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노소영으로 본 '멀고 먼 이혼의 길'

[이슈]by 더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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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59)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최태원(60)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첫 변론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현장풀

유책·축출·재산…이혼만큼 복잡한 '법'


최태원(60) SK그룹 회장과 노소영(59)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새 국면을 맞았다. 2015년 최 회장이 내연녀와 혼외자 존재를 알리며 이혼 의사를 밝힌지 5년. 두 사람은 이혼조정부터 '맞소송'에 이르기까지 긴 싸움 중이다. 소송이 길어지며 이혼에 얽힌 법률적 쟁점들이 총망라됐다.

협의부터 소송까지…한국에서 이혼하려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갈등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회장은 한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 서로 공감하고 이혼에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가던 중에 우연히 마음의 위로가 되는 한 사람을 만났다"고 밝혔다. 내연녀와 혼외자가 있음을 고백하고, 노 관장과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났다고 선을 그은 셈이다. 이때 노 관장의 생각이 같았다면 두 사람은 협의이혼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협의이혼이란 말 그대로 재판없이 법원 조정으로 두 사람이 협의해 이혼하는 절차다. 변호사가 아닌 당사자들이 직접 법원에 가서 이혼 의사를 밝히고 숙려기간을 거친 뒤 혼인관계를 끝맺는다. 숙려기간은 자녀가 없으면 한 달, 자녀가 있으면 3개월이다.


2017년 7월 협의이혼에 실패한 최 회장은 법원에 이혼조정을 청구했다. 이혼조정은 협의이혼과 달리 재판을 거쳐야 하지만, 두 사람의 이혼 의사만 확실하다면 협의이혼보다 더 간소한 절차다. 양자간 의사를 확인한 법원이 따로 조정기일을 열어 재산분할과 친권 등 쟁점에 결론을 내리면 이혼이 성립된다. 기일에 당사자가 직접 출석할 필요가 없고 숙려기간도 없다. 조정이혼부터는 재판상 이혼이라 법원은 조정기일에 작성된 조정조서의 조건들을 반드시 지키도록 보장한다. 지난해 7월 1년8개월의 결혼생활을 32일만에 마무리한 배우 송중기(35)와 송혜교(39)가 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의사는 합치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소송에 돌입했다. 소송은 가장 힘겹게 이혼하는 수단이다. 혼인파탄의 책임과 위자료, 재산분할과 양육권 등을 놓고 아직까지 '부부'인 두 사람이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툰다. 법원이 이혼 성립을 결정하면 둘은 갈라서고, 불성립 결정을 내리면 부부 관계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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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60) SK그룹 회장은 2015년 노소영(59)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의사를 밝혔다. 사진은 지난 2018년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글로벌 지속가능발전포럼(GEEF)'에서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 등에 대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의 역할'에 대해 발표하는 최 회장의 모습. /더팩트DB

'이혼법정의 양대 산맥' 파탄주의와 유책주의

최 회장과 노 관장은 각각 '파탄주의'와 '유책주의'를 들며 대척점에 서있다. 파탄주의란 혼인관계를 누가 깨뜨렸는지와 상관없이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면 이혼을 허용하는 제도로 '이혼무책주의'라고도 불린다. 역사적으로 가톨릭 문화 아래 이혼을 엄격히 금지했던 독일은 부부가 이혼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유책 사유를 만들어 거짓 진술하는 부작용까지 발생하자 1976년 파탄주의를 들여왔다. 이외에도 미국, 프랑스 등이 파탄주의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최 회장 역시 2015년 분식회계 혐의로 수감됐을 당시 노 관장이 쓴 사면반대 편지 등을 근거로 혼인관계의 파탄을 입증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상 최 회장이 주장하는 파탄주의가 받아들여지기보다, 그의 유책 사유가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유책주의는 외도 등 혼인파탄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제도다. 한국에서 유책주의는 역사가 깊다. 과거 여성이 경제권을 갖기 어려웠던 시절, 남편이 집에서 아내를 쫓아내는 일을 방지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자리잡은 제도다. 사회가 바뀌며 법조계 일각에서는 혼인관계의 완성도를 따지는 파탄주의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배우자와 헤어지고 싶다는 내밀한 감정을 사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유책 사유였던 간통죄는 2015년 2월 사생활에 사법 판단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파탄주의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간통죄 폐지로 한국 사법부는 최소한의 가정보호를 위해 유책주의를 끌어안고 있다. 같은해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간통제 폐지 뒤 처음으로 이혼소송 상고심을 마주했다. 15년간 아내와 별거 상태에서 다른 여성과 동거한 남성이 아내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72·사법연수원 2기) 당시 대법원장을 포함한 7명의 대법관은 "간통죄가 폐지된 이상 중혼에 대한 형사 제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기존 판례를 고수했다. 지금은 양 전 원장과 함께 재판을 받는 고영한(65·11기) 전 대법관 포함 6명은 "실질적 이혼 상태인 부부의 관계를 정리해줘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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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정법원 가사2부(전연숙 부장판사)는 7일 오후 최태원(60) SK그룹 회장과 노소영(59)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남용희 기자

정경유착과 축출이혼의 딜레마

노 관장은 지난해 12월 "이제는 가정을 지킬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과 함께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42.29%에 재산분할을 청구했다. 당시 기준으로 약 1조원, 최근 시세로는 9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만약 법원이 두 사람을 이혼시키면서도 노 관장이 요구한 조건에 턱없이 모자란 재산만을 나눈다면 "내연녀와 결혼하려고 아내와 이혼했다"는 '축출이혼'과 다를 바 없다는 논란이 일 여지도 있다. 실제로 노 관장이 함께 청구한 위자료 3억원에는 '이혼소송을 통한 축출 시도'라는 주장 아래 정신적 손해배상 취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노 관장이 갖는 지분이 커질수록 아버지 노태우(88) 전 대통령의 '정경유착' 의혹을 뒷받침하는 꼴이라는 시각도 있다.


법조계는 노 관장의 집안이 SK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등 정경유착은 법정에서 입증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이와 별개로 최 회장의 유책 사실이 비교적 명확한 반면, 노 관장은 표면적으로라도 양육과 가정에 힘썼다고 볼 여지가 충분해 유리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인철 법무법인 리 대표 변호사는 "누가 유책 배우자인지 드러난 상태에서 노 관장까지 이혼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라 재판부 판결 전에 변호사간 합의를 거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며 "노 관장이 30여년간 혼인생활에 충실했고 세 자녀를 낳아 양육한 점, 최 회장의 유책 사실이 분명한 점 등에 비춰 30%까지 지분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예외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엄경천 법무법인 가족 대표변호사는 "상대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지만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는 경우 등이 예외사유"라며 "노 관장은 그 속마음까지 알 수 없지만 첫 변론기일에서도 '남편이 돌아온다면 소를 취하하겠다'고 말하는 등 가정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예외사유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다만 법원이 SK 지분을 부부가 함께 일군 공동재산으로 판단할지, 최 회장이 상속받은 상속재산으로 볼지에 따라 두 사람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노 관장이 SK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상속·증여 받은 재산, 혼인 전에 보유한 특유재산은 이혼시 재산분할에서 제외된다. 조수영 법무법인 에스 변호사는 "노 관장이 재산분할을 요구한 SK 지분을 최 회장이 상속재산이라고 주장하는 점, 노 관장이 SK 경영에는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재산분할 기여도가 어느 정도 인정될지가 쟁점"이라고 내다봤다.


ilraoh@tf.co.kr

2020.04.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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