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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판사 블랙리스트 없다' 발표에도 논란 계속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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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블랙리스트 없다' 발표에도 논

지난 1년간 사법부를 둘러싼 안팎의 갈등을 키우는 의혹의 핵심이었던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배정한 기자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조사 발표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이하 추가조사위)가 확인된 문건이 사법부 블랙리스트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아서다. 법원 내부에서는 판사들의 성향과 움직임을 파악한 것을 블랙리스트로 볼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재판에 대한 동향 보고가 법관 독립이라는 가치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사건' 항소심 재판과 관련해 청와대와 민감한 의견을 주고받은 정황에 대해서는 파장이 커지고 있다.

 

추가조사위(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가 평소 다수 법관에 대한 여러 동향과 여론을 구체적으로 파악한 정황이 나타난 문건들이 상당수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추가조사위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원세훈 전 원장의 항소심 공판에 대해 청와대와 의견을 주고 받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과 일선 판사들의 뒷조사를 진행한 내용 관련 문건을 다수 공개했다.

못 연 파일 760개…한계만 확인?

"재판부 동향을 보고하고 사안별로 대응방안까지 세운 것은 사찰"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추가조사위가 열지 못한 760여 개 문건 내용을 더 확인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2일 발표된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추가조사위는 검색어를 입력해 추출한 문서 가운데 총 760여 개 파일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 비밀번호를 해제하지 못해 조사대상에서 제외된 파일 중에는 직접적으로 특정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준 내용이 기재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권법연구회대응방안(인사)'도 포함돼 있다.

 

분석 대상이 제한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추가조사위는 법원행정처 고위 법관과 실무자인 심의관 등 4명의 컴퓨터 저장매체를 분석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행정처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진두지휘했다는 의혹을 받는 핵심 간부의 저장 매체는 제외한 채 나머지 3명이 쓰던 자료만 조사위에 넘겼다.

 

분석 방법에 대한 한계도 거론된다. 컴퓨터 개봉이 이뤄지기 전 법원 내에서는 법관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추가조사위는 진보 성향의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단체의 회원 이름처럼 관련 키워드만 넣어 검색했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 열어보지 못한 파일만 760개에 달한다. 760개 안에는 삭제된 파일 300개도 포함된다.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연관성이 뚜렷한 제목의 파일 5개는 법원행정처의 '협조 한계'로 강제로 열지 못했다는 추가조사위 주장도 있다. 추가조사위는 강제수사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데 당사자가 협조를 하지 않은 데다 기술적 제약, 보안 유지의 어려움을 이유로 더이상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판사 블랙리스트 없다' 발표에도 논

법원 블랙리스트 관련 추가조사위원회 조사보고서 일부. /추가조사위원회


판사 성향·동향 파악 문서는 있었다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각종 문건을 살펴보면, 2016년 2월 24일자 '사법행정위원회 개선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에는 판사회의를 통해 수평적, 민주적 운영방식으로 사법행정체계를 바꾸기 위해 판사회의에서 사법행정위원회에 참여할 판사를 선출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한 송모 판사의 소속 모임과 주된 관심사 등이 적혀 있다. 송 판사의 발표문 요지와 함께 우리법연구회 및 국제인권법연구회 경력, 사법행정에 대한 주된 관심사 등의 내용이 적혔다. '이 소수 그룹의 조직적 활동이 다수 판사의 호응을 얻는 것을 차단하고, 고립시킬 필요가 있다'는 평가도 담겼다.

 

박모 판사에 대해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반대 글을 올린 경력을 적고, '사법행정라인과 대립할 수 있다'면서 2016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에서 그를 견제할 다른 판사를 미는 방안도 검토했다. 심지어 여성 판사들의 소통 목적으로 2014년 10월 비공개로 개설된 온라인 카페 '이판사판 야단법석'에 올라온 비판적 내용의 게시글도 살폈다. '이판사판 야단법석'의 개설자인 홍모 판사에 대해서는 우리법연구회 핵심그룹으로 '강성'이라고 적었다.

 

법원행정처가 문제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글의 항목은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력 추진한 상고법원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형사사건 선고 △ 박상옥 당시 대법관 후보자 임명제청 △ 쌍용차 해고노동자 판결 선고 △ 법원 인사 등에 관한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심의관 출신 등을 신뢰할 수 있는 '거점 법관'이라 지칭하며, 법원 내 동향의 주기적인 파악 구상도 했다. 문제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법관의 SNS를 점검해야 하는데, 그가 부장판사면 배석판사나 참여관, 실무관의 SNS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추가조사위는 "법관이 사법정책을 비판 내지 반대했단 이유로 법관에 관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해 이념적 성향, 인적 관계와 행정 등을 분석·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문서를 작성했다면, 그 방안이 실현이나 인사상 불이익 여부를 떠나 문건 작성 자체로도 법관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승태 시절 '원세훈 재판 靑과 커넥션' 후폭풍

법원행정처가 2015년 2월 작성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에는 항소심 판결을 전후해 법원행정처가 청와대 등 특정 외부기관과 여야 정당, 언론, 법원 내부의 반응을 파악해 정리해 이를 청와대에 보고하고 민감한 내용의 정보 및 의견을 교환한 내용이 담겼다.

 

항소심 선고 이후에는 사법부 입장을 외부기관에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 다음 날인 2015년 2월10일 작성된 이 문건에는 판결선고 전 청와대가 민정라인을 통해 재판 전망과 재판부의 의중을 우회·간접적으로 문의하고 보고받았다.

 

문건은 청와대가 이 사건을 '최대 관심 현안'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청와대가 '법원행정처에 전망을 문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문건에는 '(청와대가) 항소기각을 기대'한다는 문구도 담겼다.

 

문건 말미에 "상고법원과 관련한 중요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추진을 모색하는 방안 검토 가능"이라고 기재되 부분도 주목할 부분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까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활용해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원 전 원장은 선거 과정에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등을 동원해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댓글을 달고 선거에 영향을 미친 혐의(공직선거법 및 국정원법 위반)로 2014년 9월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판사 블랙리스트 없다' 발표에도 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을 놓고 법원행정처와 청와대간의 거래의혹을 시사하는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임세준 기자

청와대의 의견 전달에도 원 전 원장이 2심에서 징역 3년을 받고 법정구속된 이후에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불만을 표시하며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으면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했다"고 적혀있다. 실제로 원 전 원장의 상고심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뒤 파기환송 됐다.

 

대법관들은 이같은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내고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제외한 13명 대법관은 "이 사건은 소부의 합의를 거친 결과 증거법칙을 비롯한 법령 위반의 문제가 지적됐고, 사회·정치적 중요성까지 아울러 고려했다"며 전합에 회부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관여 대법관들은 재판에 관해 사법부 내외부의 누구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은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며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과 달라 국민들과 사법부 구성원들에게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에 관한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추가조사위 결과 발표 이후 거센 후폭풍을 일자 이틀 만인 24일 공식 입장을 내놨다. 그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려 죄송하다"면서 유사사태 재발을 위해 인적쇄신과 조직개편 단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가조사위의 조사결과에 따라 필요한 범위에서 조사결과를 보완하고 조치방향을 논의·제시할 수 있는 기구를 조속히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더팩트 | 서초=김소희 기자 ks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