기를 발명했다. 이 제품은 기존 통신 기기와 같은 케이블을 쓰지 않고 무선으로 특정 주파수에 메시지를 더해 개인 통신을 할 수 있었다.

 

마르코니의 발명에 두려움을 느낀 통신 업계는 무선에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그러던 중 영국 통신 회사인 동부전신회사(Eastern Telegraph)는 영국인 마술사이자 발명가인 존 네빌 마스켈린(John Nevil Maskelyne)을 고용해 마르코니의 발명에 대항하려 한다.

 

마스켈린은 무선 기술에 대해 실험을 해 마르코니의 무선기기가 통신하고 있을 때 주파수를 아무도 모르게 가로채 통신 내용을 도청하는데 성공했다. 1903년 마르코니는 첫 라디오 공개 실험을 영국 런던에서 실시한다. 실험 내용은 500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보내는 무선 통신을 마르코니의 무선 기기를 이용해 수신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코니가 준비한 메시지를 수신하기 전에 마르코니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 발생한다. 라디오에서 먼저 메시지가 나오는 일이 벌어진 것. 이 사건이 바로 세계 첫 해킹이다.

 

마르코니는 해킹 피해를 받은 다음 해킹은 과학 기술을 이용한 난폭한 행위라며 항의 편지를 타임스에 보내 범인 색출을 도와달라고 한다. 4일 뒤 타임스는 마스켈린의 성명을 게재한다. 그는 마르코니의 무신 기기 메시지를 중단시킨 건 자신이라고 밝히고 공개적인 실험 장소에서 해킹을 해 보안 결함을 알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악의적인 게 아니라 무선 보안이 불안정해 누구나 쉽게 무선 통신을 감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것이다.

 

생명을 구한 해킹도 있다. 1940년 독일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서 천공카드 전문가로 프랑스군에 복무하던 르네 카미유(René Carmille)는 프랑스 내 유대인을 구하게 된다.

 

그는 프랑스 인구 통계를 산출하는 부서를 관할하고 있었고 통계 자료를 만들기 위해 천공기기를 관리했다. 나치 침공 후 점령군은 프랑스 전역에 대한 인구 통계 자료를 요구했다.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프랑스 국민 개개인의 종교를 기초로 유대인 거주 지역을 분할해 유대인을 수용소로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 중이었던 카미유는 점령군에 통계 자료를 전달할 날짜를 일부러 늦추거나 천공기기를 해킹해 통계 자료에 종교를 올려놓지 않게 기기 프로그램을 고쳤다. 그는 또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참전용사를 찾아가 레지스탕스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나치가 카미유의 이런 조용한 해킹을 알아챈 건 1944년. 그는 구속되어 독일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고 다음 해 사망한다. 하지만 그는 5년 동안 수많은 유대인의 생명을 구했다.

세계 최초 해킹은 언제 일어났을까

세계 첫 악성코드는 뭘까. 세계 첫 컴퓨터 바이러스 코드를 만든 인물은 1988년 미국 과학자인 로터브 모리스(Robert Tappan Morris)다. 그는 코넬대학에 재학 중인 23세 학생이던 시절 웜을 만들어 1988년 11월 2일 MIT 컴퓨터에 공개했다.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는데 웜이 PC에 침투하면 여러 번 덮어 쓰기를 반복해 기기 움직임을 방해해버리는 탓에 인터넷에 연결된 PC 가운데 10%인 6,000대가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버렸다.

 

웜에 의해 미국 내 대학과 연구 시설, 군사 기지 등이 피해를 입어 피해액만 해도 1,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모리스의 웜 공격을 받은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는 인터넷 보안팀을 설립하기도 했다. 모리스의 웜은 인터넷 보안에 대한 인식을 높이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는 또 1986년 컴퓨터 사기와 남용 단속 법안을 적용 받은 첫 인물이기도 하다. 1989년 6월 26일 집행유예 3년과 벌금 1만 50달러를 구형 받는다. 모리스는 이후 비아웹(Viaweb) 공동 창업자를 맡았고 이 회사는 2005년 4,900만 달러에 야후에 인수된다. 모리스는 이어 MIT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모리스가 만든 통칭 모리스 웜 코드가 담긴 플로피 디스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컴퓨터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