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당했는데…" 또 보물선 꿈꾸는 투자자들

[비즈]by 더팩트

주가 조작 의심 받는 보물선 인양 사업...'돈스코이호 저주' 파장 만만치 않아

"그렇게 당했는데…" 또 보물선 꿈꾸

금융감독원은 돈스코이호와 관련해 신일그룹이 주가를 조작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사진은 신일그룹이 제작한 돈스코이호 모형. /장병문 기자

지난 2001년 증권시장에 보물선 광풍이 불었다. 동아건설이 당국에 사업신청을 하고 보물선으로 알려진 러시아 전함 돈스코이호(號)를 건져 올리겠다고 홍보했다. 워크아웃 대상인 동아건설이 늘 해오던 사업도 아닌 보물선 인양에 뛰어들겠다는 엉뚱한 계획을 세웠지만 주가는 요동쳤다.


당시 동아건설 주가는 1주당 360원 정도였는데 17일 연속 상한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올리며 주가가 3265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동아건설은 금화 한 잎 만져 보지 못하고 법정관리로 들어가고 상장 폐지 수순을 밟았다. 이에 따라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됐다. 동아건설의 해외전환사채를 잔뜩 들고 있던 특정 세력이 이때 자신들 물량을 털어내 톡톡히 재미를 봤다는 후문이 돌았다.


동아건설로 그렇게 당했는데 주식시장은 또다시 보물선 이슈에 휘둘리고 있다.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가던 돈스코이호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자본금이 1억 원에 불과한 해양업체 신일그룹이 최근 울릉도 인근에서 150조 원 상당의 금괴를 실은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신일그룹은 이 발표를 하기 직전 코스닥 상장사인 한 철강업체 지분을 대량 매입한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 돈스코이호 보물을 담보로 가상화폐 '신일골드코인'을 발행하기도 했다. 150조 원대 보물선 이슈를 타며 이 철강업체 주식은 폭등하기 시작했고 가상화폐에 손을 대는 사람도 늘기 시작했다.


그후 신일그룹을 둘러싸고 투자 사기 의혹이 불거지자 이 기업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배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하지만 보물의 실체는 밝히지 못했다. 또 돈스코이호 금괴 가치도 150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뚝 떨어뜨려 의문부호를 남겼다.


신일그룹은 철강업체 철강 회사 지분 매입은 대표의 개인적인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신일그룹은 또 가상화폐 신일골드코인을 발행한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신일그룹과는 관련 없는 업체라고 발뺌했다. 또 돈스코이호 가치가 150조 원이라는 홍보 문구는 일부 언론이 검증 없이 인용해 사용한 것이라며 언론사에 책임을 돌렸다.


신일그룹 대표는 회사를 설립한 지 두 달도 안 돼 사명을 신일그룹에서 신일해양기술주식회사로 바꿨다고 밝혔다. 주식투자와 가상화폐 발행과 관계없이 돈스코이호 인양을 위한 회사라면서 말이다. 신일그룹의 황당한 기자회견으로 보물선 의혹은 더 증폭됐다. 석연치 않은 신일그룹의 발표로 17년 전 주식 투자자들의 악몽이었던 '돈스코이호의 저주'가 다시 고개를 드는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돈스코이호와 관련해 신일그룹의 주가조작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신일그룹 대표가 지분 인수를 하기로 한 철강업체 주가가 급등한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보물선 가치가 150조 원이라는 문구로 가상화폐 신일골드코인 투자자를 모집했던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경찰로부터 유사수신이나 불법 다단계, 사기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신일그룹의 대표를 비롯해 임직원들은 경찰로부터 출국금지 조치를 받았다.

"그렇게 당했는데…" 또 보물선 꿈꾸

신일그룹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돈스코이호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은 최용석 신일그룹 회장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는 모습.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 인양 계획을 발표하고 기자회견까지 열었지만 의심을 살 만한 정황은 계속 쏟아지고 있다.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발견 소식 전부터 해당 철강업체 거래가 늘어나 주가가 뛰었다. 하지만 이 철강업체는 "보물선 사업과 관련 없다"는 공시를 내면서 주가는 내림세로 돌아섰고 금감원과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폭락했다.


주식 투자는 투자자 판단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손해도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인 조작 행위가 있었다면 수사기관이 철저하게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 신일그룹 대표였던 류상미 씨가 신일골드코인을 만드는데 관여했기 때문에 신일그룹과 싱가포르 신일그룹을 별개의 회사로 볼 수 없다. 그런데 당국 수사가 시작되자 두 회사가 서로 관계없다고 한 것은 '꼬리 자르기'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 신일골드코인은 ICO(가상화폐공개)와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실상은 보물선을 담보로 백지수표를 팔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물 실체도 불분명한데도 말이다.


이 회사가 돈스코이호 인양과 관련해 주가를 띄우기 위해 작전을 짰다거나 가상화폐 발행으로 피해자들을 낳았다고 아직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이슈로 이익을 취한 세력이 분명하게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은 충분하다.


수사 당국은 이번 보물선 이슈가 사회적·경제적 문제가 되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주가조작 세력이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투자자들도 각성해야 한다. 기업 실적이나 관련 산업의 비전을 엄밀히 따지며 투자해도 성공하기 힘든데 소문과 풍문에 휩쓸려 테마주에 투자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주식시장에서 주식은 꿈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하지만 투자는 회사 가치를 보고 하는 것이지 꿈만 믿고 할 수는 없다. 실체도 불명확한 '묻지마 투자'가 초래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자신이라는 걸 명심하자.

 

더팩트ㅣ장병문 기자 jangbm@tf.co.kr

2018.08.0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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