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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오경희의 '靑.春일기'

'건강 악화' 문재인 대통령과 '왕관의 무게'

by더팩트

물리적·심리적 강행군 펼쳐온 文대통령…집권 2년차 '국민 체감 성과' 강조

'건강 악화' 문재인 대통령과 '왕관

문재인 대통령은 감기 몸살로 28일부터 이틀간 연가를 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상경하는 비행기 안에서도 자료를 검토하는 모습./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지칠 법도 했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문재인(65)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을 지켜볼 때마다 혀를 내둘렀던 것은 '체력'이었다. 짧게는 1박 2일, 길게는 7박 8일의 순방 기간 동안 문 대통령은 빽빽한 스케줄을 차질 없이 소화했다. 하루 10개 이상의 스케줄을 잡는 날도 있다. 순방 중에도 개헌안 발의 등 굵직한 현안을 처리했다. 귀국해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특전사 출신' 대통령의 체력은 이런 것"이란 말이 자연스레 입에서 나왔다.

 

그런 문 대통령이 러시아 순방을 다녀온 후 공식 석상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21일부터 2박 4일간 러시아를 국빈방문한 뒤 지난 25일 매주 월요일 열리는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지 않았고, 26일엔 '6·25 유엔참전용사 추모식' 참석 차 부산에 갈 예정이었으나 폭우와 낙뢰 등 기상여건을 이유로 일정을 1시간 앞두고 취소했다.

 

문제는 27일이었다. 청와대는 오후 2시 유엔사무총장 접견, 오후 3시 규제혁신점검회의를 앞두고 두 건의 일정을 갑작스레 연기 또는 취소했다. 당일 그것도 임박(30분, 1시간 30분 전)해서 벌어진 일어었다.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다. 대통령 참석 행사는 적어도 며칠 전까지 세부 계획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해명은 석연치 않았다. "일정이 맞지 않았다" "회의 준비가 미흡했다"고만 했다. 곧바로 건강이상설, 남북정상회담설 등 추측이 난무했다. 결국,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오후 5시 15분께 기자들에게 문 대통령이 피로 누적으로 인한 몸살감기에 걸렸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주치의의 강력 권고로 이번 주 일정을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고 했다.

'건강 악화' 문재인 대통령과 '왕관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남북정상회담 등 대형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 사진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도보다리 회담'을 나누는 모습./한국공동사진기자단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만도 했다. 문 대통령은 올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이벤트를 기점으로 4·27 남북정상회담, 6·12 북·미 정상회담까지 연이은 대형 외교 일정을 치렀다. 긴박한 한반도 정세에 대응하느라 참모진의 권유에도 제대로 휴식을 취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전의 한 고비를 넘었으나 국내 사정도 마음 편치 않다. 최저임금 인상 논란, 소득 분배·고용지표 악화 등에 대한 비판이 계속됐다. 물리적·심리적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문 대통령의 평소 성정과도 무관치 않아 보였다. 대선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의 단점으로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 성향'이 꼽혔다. 장점으로 보면 세심하고 꼼꼼하다는 얘기다. 한반도 비핵화 대화 국면에서 문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자주 했던 말도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유리 그릇 다루듯 하라"였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려 하지 않다 보니 신체적·정신적으로 에너지 소모량이 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노무현 정부 청와대 재직 시절 치아가 10개나 빠져서 임플란트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 역시 수긍이 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아픈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27일 일정을 취소한 날도 집무실에 출근해 이낙연 국무총리로부터 규제혁신 점검회의안을 보고 받았다. 이 총리는 '미흡하다'는 이유로 회의 연기를 요청했고, 문 대통령도 동의했다. 그리고 오후 4시께 대통령 주치의의 강력 권고가 있고 난 후에야 휴식을 결정했다.

'건강 악화' 문재인 대통령과 '왕관

방러 이후 건강이 안 좋아진 문 대통령은 이번 주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사진은 지난해 문 대통령이 관저에서 독서를 하는 모습./트위터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문 대통령의 심리적 부담감이 느껴졌다. 촛불의 선택을 받은 문 대통령은 '나라다운 나라'를 기조로 취임 1년을 숨 가쁘게 달렸다. 그리고 집권 2년 차부터는 '성과'를 보여할 시기다. 문 대통령 역시 이를 알고 있다. 이 총리의 보고를 받으면서 문 대통령은 "답답하다"는 심경을 털어놓으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의 '성과'를 반드시 만들어 보고해 달라"라고 주문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을 했다. 왕관을 쓴 자는 명예와 권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는 의미이다. 또한, 왕좌는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우며 기대가 클수록 그 무게는 더 가중된다. 하지만 때로 급할수록, 위기일수록, 쉬어가는 것도 '약(藥)'이 될 수 있다.

 

[더팩트ㅣ청와대=오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